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의 뼈, 그 숭고한 아름다움 최찬미의 뼈 조각과 그 의미 최찬미의 작업은 '미(美)'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그의 첫 질문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있으나 실상은 미의 근원적인 의미를 탐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원적인 아름다움으로서 '절대미'는 한 시대에 끝나지 않고 시대를 초월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런 질문을 그의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발화하며 어떤 유효성을 획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질문이 미의 개념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해소하려는 의도는 아니며,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의 해석을 위해 그 첫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는 물고기 뼈를 조각적 재료로 이용하되 뼈의 관념적 인식과 상상을 여지없이 해체하는 일종의 명품들-티아라, 브로치, 목걸이, 하이힐, 클로치 백, 핸드백, 드레스 등-을 제작해 왔다. 인간의 식욕을 위해 육체를 탈취당한 물고기 뼈를 보면서 그가 가졌던 질문이 바로 "미란 무엇인가?"인데, 그런 의문을 놓지 않으면서 뼈를 조합해 미의 형상을 탐색해 온 것이다. 자, 그렇다면 그가 지속적으로 의문하는 미란 무엇이며, 미와 뼈, 뼈와 형상 그리고 그 형상의 미학적 개념까지 상호 알레고리는 어떻게 형성되고 이어졌는가. 우리는 "미-뼈-형상-형상성"으로 이어지는 알레고리에 대한 해석을 통해 최찬미가 궁구하는 미의 근원, 어떤 절대미의 숭고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미적 탐색 : 뼈와 형상의 알레고리 한자어 미(美)는 '羊(양)'과 '大(대)'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이며, 상형문자인 '羊'부의 글자이기도 하다. 직설하면, 양이 클수록 아름답고 털이 곱다는 뜻이지만, '맛나다', '(맛이)좋다', '즐기다'의 뜻으로도 쓰인다. 토템에서는 미가 큰 양의 뿔로 상징되는데, 양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기도 했고 또한 그것은 큰 힘을 가진 자(양의 뿔을 머리에 쓴 제사장)를 은유하기도 했으니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羊'부의 다른 글자들 '羏(양)', '義(의)'와 '口(구)'부이긴 하나 '善(선)'의 의미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아름다움', '옳음과 의리', '어질고 좋음'의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볼 때 미는 인간이 갖춰야 할 덕성에 관한 것이며 한편으론 윤리적 의미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상상을 더해 본다면, 미란 기독교 전파 이전의 파가니즘(paganism. 순전히 이교도라는 뜻이지만 그것은 자연숭배, 토템적 신앙을 가진 종족을 일컫는 말에서 비롯되었다)적 전통 하에서 뿔을 쓴 자들을 가리키며, 동일한 관점에서 고대 동양에서도 큰 뿔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베리아, 티베트, 몽골의 선사시대 암각화에서 샤먼의 존재로서 뿔을 쓴 자들이 종종 목격되고 있으니 말이다. 뿔이 뼈의 일종이라 할 때, 뿔은 미의 근원적 의미를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밑 개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고기 뼈와 양의 뿔을 비교하는 것은 그 격차가 너무 크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양의 성질을 빗대어 상징화한 개념을 물고기로 바꿔 놓을 수도 없다. 대 초원의 유목민으로부터 발화된 미의 개념을 21세기 디지털 환경의 신개념으로 변환할 수 있다 손치더라도 이미 수 천 년 간 확정된 개념을 순식간에 바꿔 놓을 순 없는 것이다. 심지어 물고기를 뜻하는 '漁(어)'는 미와 달리 빼앗고 약탈하는 폭력적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물고기와 양이 아닌 '뼈와 뿔'의 의미로만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물고기 뼈와 양의 뿔이 아닌 단지 하나의 상징으로서 '뼈와 뿔'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최찬미는 생선이 소비되는 수산물 시장과 음식점 등에서 물고기 뼈를 수거했다.
그 과정은 대체로 유사할 것 같으나 실제로는 참으로 험난한 과정이다. 부천 자유시장에서 그는 비린내가 심한 고등어, 동태, 이면수의 뼈를 얻었고, 청량리 근처의 아귀 전문점에선 아귀찜을 먹고 그 뼈를 취했다. 송내동의 한 해물요리집에선 가리비, 전복, 키조개, 소라, 꽃게와 같은 껍질을 수거했고 소래 포구 젓갈집에선 정체불명의 아가미 뼈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가 2월부터 10월까지 작성한 일종의 작업일지(수거일지이기도 할 터)에는 날짜별로 각 장소에서 뼈를 획득하게 된 상황과 취득 어종 그리고 그 어종의 특징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다. 예컨대 5월 19일의 일지를 보면, 무진장 음식점에서 꽁치등뼈를 취득했는데, 이날의 상황에 대해 그는 "첫 번째 티아라 만들다. 저녁에 어머니와 (함께)간 음식점에서 나온 밑반찬 중 꽁치 뼈 발견! 티아라 뼈대를 얇은 광어 뼈에서 꽁치 뼈로 변경"이라 쓰고, 비고란에 "광어 뼈보다는 얇은 꽁치 뼈가 더 예쁘다는 것을 앎. 이후로 웬만한 틀에는 꽁치 뼈가 쓰이기 시작함"이라 메모해 놓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5월 20일 「티아라1」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제품명은 CMTR10052021이고(자신의 영문이름의 앞 이니셜과 제작 년 월일을 명기한 것임), 사용된 뼈는 꽁치, 도미, 우럭, 숭어, 고등어다. 뼈는 이렇듯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모아졌으며, 그 중간 중간 작품을 조립하고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생선을 수거한 뒤 뼈만 발라내기 위해 다시 재처리과정을 밟았다. 어떤 것은 물로 깨끗이 닦아내는 것으로만 해결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많은 뼈들은 다시 삶아지고 분해, 해체된다. 작품으로 조립되기 전까지 생선뼈는 마치 다비의 불꽃으로 소멸된 한 육체의 투명한 사리처럼 명징하게, 투명하게 응결되는 것이다. 사리가 불의 뼈라면 생선뼈는 물의 뼈라 할 수 있겠다. 육체의 진신(眞身)으로서 그 사리는 불교미학의 핵심인 스투파 즉 탑이 되었다. 최찬미 또한 육체의 진신으로서 물고기 뼈를 모아 작품을 탄생시켰다. 미가 상징으로서의 '큰 뼈'라면 뼈의 사리를 모신 탑과 최찬미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미의 상징이 아닐까.
