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몽환서: 소란한 공백

2026.07.01 ▶ 2026.08.15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종로구 율곡로 85 (원서동, 볼제빌딩)

Map
  • 이지현

    Spinola Hours_December: Capricorn 스피놀라 시간_12월: 염소자리, 2023-2025 Oil on canvas 213.3 x 152.4 cm

  • 이지현

    Threshold_Sandy Beach_1 경계_모래사장_1, 2011 Oil on canvas 244 x 183 cm

  • 이지현

    Sealed Garden 봉인된 정원, 2026 Oil on canvas 122 x 91.5 cm

  • 이지현

    Vesper_Folded Hours_2 빛이 덮이는 시간_2, 2025 Oil on canvas 182.9 x 122 cm

  • 이지현

    Interstice_Double Passage 간극_이중 통로, 2026 Oil on canvas 182.9 x 122 cm

  • 이지현

    Flying Object 날아가는 오브제, 2023 Acrylic on wooden panel, watercolor on stuffed muslin, sewing pin ∅25.5 x 12.7 cm

Press Release

빈 화면, 그 소란스러운 공백을 마주하는 작가의 첫 순간을 상상하여 본다. 고정된 상태에 머물지 않는 한시적 여백, 유예된 침묵을 대면하는 자의 시간을 가늠해 보는 일이다. 회화의 이유는 결국 불확실한 세계의 일각을 손에 잡히는 물성과 눈에 보이는 구조로 번역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에 있지 않을까. 이지현의 회화는 오래도록 작가의 내밀한 사적 기억을 외부 세계의 공적 담론과 연동시키는 매개체로서 기능해 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로부터 비롯된 이미지들은 화면 위에 중첩됨에 따라 혼종적 군집으로 재구성된다. 형상들은 저마다 꿈속에서 목격한 풍경이나 모호한 기억의 상태를 지시한다. 각각의 요소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일부를 지니면서도, 초현실적인 구조 안에 재배치됨으로써 보통의 날들로부터 멀어진다.

이지현의 관념적 주제, 가령 꿈속의 장면이나 내밀한 기억들, 신화적 요소들은 회화라는 매체가 갖는 물질적 속성, 즉 재료의 물성 및 지지체의 면적과 같은 형식적 조건들과 결합됨으로써 하나의 회화적 이미지로 번안된다. 작업 과정 속에서 이미지는 그리는 자의 의식 세계를 경유하여 한 차례 번역되고, 신체적 움직임을 통한 재현의 단계에서 또 한 번 재구성된다. 이때 화면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매 순간 닥쳐오는 미래의 시공간이 조우하는 물질적 장으로서 기능한다. 이처럼 특수한 회화의 화면은 결국 최초의 관념적 서사를 보다 정동적인 차원의 경험으로 탈바꿈시킨다. 달리 말하면, 물질적 장으로서의 회화는 개별 요소와 세부 서사의 언어화에 앞서 언제나 신체적 마주침의 순간에 즉각적으로 경험된다.

이번 전시 《몽환서: 소란한 공백》에서 이지현은 세 개 층으로 나누어진 건축 구조에 의식의 층위를 투영한다. 그로써 전체의 전시 공간은 세 가지 다른 장으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책에 비유된다. 〈스피놀라 시간〉(2020–2025) 연작을 비롯한 최근작은 16세기 초 플랑드르에서 제작된 채색 필사본인 『스피놀라 시도서 Spinola Book of Hours』(c. 1510–1520)를 접한 경험을 주요한 계기로 삼는다. 시도서(時禱書, Book of Hours)는 기도문과 시편, 달력, 세밀하고 호화로운 삽화를 포함한 책으로, 일정한 시간에 행하는 기도의 내용을 포함한다. 『스피놀라 시도서』는 중세 이탈리아 제노바 지역의 스피놀라 가문이 소유하였던 기도서로, 책의 페이지를 각각 하나의 공간처럼 연출하였으며 환상적인 테두리 장식과 건축적 구조의 활용, 다층적인 구성을 특징으로 갖는다. 이지현은 낯선 시대와 문화의 유산인 『스피놀라 시도서』의 존재로부터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꼈음을 고백한다. 이는 미국이라는 타지에서 경험한 불안과 고독의 감각을 인류의 보편적인 신앙적 실천에 투영하여 얻은 일종의 위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지현의 회화는 의식과 무의식, 꿈과 현실, 언어와 비언어의 층위를 교차적으로 횡단한다. 그 과정 속에서 회화라는 사건에 연루된 시간과 공간의 속성들은 저마다 물감에 용해되고, 층층이 중첩된다. 화면 위에 되새김된 기억과 기록, 신화와 역사의 파편들은 작가의 주관적인 질서 아래 완전히 새롭게 재배치된다. 그렇게 구축된 화면은 모든 마주침의 사건 속에서 즉각적인 정동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신체적으로 감각되고, 의식적으로 포착됨에 따라 마주한 존재들의 정서를 변화시킨다. 촉각적인 신체에 마주 닿는 환영으로서의 회화는 낯선 존재 사이 비언어적 공명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현실의 장소 위에 내려 둔 닻이 아닐까. 무수한 환상으로 소란한 이지현의 회화는, 가장 내밀하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인 마음의 공백에 호소한다.

–「회화의 시공간과 의식의 층계들」 중에서 발췌 | 박미란 (아라리오갤러리 팀장)

전시제목이지현, 몽환서: 소란한 공백

전시기간2026.07.01(수) - 2026.08.15(토)

참여작가 이지현

관람시간11:00am - 06:00pm

휴관일월요일 휴무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아라리오갤러리 Arario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 85 (원서동, 볼제빌딩) )

연락처02-541-5701

Artists in This Show

이지현(Jihyun Lee)

1979년 서울출생

아라리오갤러리(Arario Gallery) Shows on M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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