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미대생 1945-1949 《석정 한진수 교수 상수전》 石亭 韓珍洙 敎授 上壽展

2026.06.09 ▶ 2026.06.20

이화아트센터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A동 2층

Map
  • 전시포스터

  • 한진수

    동심, 1957, Oil on Canvas, 130x97cm

  • 한진수

    여인II, 1958, Oil on canvas, 116.5x90cm

  • 한진수

    1949년 9월. 제1회 《녹미전》 명동 대원화랑, 뒷열 신금례 유모열 김순자 박인경, 앞열 한진수 최영준

  • 한진수

    2022년 개인전에서의 한진수,

Press Release

1. 기획의도

광복이 되자마자 기존의 대학들은 새로운 시대의 인재를 배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 이화여대는 1945년 미술 전공을 국내 최초로 4년제 대학에 개설하였다. 이들은 1945년~1949년까지 대학에서 교육 받고 졸업하여 광복 후 국내에서 교육받은 최초의 미술대학생이자 졸업생이 되었고, 한국 현대미술계의 작가이자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한진수는 광복 후 국내에서 교육받은 서양화가 1세대로서 최초로 국내 미술대학을 졸업한 17명 중 하나이다. 또한 대학을 졸업한 1949년 9월에 첫전시회를 가진 국내 최초로 결성된 여성 미술단체인 <녹미회>의 일원이었으며, 국내에서 교육받고 미술 교사가 된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
‘최초의’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들의 고난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게다가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한국 사회에서 활동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화가의 아내로서, 집안의 경제적 가정으로서 역할을 하였으니 지난 삶은 100세를 맞아도 여전히 고운 그의 자태와는 별개의 것이었음을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이번 전시는 올해 상수(上壽·100세)를 맞은 한진수 교수의 예술 인생과 교육자로서의 삶을 기념하는 특별전으로, 광복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80년 화업의 궤적을 조명하는 제자와 동문들이 제1회 졸업생이자 한국 대학교육의 산증인인 한진수에게 바치는 헌사의 전시이다.
올해 100세를 맞은 한진수 교수는 대학 졸업과 함께 동구여상 미술교사로 근무하다가 대학원을 마치고 1968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로 임용되어 1992년 정년퇴임까지 24년 동안 후학 양성에 헌신하였다. 특히 이화여대 미술과 제1회 졸업생으로 모교 서양화과 교수로 임용된 인물로, 학생과 작가, 교육자의 삶을 모두 이화와 함께한 상징적 존재로 평가받는다. 퇴임 당시에는 미술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하고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전》에서 상을 받은 대표적인 작품을 비롯해 엄청나게 많은 드로잉북에서 추린 드로잉들을 전시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 대학미술교육의 산역사답게 꼼꼼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한 그의 아카이브 일부를 전시한다. 1947년 서양화 전공생들의 모습, 1949년 9월 최초의 《녹미전》 전시회 사진과 친필 메모, 전시 도록, 녹미회 관련 자료, 교수 임용 문서, 교육 자료 등 100여 점을 선보인다. 특히 입학 서류와 졸업장, 교수 임용 공문, 신입생 환영사 원고 등은 한진수 개인의 삶과 함께 한국 여성 미술교육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아카이브로서 주목된다.

한진수는 근대기 최고 화가 중 하나인 심형구(沈亨求, 1908~1962), 김인승(金仁承, 1910~2001)에게 그림을 배웠다. 이들 이화여대 미술대학 초기 교수진은 도쿄미술학교 출신이었고, 아카데미즘 계열의 작가였다. 한진수의 앨범에 꽂힌 사진 중에는 <졸업작품전>이 있는데, 흰 한복을 입은 작가가 <자화상>과 여인좌상 사이에 서 있다. 졸업할 때 자화상을 반드시 제출해야 했던 동경미술학교의 교육방식이 이화여대의 교육에서도 적용하였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상진(韓相鎭, ?-1963)에게서는 미술사를 배웠는데 한상진은 1949년에 한글로 쓴 최초의 서양미술사 입문서 『먼나라 미술의 발달-학생 서양미술사 입문』를 집필했고, 같은 해에 허버트 리드(Herbert Read)의 『예술과 사회』를 번역 출간했다. 1949년에 졸업한 한진수는 출간을 위해 완벽히 정리된 한상진의 미술사 이론 강의를 들었던 것이고 이러한 미술이론에 대한 태도는 이후 학생들을 가르칠 때마다 필요에 따라 스스로 이론서를 번역하였던 데서 드러난다.

