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2010.11.05 ▶ 2010.11.27

청계창작스튜디오

서울 종로구 장사동 센추럴관광호텔내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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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ㅣ 2010-11-10 18pm

  • 오미현

    어두운 방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0

  • 오미현

    어두운 방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0

  • 오미현

    어두운 방 아크릴, 가변설치, 2010

  • 오미현

    어두운 방 철망, 가변설치, 2010

Press Release

무한을 담는 입방체
이선영(미술평론가)

오미현의 최근 작품은 방 속에 방이 계속 이어지는 구조를 가진다. 어두운 공간 안에 배치된 수 백 개의 아크릴 큐브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어디선가 들어온 빛에 의해 잠상(latent image)의 상태를 벗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작품은 카메라(camera obscura)와 같다. 물의 이미지는 재현이나 표현이 아니라, 구조적인 차원에서 재생산된다.

물이라는 불확정적인 물질을 조형적으로 고정시키는 효과적인 매개체가 투명 아크릴 큐브이다. 그것은 담을 수 없는 것을 담으려는 보이지 않는 용기로서 작용한다. 벽이나 바닥, 공중에 설치된 수 백 개의 큐브는 원래의 흐르는 물이 그랬듯이 기저면의 굴곡, 빛과 바람, 물리적 자극과 관객의 시선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보인다. 투명한 큐브나 철망 위에 스텐실 같은 판화기법으로 새겨진, 물로부터 발원한 비정형적 패턴은 다채로운 조합의 방식에 힘입어 빛과 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살아있는 형태로 변모한다. 청계천 하류에서 살았으며, 현재 청계천 변에 있는 창작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면서 물과 친숙해진 작가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장면을 바라보아도 매번 달라지는 물의 형태에 매료되어, 이 추상적 패턴을 카메라로 담아와 작업에 활용하였다. 자연 자체에서 발견되는 추상적 형태와 예술이라는 고도의 인공물이 만나는 것이다.

수초마다 바뀌는 물의 찰랑거림을 순간적으로 잘라내어 입방체로 고정시켜 빛과 움직임에 반응하는 또 다른 인공물로 재탄생시킨다.물위에 어른거리는 이미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선을 강조하는 일러스트로 만드는데, 물의 패턴을 수 십 개 골라내서 사이즈의 변화를 준다. 빛에 반응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아크릴과 철망, 시트지 등 주로 투명한 재료를 활용한다. 오미현의 작품은 반짝거리는 움직임으로 화려한 느낌을 주지만, 현란한 색보다는 빛에 반응하기 좋은 모노톤이 선택된다. 가령 사각형과 입방체 위에 얼룩진 색은 재색 계열인데, 그것이 물이 가지는 자연색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물이 포괄하는 수많은 색 중의 하나일 뿐이다.

복잡한 외곽선을 가진 재색 표면에서 투사와 반사가 동시에 일어난다. 바닥에 큐브들을 설치하는 작품의 경우, 미러 시트지를 깔아서 반사와 투사를 재차 반복하게 한다. 이를 통해 물과 거울을 오가며 현실을 반영하는 또 다른 공간이 만들어 진다. 물의 심층이 아니라, 표면의 유희에 주목하는 작가는 물에 비친 이미지에서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오미현)을 발견한다. 총체적인 환경과 반응하며 민감하게 변화하는 표면들은 무늬가 박힌 큐브라는 단위구조의 조합과 배치를 통해 인공적인 차원에서 재구성된다. 수 백 개의 큐브가 발처럼 늘어뜨려진 구조, 수 백 개의 철망들을 한쪽 벽에 드로잉처럼 붙여놓은 방식, 부조나 분수처럼 큐브가 바닥에서 올라오는 구조 등 다양하다. 오미현의 작품은 손이 많이 가는 전형적인 노동집약적 작업이지만 이미지 수집, 일러스트 및 커팅 작업 등에 디지털 미디어 또한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끊임없이 표면을 바꾸는 흐르는 물은 단순한 무기물이 아니라, 유기체적인 양상을 보이며 자연을 집약하는 소재이다. 결코 비워지거나 텅 비워진 시공간을 남겨 두지 않는 물은 그것을 또 다른 상태로 담아내려는 계획된 형식과 만난다. 물은 종교를 비롯한 인류의 상징적 우주 속에서 그자체가 무엇인가 태어나고 소멸하는 원초적 바탕이 되어 왔다. 물은 ‘잠재성 전체를 상징하며, 원천이자 기원이고 존재의 모든 가능성의 모태’(엘리아데)이다. 오미현에게 물은 형상이 발현되고 생성되는 과정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것은 굳어진 것, 단단한 것과 달리 매우 유동적이고 불분명하다. 작가는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갖지 않는 운동들 속에서 형태들을 추출하고 일단 큐브라는 안정된 구조에 담지만, 그것은 시공간이 순간적으로 절개된 스냅사진에 불과하다. 오미현의 큐브들은 이 스냅사진적인 것에 영화적인 움직임을 부여하여, 원래 대상에 내재한 끊임없는 운동을 재생한다. 작업은 형태에서 형태로 변환되는 불연속의 지점들을 최대한 노출하는 것에 집중된다. 이러한 질적인 변환이 가능 한 것은 마치 원자와도 같이 작동하는 수 백 개의 큐브들의 양적 쇄도이다. 비확정적인 것을 확정하는 물질적 바탕은 잊혀지고 공간은 산란하는 빛의 입자 같은 에너지의 흐름으로 출렁인다. 투명한 기하학적 표면 위의 무채색의 얼룩들은 예기치 못한 복합적 흐름들을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카오스나 프랙탈 이론 같은 과학의 모델과도 닮아있다.

