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는 《한국 현대 채색화의 정점》이라는 주제 아래, 이 분야의 위대한 영토를 개척하고 독창적인 세계를 완성한 세 명의 예술가—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 1920-1976),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 내고(乃古) 박생광(朴生光, 1904-1985)의 기념비적인 작업을 조명하는 전시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2026년 5월 27일부터 7월 5일까지 개최한다. 세 작가의 대표작 30여 점을 선보이는 본 전시는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채색화가 도달한 조형적 성취와 그 찬란한 이정표를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박생광, 김기창, 박래현의 작업 세계를 아우르는 가나아트 컬렉션이 구축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각 작가가 지닌 미술사적 의미와 당대 미술계의 흐름을 통찰하고자 한 오랜 노력이 자리한다. 박생광의 경우, 1985년 프랑스 《르 살롱》 특별전에 출품하며 ‘한국의 피카소’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를 통해 한국 채색화의 경쟁력을 국제 무대에서 확인시켰다. 일찍이 이러한 흐름을 피부로 느낀 이호재 회장은 ‘박생광 화풍’이 두드러지는 작품 다수를 수집했다. 1980년대 김기창은 화단의 인정은 물론 대중의 인기까지 한 몸에 누린 당대의 대표 작가였다. 이 회장은 김기창 작품에 대한 높은 수요와 인지도를 의식해 그의 폭넓은 작업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컬렉션을 구축하고자 했다. 또한 그는 한솔문화재단이 박래현 컬렉션을 수집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박래현에 관심을 가지고 주요 작품들을 확보하게 되었다.
세 작가는 각기 다른 독창성으로 한국화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는 세 명의 거장이 한국 현대 채색화의 외연을 확장하고, 나아가 독창적인 예술적 정점을 완성해 가는 진화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박생광은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적 색채라 할 수 있는 오방색(파랑, 빨강, 노랑, 하양, 검정)을 주조로 민속, 무속, 불교, 역사에서 비롯된 민족적 소재를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의 요소를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나름의 상징성을 부여하고 재구성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일궜다. 김기창은 활발한 해외 활동의 영향으로 추상화풍과 한국 전통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이어 나갔고 원근법이나 정형화된 기법을 벗어나 입체주의적 표현을 도입하는 등 실험을 거듭했다. 박래현 역시 김기창과 함께 다수의 순회 부부전을 열면서 서구 미술의 영향을 받았고 1960년대부터 추상회화의 세계에 진입해 한국화의 현대적 변용을 꾀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판화나 태피스트리 등의 장르도 시도하여 영역을 확장했다.
“1955년 환도하고 제5회전을 화신백화점에서 가졌다. 작품은 완전히 입체적인 표현으로 옮겨지고, 오랜 시일 모사와도 같이해 온 사실적 표현에서 떠나 형태와 구성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으로 바뀌어 갔다. 여기 시각적인 것보다는 사고의 힘이 즐거운 세계를 갖게 되었다. … 이와 같은 경향은 작품 제작을 거듭하는 동안에 시각의 복수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즉 시점을 다각도에 두는 표현으로 나가고 보니 작품은 점차로 추상성을 지니게 되어 날카로운 감수성을 지닌 표현은 무언지 자신의 생리에 맞는 세계를 찾는 듯한 기쁨으로 제작이 계속되었다.”