형상의 구축 : 미의 실현과 숭고의 발현 그는 마지막 재처리를 끝낸 뼈들을 다시 형태에 따라 분류한다. 생선의 형상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의 구성을 위해 뼈의 특징을 분석한 뒤 여러 개의 통에 분류해 놓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물고기에서 추출된 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아름답다. 얇은 종이 막 같은 것에서 진주알까지 형태별 분류 계통도는 수십 가지에 이른다. 더 세밀하게 쪼개 분류한다면 수백, 수천이 될 수도 있으리라. 최찬미는 사려 깊게 그것들을 분류하고 분석한 뒤 자신이 구상하는 형상을 조립해 나간다. 기본적으로 그가 추구하는 형상은 본래 그것들이 수거될 때의 잔혹한 육체를 역전시킬 수 있는 화려한 형상이면서 동시에 그 의미를 깊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하여, 그가 선택한 형상들은 대부분 여성의 미적 취향과 관련된 명품 액세서리들이다. 「브로치-CMBC10062761」는 숭어, 우럭, 고등어 뼈가 사용되었고, 「목걸이-CMNL1010071451」는 숭어, 우럭, 꽁치, 고등어, 「티아라2-CMTR10080222」는 숭어, 가자미, 광어, 고등어, 꽁치, 「티아라3-CMTR10080323」는 꽁치, 숭어, 우럭, 고등어 그리고 「하이힐-CMHH10081241」엔 우럭, 아귀, 꽁치, 숭어 뼈가 조립되었다. 작품의 형상에 따라 뼈들은 그 부위별로 빛을 발하며 응집되어 있는데, 작품 하나하나에는 그것들을 세심하게 이어붙인 작가의 노고가 그대로 묻어난다. 집요하리만큼 명품의 아우라를 작품에 녹여내고 있는 셈이다. 9월 8일에 완성된 「핸드백-CMBG10090831」은 노량진 선경 수산에서 수거한 엄청난 양의 숭어비늘을 이어 붙인 것이지만, '핸드백'은 이름 모를 어떤 보석들로 제작된 것인 양 담백한 은빛을 발산하고 있다. 명품과 아우라. 최찬미의 전략은 흥미롭다. 그의 뼈 작품이 명품보다 더 명품다울 때 그의 전략은 더 빛나기 때문이다.
미의 발현은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진신사리를 모신 탑처럼 그의 작품들도 드디어 하나의 진신사리로서 그 자신의 탑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은 그 자체로 미학이며 완성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진신사리의 미학적 결정을 뛰어 넘을 수 없다. 오로지 활활 타는 불에 의해서만 완성될 뿐만 아니라 해탈에 이른 육체가 아니면 또한 안 되기 때문이다. 물의 뼈로서 물고기의 숱한 뼈들로 완성된 그의 작품들은 그래서 그것이 브로치든 아니면 티아라든 하이힐이든 완성된 그 자체로 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드레스-CMDR10102711」는 가리비, 숭어, 우럭, 광어, 가자미, 연어, 꽁치의 진신이 현실로 현현한 사리의 결정이라 할만하다. 이전의 모든 작품은 바로 이 옷의 출현을 위해 준비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옷의 출현으로 한 육체의 몸이 완성되었다. 그 몸은 그가 그토록 탐색해 왔던 미의 육체일 터이다. 그리고 그 육체에선 온갖 번뇌와 미혹에서 해탈한 물고기의 영혼이 엿보인다. 살아서 칼질 당하고 뼈만 남아 버려진 그 육체의 영혼, 그 숭고한 아름다움이. 그것은 또한 완전한 죽음 뒤의 부활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품의 출발은 언제나 수미쌍관처럼 결론에서 다시 새로운 출발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최찬미의 작업이 미에 대한 의문과 화두에서 시작되었으나 어떤 미의 결정론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 터. 그렇다면 미의 개념이 고대 동양에서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인간이 갖춰야 할 덕성'과 '윤리성'에 대해 새롭게 의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된다. 물론 그것은 물고기 뼈와 상관해서 좀 더 지속적인 탐색으로 가야만 할 것이다. 미의 발현, 미의 육체, 그리고 미의 숭고는 단숨에 성취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쉽게 흩어질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차후를 기대한다.
- 김종길 전시제목REVIVAL
전시기간2010.10.27(수) - 2010.11.02(화)
참여작가
최찬미
초대일시2010-10-27 17pm
관람시간10:00am~19:00pm 일,공휴일 오전1:00~오후07:00
휴관일없음
장르선택하세요
관람료무료
장소사이아트갤러리 Cyartgallery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사이아트갤러리 b1층)
연락처02-3141-8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