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하는 풍경들
작은 드로잉 북 하나를 끼고 세상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삶의 다양한 단편들로 수다를 건내이던 김태헌의 근작은, 풍경화 연작으로 소개된다. 일상 속, 그리고 여행의 순간들로부터 그가 그동안 그리고, 만지고, 두드려 말하던 수많은 드로잉들은 어떠한 형식적 틀이나 스타일에 머물지 않은 자유분방함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그의 드로잉은 작가가 속했던 삶의 여러 순간들 속에서 다양한 얼굴로 변화, 이행하며 형식적 구애나 맥락 없이 서로 링크되며 뻗어나가는 태도를 형성해 왔다. 이번에 전시되는 풍경화 연작에서는, 드로잉 사이즈보다 조금 커진 작은 캔버스 위에 작가의 집 앞마당과 뒷산의 풍경에서부터 가까운 산행길인 인왕산, 남한산성, 그리고 여행길에서의 인도, 티벳, 샌프란시스코 등 40여개의 풍경들이 각양각색으로 펼쳐진다.
캔버스에 세심하고도 정성스런 필치로 그려진 풍경들은, 회화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그의 다른 드로잉과는 상이한 감성으로 다가온다. 여차하면 풍경화 작가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완숙한 회화로서의 풍경들이건만, 어떠한 맥락에 대한 지향 없이 다양한 풍경들을 유유자적하는 모습은 전통적 회화가 추종하는 엄숙한 감흥으로부터 비켜나가는 여유를 가진다. 이러한 정감은 그가 풍경 속에 배치한 아톰, 비행기, 군인 등 익숙한 미니어처 장난감과 같은 소재가 일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게는 ‘붕붕’ 하늘을 나는 포즈로 화폭을 가로지르듯 등장하는 이들은, 풍경 속에 머무르면서도 풍경을 관통하며 높이 나는 모습이다. “현실은 막강한 중력과 같아 철없이 세상 위를 날고자 하는, 맥락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나를 현실이란 거대한 그놈, 거인을 향해 쨉을 날리며 붕붕 날아올라 논다.”(김태헌, 『붕붕』中) 작가의 언급에서 보듯이, 풍경에 등장하는 이러한 소재들은 세상사에 관여하되 때로는 하늘 높이 날 줄 아는 거리로부터 안팎을 두루 살피고자 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집 앞마당의 꽃밭을 물감이 질벅한 필치로 그린 풍경에서는, 군인 미니어처를 관여시킴으로서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의 소소한 틈새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적이고도 비이성적인 순간들을 조우하게 한다. 그러다가도 금세 하늘 높이 올라 저 아래 세상에 펼쳐진 전경들을 관망하듯 바라보는 모습은, 일상과 여행 사이에서 타자의 영역과 차이들 또한 ‘붕붕’ 가로지르는 유희와 여유를 지닌다.
풍경 속에서 작가는 수퍼맨, 우주인, 비행기, 아톰 등 그 모습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현실이라는 경계의 언저리로부터 날아올라 세상의 곳곳을 횡단한다. 멈추지 않는 자기 변형과 이행의 과정으로부터 등장한 그의 풍경화는, 우리의 익숙한 삶을 낯설게 재발견하도록 하는 변화무쌍한 움직임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작가가 이번 풍경화를 통해 말하는 천개의 강이란, 세상사를 관통하는 수많은 물줄기들이 아닐까. 하늘 높이 비행을 하던 붕새는 지상의 경계들을 휙휙 날으며 세상을 노닐다 천개의 강을 만난 게 아닐까.
심소미(갤러리 스케이프 큐레이터) 전시제목천 개의 강
전시기간2010.11.17(수) - 2010.12.31(금)
참여작가
김태헌
초대일시2010-11-17 15pm
관람시간10:00am~19:00pm 토,일요일 오전10시∼오후6시
휴관일없음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스케이프 Gallery Skape (서울 종로구 소격동 55 갤러리 스케이프)
연락처02-747-4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