- 박래현, 「동양화의 추상화」, 『사상계』, 1965년 12월
본 전시는 우향 박래현의 작업으로 문을 연다. 1전시장에서 소개되는 우향의 출품작 13점은 크게 세 개의 시기로 나뉜다. 박래현은 해방 후 일본화의 양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모색했으며, 이러한 시도를 인정받아 1956년에 《제8회 대한미협전》과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에서 연이어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 무렵 제작된 <정물>들을 비롯해, <기도>(1959) 등 반(半)추상의 작업들이 전시장 한 편에서 선을 보인다. 이와 함께 일명 ‘엽전 시리즈’가 탄생한 1960년대 후반 추상회화와, 생애 말년인 1970년대 뉴욕에서 수학하며 새롭게 도전한 태피스트리 작업까지 모두 이번 전시에서 다뤄진다. 특히 뉴욕에서의 작업들은 일생을 따라다니던 남편 김기창의 그늘을 벗어나 박래현 고유의 조형 세계를 확립하게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는 구성을 통해 박래현이 전통적 한국화의 틀에서 벗어나 완전한 추상에 몰입하기까지의 발전 과정과 그를 한국 현대 한국화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게 한 작업 세계의 면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날 더러 마지막 소원을 말하라면 도인이 되어 선(禪)의 삼매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 김기창
이어서 2전시장은 운보 김기창의 작업 10점으로 구성되어,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주요 작업을 다룬다. 김기창은 박래현과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 일본화풍 청산에 주력했는데, 이를 박래현이 구상회화에서 추상회화로 점차 이행하는 방향으로 성취한 것과 달리, 운보는 전통 산수, 구상과 추상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유로운 작업을 펼쳤다. 본 전시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청록산수’나 ‘바보산수’에만 치우치지 않고 그의 예술적 연대기 전반을 아우르고자 한다. 김기창은 서양 미술 사조의 영향 하에 작업을 하면서도 영모와 산수 등 한국화의 전통 소재를 계속 그렸으며, 이때 전통 기법이나 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독창적인 실험을 이어갔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1950년대에 선보인 입체주의적 시도의 연장선에 있는 1980년대작 <농악>이 출품되어 눈길을 끈다. 또한 수많은 인물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강렬한 필선으로 화면에 채워 넣은 반추상 대작, 1959년 작품 <군상>이 오랜만에 대중에 공개되어 주목된다. 이와 함께 거침없는 필력의 수묵 산수, 문자를 기반으로 조형미를 실험한 <문자도>, 그리고 런던에서 마주친 흐린 날씨의 빅벤과 수많은 우산을 특유의 빠른 필법과 묵직한 먹빛으로 담아낸 <런던의사당>까지 소개되어 김기창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다.
"단청이나 무속의 색깔을 보아라. 이 얼마나 강렬하고 현대적인가? 서양의 야수파 색채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생명력이 넘친다. 나는 이 오방색으로 세계와 승부하고 싶다."
- 박생광
전시는 박생광의 작업으로 마무리된다. 박생광은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며 차별성을 모색하던 시기를 지나 1970년대 후반 비로소 자신의 화풍을 정립하게 되었고, 1980년대 본격적으로 민속, 무속, 불교, 역사에서 차용한 한국적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로써 그는 기존 회화의 답습으로 인해 소재의 한계에 직면했던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며 한국화의 현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즐겨 그리던 무당, 부처, 단청 등에 대해 서민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자 독창적인 한국인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하며, 이를 통해 가장 현대적인 미술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박생광은 이러한 소재를 표현함에 있어 일본화풍의 영향으로 선호에서 밀려났던 오방색 중심의 원색을 기본으로 하였다. 또한 그는 형태를 구획하는 선을 전통의 먹선 대신 탱화에서 신성성을 표현할 때 쓰던 주홍색으로 그려 관습에서 탈피했다. 서양 미술의 경향을 흡수해 재해석하는 방식이 아닌, 한국 고유의 민족성에서 현대화 전략을 찾았다는 점이 박생광 미술의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본 전시는 박생광의 대표작 ‘무속 시리즈’를 주축으로 구성되는데, 특히 1985년 파리 《르 살롱》 특별전 당시 공식 포스터로 사용되어 한국 채색화의 국제적 경쟁력을 세계에 알린 <무당>(1982)이 출품되어 주목된다. 이와 함께 내고가 평생 가장 존경한 인물인 청담 대종사(1902-1971)를 모델로 한 대형 회화 <청담스님>(1983)과 <열반>(1982) 등 대표작 9점을 한자리에 모아 그가 도달한 한국적 현대 회화의 정수를 재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박래현, 김기창, 박생광의 조형적 성취에 주목하면서 이들이 20세기 한국 미술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사실상 이 세 작가에 의해 현대 한국 채색화가 시작되고 발전되었으며, 그 최고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시대는 한국 현대 채색화의 찬란한 정점이었으며, 이번 전시는 그 안에서 마침내 완성된 한국 채색화의 위대한 귀결을 보여준다. 가나아트와 가나문화재단의 ‘Artists’ 시리즈는 잘 알려진 거장들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한편, 서로 다른 작가와 작업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 지점을 발견하며 컬렉션이 지닌 미술사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전시제목한국 현대 채색화의 정점
전시기간2026.05.27(수) - 2026.07.05(일)
참여작가
박래현, 김기창, 박생광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
장소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28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
주최가나문화재단ㆍ가나아트
연락처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