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검은 검정색 - 생명의 숲
검정과 생명이라는 대비되는 단어가 최용대의 작품에서 역설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죽음, 그림자, 절망 등을 상징하는 검정색과 자연의 순환과 생명을 상징하는 숲의 대비가 그것이다. 그의 그림은 검은 숲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생명으로 다가가게 하는 역설적인 검은 숲인 것이다. 사실 빛을 흰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동시에 밤이나 어두움을 검정색이라고도 단정할 수 없다. 검정은 빛의 상실이 아니라 모든 파장을 자신 속에 유일하게 머금게 하는 색으로서 상당히 많은 빛이 내재된 색이라고 알려져 있다. 검정색은 팔레트에서도 여러 색의 혼합이 풍부해지면 질수록 깊은 검정색을 얻어낼 수 있는 연금술적인 색이다. 이와 같이 최용대는 다양한 뉘앙스를 지닌 연금술적인 검정색을 직관적으로 느끼며 화면에 포착해내고 있다. 또한 검정색의 무한한 변위의 생생함을 창출하기 위해 그는 유화나 아크릴릭 물감이 아니라 검정 안료를 피막처리가 되지 않은 캔버스 천에 칠하였다. 그로 인해 무언가 즉물적인 날것의 색, 혹은 순혈이 지켜진 가공되지 않는 진지한 느낌을 지닌 검정색이 드러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 검은 숲은 세속을 한 발자국 구별하게 하는, 절제되면서도 풍부함을 지닌 심오한 다른 공간으로 관람자를 이동시킨다. 무(無)이면서도 모든 것이기도 하는 ‘가장 검은 검정색’을 추구하는 그런 지점으로의 이동이다. 가슴의 울림으로부터 진지하게 귀기울려진, 혹은 가슴으로부터 흐르는 밀도 있는 깊은 검정색으로의 이동이다.
생명의 숲
최용대는 지속적으로 나무를 그려온 작가이다. 나무를 상징하는 단순한 형태를 텍스트와 함께 배열하는 지적인 방식을 트레이드마크로 제시해 왔다. 이는 자연의 매개체로서 나무의 형상을 다루어 생명의 근원, 혹은 생명의 순환을 암시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었다. 여전히 이 나무를 통해 생명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최근작에서 사뭇 그 방식이 달라진 점을 주목해볼만 하다.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먼저 나무들의 개별적 단위들이 없어지고 나무들이 대지에 서있는 숲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이전 작품에서 보여지는 개념성이 강조된 나무들이 아니라 땅에 실제로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자연의 순환의 논리에 순응하기도 직면하기도 하는 숲을 그리고 있다. 거기에는 이전의 화면에 줄기차기 따라다녔던 텍스트들도 완전히 소멸했으며 나무를 상징하는 단순한 도상들도 증발함으로써 기운생동 한 활달한 붓놀림이 가득한 회화적 화면을 선보이고 있다. 이전 작업과 마찬가지로 흑백의 대비를 고수하면서도 이러한 변모로 인해 그 숲은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풍부하면서도 절제된, 여운이 짙으면 서도 담백한 느낌으로 가닿게 된다. 사실 숲은 모든 생명의 서식지이자 자연의 이치를 담은 비밀의 장소이다. 빽빽한 숲은 가시거리를 차단시켜 두려움을 일으키면서도 세속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그 속에 있는 이에게 명증하게 하는 심오한 공간이다. 최용대가 그려낸 맹렬하면서도 호전적인 강한 필치가 넘치는 검은 숲은 마치 북구 낭만주의 풍경화에서 느껴지는 듯한 기품 있는 우울과 신비의 분위기로 인해 세속의 소란함을 차단시키는 차분한 공간을 창출해내고 있다. 그것은 근원을 감지하게 하는 신성한 생명의 숲이다.
치유의 공간
검은 숲과 생명의 숲이 만나 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치유의 공간이 아닐까 한다. 설치작업에서 등장하는 나무를 감싸는 붕대는 나무를 치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나를, 나아가 사람을 치유하는 기물로 읽혀진다. 재미있는 것은 붕대에 에워싸인 그 나무는 별로 아파보이지 않는다. 엄밀히 그것은 나무를 치료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관의 외상이나 상처를 덧나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적 붕대가 아니라 사람의 내적인 상처를 감싸 치유하는 제의적 표상이다. 가장 검은 검정색이기에 모든 것을 수용할 것과 같은 블랙홀의 풍광, 그 검은 숲에서 생명의 치유가 일어나길 기대해본다.
- 김지영(미술평론, 인터알리아 아트디렉터) 전시제목La Forêt
전시기간2010.10.13(수) - 2010.10.19(화)
참여작가
최용대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 )
연락처02-733-10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