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ersion Era 전환의 시대
민은주(현대미술연구소)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데리다(Jacques Derrida)가 주장하는 해체주의(deconstruction)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형식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자주 설명되어 왔다. 서구사상의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사물과 언어, 존재와 표상, 중심과 주변 등의 이원론을 부정하는 해체주의는 모든 현상의 본질에 의문을 갖는 것으로, 문학과 예술, 건축과 구조뿐만 아니라, 사회와 경제, 정치 분야에서도 그 이론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현대미술에 있어서 해체주의는 자크데리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해설학적 대상”이 아니라 “개념화 될 수 없는 것의 보존”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명확하게 정의 할 수 없는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미술은 사물의 재현이라는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나 기존의 닫힌 의미들의 체계에 도전하고 허구적 실재라는 환영과 부재된 주체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가 꾸준히 전개 되어 왔다. 21세기,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 현대미술은 그 동안 매우 복잡 다양하게 전개되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을 또, 새로운 시각으로 고찰하거나 부정하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남용된 “개념의 보존”에 대한 또 다른 대안을 탐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일부는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후기 포스트모더니즘), 밀레니엄 아트, 혹은 뉴아트 등의 명칭을 사용하여 포스트모더니즘과 다른 부분들에 주목하며, 미래의 미술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고 있다. 이미, 경계가 사라지고 장르가 통합된 오늘날의 미술을 ‘포스트모더니즘의 후반기로 볼 것인지 혹은 새로운 시대의 전초기로 볼 것인지’, ‘전통사상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시대의 전통인지, 아직도 진보라 말할 수 있는지’ 등의 명확하지 않은 이 시대를 우리는 잠시 ‘전환의 시대 Diversion Era’라 칭하고자 하며, 그 대표적인 작가로 강영민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강영민의 작품 전개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면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발견, 의미와 형태의 해체, 그리고 새로운 가상의 재현으로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전개는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작품 전반에 교차되는 하나의 커다란 흐름에 속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하는 개념이다. 첫 번째 부분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하여 새로운 관찰을 시도한 작업들로, 기성이미지나 오브제를 사용하거나, 이미 익숙해진 사회 시스템과 그 대상들을 소재로 하는 유희적인 작업들로 살펴 볼 수 있겠다. 도시풍경 사진을 우주선의 형태로 조합하여 과거와 현재의 결합을 시도하거나, 만화책의 이미지를 오려내어 해학적 돌출을 표현한 작품들은 이전에 간과하였던 익숙한 사실들의 이면을 발견하게 하여, 사물 또는 현상의 진지한 탐구를 시도케 한다. 두 번째 부분은 의미와 관념, 혹은 시스템과 형태를 해체하는 작업으로, 강영민의 작업 전반에 나타나는 환영 Illusion에 대한 고민과 깊게 연관이 있다. 시각적 이미지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을 충족한 환영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작품을 전개해 나갔으며, 각각 독립된 단위unit의 조합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그 예라 하겠다. 세 번째는 사물 혹은 현상을 재해석하는 작업들로 작품은 종종 표면적 의미, 상징적 의미, 은유적 의미를 가지며 통찰의 과정으로 전개되어 간다. 문화의 혼성을 표현한 작품들과 관념을 벗어나 새롭게 정의된 사물들은, 지금까지 인식해왔던 익숙한 현상들을 낯설게 만들고 새로운 시각으로 주변을 살펴보게 한다. 이처럼 매번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강영민의 작업이 모호한 경계에서 서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작업의 특징과 본질을 살펴보고자 한다.