같은 시기에 활동하고 작품을 지켜보아온 미술평론가이자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오광수는 이번 100세를 맞은 한진수의 전시의 작품에 대해 “그가 남기고 있는 작품들은 상식적인 범주를 벗어난 것이 아니다. 인물, 정물, 풍경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내용이 대부분 교과 과정에서 다루어지는 평범한 범주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작품 하나하나가 거듭되는 데생과 밑그림으로 인해 결코 소홀하게 다루어지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이는 교육과정에서 습득된 완성을 향한 치밀함의 반영이지 않는가 한다. 작품의 영역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것은 일련의 인물화가 아닌가 본다. 화가마다 나름의 기호가 있기 마련이다. 선생의 작품 가운데 인물이 많다는 것은 역시 교과 과정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작품의 크기에서도 인물이 단연 앞선다. 소년, 소녀를 다룬 것이나 코스튬과 누드의 여인 모델을 다룬 작품에서 그 고유의 득의(得意)의 면모를 발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분한 포즈에 따른 그윽한 표정은 화면 전체에 깊은 여운을 남기게 된다. 작가 자신이 언급한 자연으로 향한 애정, 자연의 내적 아름다움이 구현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미술평론가 조은정은 “한진수의 그림으로 감정을 전하고 글로써 대상과 이유를 명확히 하는 태도는 가까운 이에게 정을 나누는 옛 어른들의 그림 그리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선비의 기개를 간직한 지체있는 집안에서 자라 근대에 소학교, 여학교 교육을 받고 한국의 현대가 시작하는 지점에 서양화 교육을 받고 20세기의 끝을 바라보던 그는 현대에 거주하는 20세기인의 삶을 보여준다. 마리 로랑생을 좋아하고 인상주의에 빠져들었으며 아카데미즘 교육을 받았지만 전통의 가치를 지키는 삶 같은 거 말이다. 그림은 소리 없는 음악이요 시라는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적고, 글을 써 그림의 의미를 더하였다. 그의 그림은 전통을 어떻게 현대화하 것인가라는 원대한 포부가 아니더라도 삶 자체를 예술화하고 예술이 곧 삶인 경지를 보여준다.”고 하였다.

전시는 ▲국내 최초 미대생 ▲배움에서 가르침으로 ▲한국 최초 여성미술가 공동체 녹미회 ▲80년 화업 ▲명예교수와 여성미술사의 유산 등으로 구성되어, 한 개인의 생애를 넘어 한국 근현대미술과 여성 미술교육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석정 한진수 교수 상수전》은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서양화 전공이 주최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서양화 전공 동창회와 아틀리에 하원 석정 천병근·한진수 미술관이 후원한다. 전시는 6월 20일까지 이화여대 이화아트센터.


2. 한진수 아카이브

1) 이화 예림원에서 시작한 발걸음 : 최초의 미대 입학생이자 졸업생
1945년 해방 직후, 이화여자대학교 예림원에 미술과가 창설되며 한국 대학 미술교육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한진수는 이 역사적 출발점에 함께한 서양화과 1회 입학생이었다. 심형구, 김인승 두 교수가 중심이 된 서양화과에서의 배움은 단순한 학교생활을 넘어, 여성들이 전문 미술교육을 통해 작가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세대의 경험이었다.
1949년 한진수는 이화여대 예림원 서양화과를 졸업하며 〈자화상〉, 〈여인〉, 〈북한산〉 세 점을 졸업작품으로 출품하였으며 자신의 얼굴, 곁의 인물,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을 표현한 작품들은 지금 서있는 자리와 앞으로의 방향을 동시에 담은 20대의 한진수를 보여준다. 이화는 한진수에게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게 한 배움의 터전이었고, 한진수는 이화 미술교육이 배출한 첫 여성미술가 세대의 한 사람으로 한국 현대미술사의 출발점에 자리하게 되었다.

2) 깊이있는 배움으로 전문성을 세우다 : 이화여대 대학원 서양화과 입학과 졸업
학부 졸업 이후에도 한진수의 이화에서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1954년부터 약 1년 반동안 미술대학 서양화과 조교로, 그리고 박물관 도슨트로 활동하며 이화 안에 머물렀으며 그 사이 1955년 제 4회 국전에서 <나부>로 입선하며 화단 안에서의 존재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1956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배움의 깊이를 더하고 작가로서의 전문성을 키웠으며, 1958년 졸업하며 작가로서의 기반을 더욱 단단히 다졌다.
이 시기의 대학원 과정은 한진수에게 회화적 탐구를 심화하는 시간이자, 이화에서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자신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 나가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대학원 학위증은 한진수가 이화 안에서 학생으로 성장하고, 이후 교육자와 작가로 나아가기 위한 전문적 토대를 마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자료이다.

