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힘이 작동하는 지하철 출입구와 도심의 도로. 마치 빨려 들어가듯 후닥닥 계단을 뛰어내려 어느새 보이지 않는가 하면 또 팽창한 공기의 압력이 한 곳으로 뿜어져 나오듯 우르르 지상으로 밀려나오는 몰아쉬는 숨소리…. 멈춤 없이 익명의 다자(多者)들이 만들어내는 저마다의 경이로운 속도감과 쉽고도 가벼운 스침이 지나간 허공의 자리에 부유하는 환상과 욕망과 허욕이 그리고 고뇌와 비련의 밤이 흐른다. 마치 셀로판지를 통해 보이는 모습처럼 희미한 화면. 비정형화된 이미지들은 손상된 기억 흔적처럼 스윽 지나치려다 시점(視點)을 멈추게 한다. 그곳에는 그리움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멀기만 한 마음의 유예, 상호연대와 공동체 의식의 빈약, 위풍당당 승자 독식의 플래카드가 흐리게 넘실대고 있다. 치열과 극렬이 공존하면서도 서로에게서 아웃사이더인 아이러니. 부대끼고 얽히고 그러면서 풀어가는 복합적 다양성의 인간세계가 펼쳐져 있다.
문득 일찍이 ‘많음’을 거짓의 영역에 확고히 자리매김한, 참됨은 단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이데아(Idea)에서만 성립한다는 플라톤 사상이 떠오른다. 플라톤이 들려주는 신화, 레테(Lethe)의 강을 건너버린 영웅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참된 세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김재호 서울대 강의교수는 “모방된 세계, 가상의 세계가 오히려 진짜처럼 생생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 모두가 망각의 강을 이미 건너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는 우리의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찾는 것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레테의 강 저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썼다. 가히 물질의 광기라고 할 만한 대량생산 시대의 오늘날 자유로운 사고를 누르는 획일화에 대한 우려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추구와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의 속살이 다르지 않기 때문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정체성에 대한 고뇌에 단비를 선사할 강렬한 정신의 갈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허공’ 가득한 세상에서 따뜻함도 담아
이 문제의 목마름을 정인완 작가는 “대량 생산된 제품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대량생산된 상품(Super+mass)의 유혹과 갈등 그리고 선택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삶들에서 인간의 자연적인 심미를 색으로 표현하고 나의 소리로 전달하고자 한다”고 노트에 적고 있다. 이 시대에 온전한 ‘나’의 발견은 고립된 자아들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가교로 인간의 본질과 신에 대한 성찰을 생각하게 하는 두 거장의 공통된 주제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다. 그러므로 침묵을 창조하라”는 철학가 키에르케고르의 의미망을 확장해 볼 필요가 그것이고 또 하나는 “말과 침묵은 서로에게 속해 있다. 말은 침묵에 관하여 알고 있고 마찬가지로 침묵은 말에 관하여 알고 있다”는 ‘침묵의 세계’의 저자인 독일 작가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에 대한 탐구이다. 이희영 미술평론가가 “그의 회화는 곧 보이는 것에 대한 현대인의 보편적 믿음을 재고(再考)하게 한다”고 평한 것처럼 다자를 향한 불편한 시선들을 뛰어넘으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따뜻함이 배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가 화폭에 담아내는 간절한 언어는 자연으로의 회귀(回歸)로 화면의 군중 속 한 송이 화려한 꽃은 바로 ‘그대’이다. 어디 꽃이 꽃뿐일까. 딱 한 번의 인생. 그러니 경쾌하고 우아하게 미소를 머금으며 환하게 자신을 맘껏 바로 지금 펼쳐 볼 일이다.- 권동철 문화전문 기자
전시제목2010 인사미술제
전시기간2010.12.01(수) - 2010.12.07(화)
참여작가
정인완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고도 Gallery Godo (서울 종로구 수송동 12번지 갤러리 고도)
연락처02-720-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