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내용
조윤정의 작업에서 풍경은 자연을 재현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연을 마주하는 순간 발생하는 감각의 반응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특정 장소의 풍경을 기록하기보다 자연을 접했을 때 몸 안에서 먼저 일어나는 표현적 충동에 귀를 기울인다. 정돈되지 않은 들풀과 빛, 서로 얽혀 자라나는 식물의 흐름 속에서 느껴지는 야생의 기운은 하나의 장면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로 다가오며, 이러한 감각은 평면 안에서 몸짓의 언어와 색채로 변환된다.
화면 위의 물감층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하나의 물질로 다루어진다. 붓과 나이프는 형태를 정교하게 다듬기보다 자연을 경험했을 때 몸에 남는 움직임을 기록하는 도구에 가깝다. 밀리고 긁히며 겹쳐진 물감의 층은 매끄럽게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그 표면에는 붓질의 궤적과 나이프의 결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러한 흔적들은 풍경을 묘사하기보다 자연을 마주하는 감각의 흐름을 표현하는 회화적 언어가 된다.
겹겹이 쌓인 색채의 층위는 자연이 성장하는 방식과 닮아 있으며, 동시에 감정이 형성되는 하나의 물리적 공간을 이룬다. 화면에 나타나는 비정형의 파동 같은 결은 구체적 사물을 묘사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내면의 진동이 시각적으로 확산되는 리듬에 가깝다. 이러한 일렁임은 현실의 풍경을 해체하며 감각이 이끄는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을 드러낸다.
작가에게 풍경은 재현과 추상의 사이에서 경험되는 공간의 장이며, 이는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한 ‘시적 공간’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바슐라르에게 공간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감각과 기억이 스며들며 새롭게 생성되는 경험의 장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 드러나는 가까움과 멂, 가려짐과 나타남의 관계 속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가 잠시 머무는 자리로 전환된다.
이러한 세계는 정돈된 질서 속에서가 아니라 인위적인 구조가 느슨해진 틈에서 생성된다. 들꽃이 경계 없이 얽히고 빛과 바람이 예측 없이 스며드는 순간, 작가는 형태 이전의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화면에 남은 색채의 층위는 완성된 풍경이라기보다 자연의 맥동이 지나간 흔적이며, 자연을 경험한 감성이 물성으로 남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결국 작가의 회화에서 풍경은 자연을 바라보는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과 접촉하는 순간 발생하는 감정의 진폭과 생명의 흐름이 색채와 물성으로 전환된 하나의 경험적 공간이다. 관람자는 평면 위에 남겨진 붓질과 물감의 흔적을 따라 그 진동 속으로 들어가며, 그곳에서 자연과 내면이 맞닿는 순간의 원초적인 생의 에너지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작가노트]
제주도 안 깊숙이 위치한 곶자왈에서 만났던 자연의 거친 생동을, 나는 도심 속 저마다 자라난 풀과 꽃의 풍경 속에서 다시 마주한다. 나에게 그곳은 인위적인 질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자연이 스스로 열어젖힌 자리다. 다듬어지지 않은 채 경계 없이 어우러진 들꽃들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발길을 멈춘다.
이러한 풍경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내 안의 창작 의지를 깨우는 살아있는 실체다. 나는 그 무질서함이 만들어내는 묘한 형상과 색에 매료되어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경험한다. 그 감각은 캔버스 위에서 비정형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나는 이 감각을 시각화하기 위해 나이프와 붓으로 색채를 빚고 엮어낸다. 나이프와 붓질에서 밀려난 물감들은 독립된 층으로 머물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얽히고설키며 유기적인 모양을 만들어낸다. 매끄러운 완성도보다는 붓질의 궤적과 투박한 나이프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남겨두는데, 그렇게 드러난 거친 표현들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가 된다.
때때로 화면 위에는 비정형으로 일렁이는 파동의 결을 더하기도 한다. 이는 구체적인 형상이라기보다 안개처럼 흩어지는 에너지의 흐름에 가깝다. 이러한 일렁임은 때로 화면을 가르며 구조적인 긴장을 만들고, 때로는 풍경 전체를 몽환적인 공명 속에 두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나는 박제된 풍경이 아닌, 화면 위에서 요동치는 비정형의 흐름을 전하고자 한다. 이 화면들이 빈틈없이 짜인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틈이 되기를 바란다.
전시제목조윤정: 숨쉬는 숲 The Breathing Forest
전시기간2026.04.17(금) - 2026.05.10(일)
참여작가
조윤정
관람시간11:00pm - 06: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 (팔판동) )
연락처02-739-1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