거문오름을 향한 섬세한 시선
그의 작업실은 선흘의 거문오름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거문오름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않는 곳이다. 작업실 마당에서는 거문오름의 차분한 능선이 보인다. 하지만 그가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걷고 싶어하는 곳에 작업실을 둔 것은 전혀 우연이다. 그가 작업실을 마련한 지 2년만에 거문오름은 세계자연유산등재와 함께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그에게 거문오름은 그저 동네에 서있는, 제주의 수많은 오름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아직 거문오름에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기 전, 선흘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는 종종 이런 말을 해왔다.
‘거문오름에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맸다’
그 말이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었다. 거문오름- 그렇다. 그곳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야 한다. 그래야 거문오름이다.
수백만년전 거문오름의 저 깊은 내부에서부터 끓어오른 용암이 마침내 내뿜어졌다. 그 폭발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용암은 분화구 한쪽을 허물면서 동쪽으로 세차게 흘러갔다. 그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땅 속에 숨겨놓은 것이 만장굴, 김녕굴, 벵뒤굴 등이다. 이 동굴들이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한 ‘거문오름계 용암동굴’이다. 그러니까 거문오름은 세계자연유산의 모체이며, 거문오름 분화구는 바로 그 시원인 셈이다.
거문오름의 분화구는 아직도 과거의 흔적을 역력히 간직하고 있다. 바닥은 안팎을 뒤바꾼폭발을 보여주듯 울퉁불퉁한 곶자왈로 이뤄져 있고, 불 냄새, 재 냄새를 풍기는 듯한 용암석들이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거문오름의 분화구는 음산하고 괴괴하며 밑창 없는 나락이 발아래 입벌리고 있는 듯 공허하다. 그 안에서 시간은 흐르기보다는 멈춰있고, 딱딱하게 응고돼있는 것 같다. 처음과 끝이 뒤섞인, 방향도 소용없는 헛헛함. 거문오름 분화구는 거대한 혼돈이다. 그러니 어찌 헤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로 그 거문오름에서 길을 잃어버린 김연숙의 눈길을 끈 것은 예기치않게 이것들이다.
한없이 수직상승하는 삼나무들, 외향 확대하는 꽃들, 팽창하고 뻗어가는 나무줄기들, 능선 위로 펼쳐진 하늘과 무수히 돋아나는 별들,,, 다른 말로 하자면 생명이다. 생명은 수직상승을 꿈꾸고, 외향확대적이며, 팽창을 노리고, 흐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거문오름에서 생명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생명은 거문오름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그는 거문오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은 거의 지나쳐버렸다. 그 대신 평범한 이 생명 하나하나를 마치 거문오름에서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화폭 가득 채우고 있다. 무슨 까닭일까?
그에게 이 생명들이 그리도 크게 다가온 것은 다름아닌 거문오름에서‘조차’ 만날 수 있다는 사실때문이리라. 이 지극히 평범한 생명이 거문오름에서도 온전한 생명이라는 것, 엄청난 혼돈 속에서도 생명은 그지없다는 것- 그가 거문오름을 헤매이던 순간은 바로 이 애틋한 진실에 오롯이 스며든 시간이었으리라.
그러므로 김연숙의 작품들은 ‘거문오름’을 그린 것이 아니다. ‘거문오름에 대한’ 그림이다.
‘거문오름으로부터’ 온 秘意스런 생명의 기호들을 읽어내기 위한 섬세한 시선이다.
그의 작품들은 ‘거문오름으로’ 부터 온 초대다. 이제 우리가 김연숙의 초대에 응할 차례다. 보라빛 하늘을 머리에 이고 상승하고있는 저 삼나무 길을 걸어들어가 거문오름 능선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우리는 김연숙이 안내하는 생명의 숲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 가는 역시 우리의 몫이리라.
-권영옥(방송구성작가)
전시제목거문오름으로부터
전시기간2009.11.18(수) - 2009.11.24(화)
참여작가
김연숙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일요일
장르회화와 조각
장소드림갤러리 Dream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68 고당빌딩 3층)
연락처02-720-4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