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移行)하는 궤적(軌跡) - The Trajectory of Becoming
황인규(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신홍직 회화는 구상과 추상, 재현과 표현의 경계를 고정된 영역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의 작업에서 풍경과 도시는 분명한 출발점이지만, 그것은 결코 도착지가 아니다. 산과 거리, 건물과 인물은 화면 속에 등장하지만, 곧 색과 물질, 그리고 회화적 행위에 의해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이로써 그의 회화는 ‘무엇을 그렸는가’라기 보다도 하나의 경험이 어떻게 화면 위로 이행해 왔는가를 묻는 장이 된다.
초기 작업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회화를 관통하는 핵심은 색과 물질이 축적되어 시간 속에 숙성되면서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식이다. 그는 자연 풍경을 다루면서도 사실적 재현에 머무르기보다, 자연이 주는 느낌과 마음의 끌림에 따라 풀어헤쳐 쌓아 올린 색과 마티에르를 통해 대상이 지닌 무게감과 기운을 화면에 옮긴다. 두텁게 중첩된 화면은 풍경을 설명하기보다는, 그 장소를 통과하며 형성된 감각을 응축해 보여준다. 여기서 회화는 재현의 결과가 아니라 작가의 감각적 경험이 축적되어 남긴 흔적에 가깝다.
도시를 다룬 작업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일관되게 유지된다. 거리와 건물, 인물은 인식 가능한 형태를 유지하지만, 원근이나 세부 묘사는 의도적으로 느슨해진다. 대신 색의 대비와 화면의 리듬, 물질의 밀도가 도시가 지닌 속도와 온도를 전달한다. 이때 색은 외형을 묘사하는 수단이 아니라, 시간대와 공기의 무게, 장소의 정서까지 포괄하는 감각의 언어로 기능한다. 이는 인상주의적 시각 경험과 표현주의적 색채 감각을 거치면서도, 어느 한쪽에 머무르지 않고 회화적 경험의 결합체로 수렴된다.
그의 작업 과정에서 손의 개입은 화면의 구조와 밀도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법의 과시라기보다, 화면 위에 축적되는 시간과 행위의 흔적을 조율하는 방식에 가깝다. 긁힘과 겹침, 밀도 차이로 남는 표면의 변화는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하기까지 거쳐 온 과정의 기록이며, 이로써 각 작품은 반복될 수 없는 하나의 궤적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회화를 관통하는 것은 ‘완성된 장면’이 아니라, 경험이 화면으로 옮겨오는 과정 그 자체다. 풍경과 도시는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작가의 감각과 시간 속을 통과하며 끊임없이 다른 형태로 이행하는 지점으로 존재한다. 이번 전시는 그 이동과 변화의 흐름, 다시 말해 신홍직 회화가 그려온 하나의 궤적을 되짚는 자리라 할 수 있다.
컬렉터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작업이 지니는 가치는 명확하다. 특정 양식에 고정되지 않으면서도 일관된 회화적 태도를 유지하고, 풍경과 도시, 자연과 일상의 경험을 하나의 감각 체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확장해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화면에 축적된 물질성과 시간의 흔적은 이미지로 환원될 수 없는 실재성을 지니며, 이는 작품을 단순한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밀도를 담아낸 회화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그의 회화는 어떤 장면을 기록하기보다, 그 장소를 지나온 시간과 감각이 지나온 흔적을 붙잡는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이미지로 기억되기보다, 감각의 층위로 남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회화는 하나의 완결된 스타일이 아니라 이행해 온 궤적으로 읽히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견고한 설득력을 얻는다.
전시제목신홍직 : Naked, Yet Embraced
전시기간2026.04.29(수) - 2026.05.04(월)
참여작가
신홍직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연중무휴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은 GALLERY EUN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5-1 )
연락처070-8657-1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