흐르는 물은 늘 시간과 비교되어 왔다. 오미현의 작품은 미세한 선의 흐름으로 가시화된 물 표면의 움직임과 그것에 내재된 시간의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매순간 그 형태를 바꾸기 때문에, 시작과 끝을 확정지을 수 없는 모호함이 두드러진다. 혼돈의 과학을 주장하는 미셀 세르는 [해명]에서 시간은 선을 따라 흐르는 것도 아니요 어떤 계획을 따라 흐르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시간은 굉장히 복잡한 다양성을 따라 흐른다. 말하자면 시간은 멈추는 지점들, 단절들, 구덩이들, 놀라운 가속도를 만들어내는 장치들, 균열들, 공백들, 우연히 씨 뿌려진 전체 등을 가시적인 무질서 속에 보여준다. 그러나 혼돈은 그냥 혼돈으로 방치되지 않는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자연의 불규칙적인 모양들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규칙을 찾아내기 위해 시뮬레이션 모델과 인공적 장치들을 가동하는 것과 가찬가지로, 예술가들의 실험 또한 그러하다. 오미현의 이전 작품 제목에 들어있는 ‘프랙탈fractal’이라는 개념처럼, 자연의 불규칙한 패턴에 관한 연구와 무한히 복잡한 형상에 관한 탐구에는 지적인 교차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체유사성(self-similarity)이다. 과학저술가 제임스 글리크에 의하면 프랙탈이란 이처럼 자체적으로 유사함을 말한다. 자체 유사성은 회귀, 즉 패턴 안의 패턴을 의미한다. 오민현은 공간 안의 공간을 통해 패턴을 무한히 반복하는 방식을 통해 자연의 복잡한 기하학을 조형적인 차원에서 펼친다.

그녀의 작품에서 물은 ‘자발적인 질서와 구축적 질서가 내재된 자연생장’과 이 양 극단 아래 놓인 ‘분열생성(schismogenesis)’(가라타니 고진)이 있다. 자연적 실재는 과정으로 변화하며, 큐브라는 인공적 조립물이 만드는 관계망을 통해 조명된다. 끊임없이 유동하며 서로의 경계를 침식하는 물의 흐름과 획일적인 입방체의 만남은 그만큼이나 극적이다. 큐브를 이루는 사각형은 인간의 상징적 우주에서 오랫동안 질서를 상징해 왔다. 프란츠 칼 엔드레스와 안네마리 쉼멜의 저서 [수의 신비와 마법]은 4를 세상에서 최초로 인식된 질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고 말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4는 다양성에 질서를 부여한다.

지구가 정방형 모양을 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초기의 많은 문화에 퍼져 있던 통념이었다. 중국인들은 그들의 전답과 가옥 그리고 마을을 모두 정방형의 원리에 따라 만들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비례와 척도의 감각은 정사각형에서 대각선이 교차되는 점은 인간의 배꼽의 위치와 일치한다고 보았다. 현존하는 중세 유럽의 도시들의 광장들도 거의 완벽하게 정방형을 보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4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기하학적 형태를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각형은 예로부터 완전하고 확고한 형태로 간주되었다. 오미현의 작품에서 사각형이 모인 입방체는 보편적 질서를 내재한 보이지 않는 구조로서, 단지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임의의 형식이 아니라, 일련의 변형규칙을 함축한다. 동일한 형식들로 만들어진 단위구조들은 무한을 담으려 한다. 빛을 산란하는 수많은 입방체들은 닫혀 있음으로 열린 구조를 가지는 것이다.

전시제목어두운 방

전시기간2010.11.05(금) - 2010.11.27(토)

참여작가 오미현

초대일시2010-11-10 18pm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청계창작스튜디오 Cheonggye Art Studio (서울 종로구 장사동 센추럴관광호텔내 3층)

연락처02-2285-3392

Artists in This Show

오미현(Oh Mi-Hyun)

1971년 출생

청계창작스튜디오(Cheonggye Art Studio) Shows on M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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