강영민의 작업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환영 이미지의 재현 (Presentation of Illusion)’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시각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가상’ 즉,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관점으로 작업을 해왔다. 초기의 작업은 TV모니터에서 보여지는 주사선(scanning line)에서 착안을 한 작업 시리즈로, 일반적으로 브라운관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재현된 현실이 아니라, 일정한 수의 화소Pixel가 조합되어 이루어진 환영Illusion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강영민의 대표 작품인 <재건 시리즈Reconstruction series>는 픽셀화 된 모니터의 주사선이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이, 독립된 픽셀로 이루어진 가는 띠를 연속적으로 조합하는 방법을 통해 도시의 단편적 이미지를 제작하였다. 평면회화에서 나타나는 원근감과 설치공간에서 보이는 독특한 거리감으로 도시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으로 보이게 되는데,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실재하는 공간이라고 믿게 하는 패럼네시아 paramnesia (기억착오)를 경험하게 한다. 동일한 이미지의 각각 다른 부분들을 조합시켜 하나의 커다란 형상을 만들어내는 <인물시리즈Face series>에서도 이미지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환영에 주목해 볼 수 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정립과 반정립의 이론을 통해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 관계에 대하여 논한 적이 있는데, 인물의 형상을 이루는 파이프 형태의 부분 이미지는 그 이미지 자체로 독립적일 수 없고, 부분으로 이루어진 전체의 이미지 역시 실체라 볼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이는 강영민의 독립된 요소로 이루어진 환영Illusion의 이미지, 즉, 파이프의 부분 이미지로 이루어진 전체 이미지는 한 인물의 형상을 보여주지만, 이는 형상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장치에 불과하며 실제로 인물의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것이다.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인물을 대표하는 작품 <조지George>에서도 매체가 만들어내는 환영Illusion의 권력을 무기력하게 하려는 시도와 함께, 소외된 주체에 대한 자각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강영민의 ‘환영 이미지의 재현’은 대중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현상에 대해 예술적 유희라는 장치를 설정하여 감추어진 이미지 이면의 불편한 진실들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강영민의 일루션에 관한 일관된 작업은 시각적 이미지에서 나타나는 실체의 부재라는 ‘가짜 현실’에 대한 폭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그리고 정치적인 현상을 포함한 왜곡된 인식이 가져오는 ‘가짜 현실’이라는 의미로 확대해 볼 수 있다. 미국의 문예 비평가 D.E. Hirsch는 그의 저서에서 작품을 해석하기 위한 ‘의미(meaning)’의 용어를 참뜻 significance과 숨은 뜻implication으로 구분해서 사용하기를 제안하였는데, 특히 강영민의 작품들은 그것이 표현하는 것과, 상징하는 것, 그리고 암시하는 것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진다. 전시를 통해 몇 차례 소개 되었던
은, 포르노그라피 책자에서 발췌한 수 백 개의 여성의 신체 조각을 두개골 형태의 철망 위에 붙여나가는 작업으로, 욕망과 죽음이라는 소재를 아이러니하게 중첩시키고 있다.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 작품의 표면적 의미라면, 잘려진 신체, 즉 훼손된 포르노그라피는 죽음을, 스킨으로 덮인 두개골은 생명을 상징하며 각각 표면적 의미와 반대되는 상징성을 갖게 된다. 이러한 상징성은 또 하나의 알레고리를 만들어 내면서 사회의 부조리한 부분을, 혹은 진리의 왜곡된 부분을 드러내기도 한다. 강영민의 작품 <중력제로 Gravity Zero>는 건설과 붕괴가, 무게감과 무중력이, 해설과 생략이 동시에 존재하는 작품으로 그것이 상징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의미하는 것을 각각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함축된 도시를 상징하는 <크루저 시리즈Cruiser series>는 평명과 입체, 과거와 현재, 정착과 이동 사이에서 정의 할 수 없는 모호한 구분을 함께 담아 내고 있다.
강영민의 ‘환영 이미지의 재현’은 종종 문화의 혼성 속에서 하나의 장벽처럼 나타나곤 한다. 유럽인의 감성과 미국의 대중문화가 맞닿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중국의 값싼 소비재의 시장 잠식을 패러디 하는 <중국산 트로이의 목마>, 인스턴트의 파괴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라맨>과 같은 작품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가벼운 문화적 소재이나,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는 수많은 경험에서 오는 습관적인 사물의 인식Cognition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문화현상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된 본질을 잊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다 주는데, 그런 의미에서 고정관념 혹은 습관된 인식의 행위도 작가가 제시하는 환영, 즉 가상된 현실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겠다. 선취된 방법으로 현상을 조망하고 반복되는 인식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의식의 탄성력이 만들어낸 인식과 이해, 그리고 기억과 환영이 만나는 지점에서 강영민의 작품들은 탄생하고, 그 아스란 접점에서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의 공간을 끊임 없이 제시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의 의의를 찾아 볼 수 있다.
강영민은 지금까지 일관된 개념을 통해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를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보려는 시도를 해왔으며, 특정한 매개체를 재구성함으로써 가능한 시각들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에 비해 최근 작품들은 좀 더 직접적인 접근이 시도되는데, 최근 진행 중인 <에너지세이버 시리즈 Energy Saver Series >는 에너지가 가지고 있는 절대적 권력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으로, 문명의 대립, 권력의 쟁취, 절약을 위한 소비, 공간의 점유 등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으며, 공간이 가지고 있는 과장된 권력을 유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탐구하거나 혹은 부정하거나, 그것이 예술이거나 정치이거나, 미술은 단지 해석자와의 만남 속에서 새로이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하게 열린 시각을 생성해내며, 이를 위한 끊임 없는 창조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 거기에 진정한 예술의 의의가 있으며, 이러한 미술의 역할이 오늘날, 전환의 시대에 예술이 갖는 역할이자 힘이 아닐까 한다. 전시제목Can Cross Culture project 2010
전시기간2010.10.29(금) - 2010.11.19(금)
참여작가
강영민
초대일시2010-10-29 17pm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일요일
장르미디어와 공연예술
관람료무료
장소스페이스 캔 Space Can (서울 성북구 성북동 46-26번지)
연락처02-766-7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