3) 돌아온 자리 : 교수 한진수, 다시 이화를 가르치다.
1968년 3월, 한진수는 모교 출신으로는 최초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학생으로 이화의 첫 미술교육을 경험했던 그는 이제 교수로서 다시 이화에 돌아와 제자를 양성하는 위치에 섰다. 교수 임용 관련 서류, 수업 계획안, 미술대학 증축 기금을 위해 동료 교수들과 함께 열었던 작품전 , 이화여대미술관 개관 기념전 자료들은 한진수가 작가에 머물지 않고 이화 미술교육의 흐름을 이어나간 교육자임을 보여준다.
이후 1992년 정년 퇴임까지 24년간, 그는 수많은 학생 곁에서 후학 양성에 큰 힘을 쏟았다. 신입생을 위한 축사, 학생들과 학교 작업실에서 함께 찍은 사진들은 교수로서의 일과 화가로서의 작업이 그의 삶 안에서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퇴임하던 해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고, 이대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이화가 한진수를 길러냈다면 한진수는 다시 이화에서 학생들을 길러내며 배움의 순환을 실천하였다.

4) 이화에서 시작한 연대 : 60년동안 이어지고 있는 <녹미회>
1949년, 이화여대 미술과 첫 졸업생들은 졸업 직후 ‘푸른 마음으로 미술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아 녹미회를 결성하였다. 녹미회는 한국 최초 여성 미술가들의 단체전이었으며, 한진수 역시 녹미회의 창립 멤버로 참여하여 제1회 녹미회 전시에 〈가을〉, 〈응시〉, 〈여름〉을 출품하였다.
녹미회는 이화에서 시작된 여성미술가들의 동문 네트워크이자, 졸업 이후에도 창작과 전시를 지속하게 한 중요한 기반이었다. 초기 멤버로만 머물지 않고 이화의 후속 졸업생들이 차례로 합류하면서 <녹미회>는 이화 미술의 계보 자체가 되어갔다. 제1회 졸업생들의 졸업 50주년 기념한 1999년의 전시, 2021년 온라인 전시 <잇다>까지 그 흐름은 형태를 바꾸면서도 이어졌다. 한진수에게 녹미회는 이화의 배움이 개인의 성취에 머물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예술적 연대와 지속성으로 확장된 사례였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녹미회의 역사는 이화가 만든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5) 이화에서 피어난 화업 : 한진수의 예술 확장과 모교에 대한 헌사
교수의 삶과 화가의 삶은 한진수에게 분리된 두 길이 아니었다. 국전 입선, 한국여류화가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등 다양한 전시에 꾸준히 참여하며 한국 현대미술 제1세대 여성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1970년 신문회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 《한진수 유화전》에서 총 47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작가 한진수는 얼마나 끈질기게 작업에 매진하였는지를 증명하였다. 개인전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나부〉, 자필 노트와 드로잉은 한진수의 작품 세계와 작가적 성취를 보여주는 핵심 자료이다. 특히 이화 캠퍼스 안에서 작업할 수 있음을 감사로 기록한 자필 메모는 이화가 한진수에게 단순한 출신 학교가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탱해 준 정서적·창작적 근거지였음을 말해준다.

6) 한진수와 이화가 함께한 시간의 의미 : 다음 세대를 위한 메시지
한진수의 아카이브 속 방대한 양의 자료들은 이화와 한진수가 단순한 학교와 졸업생의 관계가 아님을 보여준다. 입학 서류와 졸업장, 임용 공문과 축사 원고, 전시 도록과 수상 기록들이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겹쳐지는 방식이 특별하며 하나의 장소가 한 사람의 예술적 전 과정을 관통한 이야기가 된다.
한진수에게 이화는 시작이자 귀환의 장소였다. 그는 이화에서 미술을 배웠고, 이화의 이름으로 전시에 참여했으며, 다시 이화의 교수로 돌아와 후배들을 가르쳤다. 학생, 작가, 교수, 명예교수로 이어지는 그의 생애는 이화 미술교육의 역사와 깊이 맞물려 있다.
한진수가 후배들에게 남긴 것은 작품만이 아니었다. 한 여성이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통해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배움이 다시 교육과 공동체로 환원될 수 있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였다. 이화가 한진수를 만들었고, 한진수는 다시 이화의 시간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었다. 이 전시는 바로 그 상호작용의 궤적, 곧 “한진수의 이화, 이화의 한진수”의 기록이다.

전시제목국내 최초 미대생 1945-1949 《석정 한진수 교수 상수전》 石亭 韓珍洙 敎授 上壽展

전시기간2026.06.09(화) - 2026.06.20(토)

참여작가 한진수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드로잉, 사진, 문헌 및 아카이브 자료 등 100여 점

장소이화아트센터 Ewha Art Center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A동 2층)

연락처02-3277-2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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