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아주(nouage)의 창시자, 신성희의 40년 화업을 돌아보다.
갤러리현대(대표 도형태)는 9월 10일(금)부터 10월 31일(일)까지 신성희 화백의 타계 일주기를 맞아 작가의 40년 간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신성희의 엮음 페인팅 “누아주”>전을 마련한다. 1•2부로 나누어 개최되는 본 전시는, 1부(9.10.금-10.7.목) <맥시멀리스트 신성희>란 부제로, 칼라풀한 올오버 누아즈를 중심으로 같은 계열의 콜라주, 박음질 작업들이 선보이며, 2부(10.8.금-31.일) <미니멀리스트 신성희>에서는 단색조의 미니멀한 누아주, 콜라주, 박음질 작업과 함께 초기 모노크롬 마대 페인팅이 소개된다. 1•2부로 나뉘어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신성희의 진지하고 단호한 작가 정신과 훈훈하고 풍성한 인간미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신성희는 꾸준히 변화, 발전하는 작품세계를 보여주며 끝없는 열정과 예술혼을 보여주었던 작가이다. 1948년 안산에서 출생하여 서울예고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0년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해온 신성희는 지난해인 2009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갤러리현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뉴욕의 허튼 갤러리, 취리히의 푸아르타 갤러리, 파리의 보두앵 르봉 갤러리에서의 전시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한 예술세계를 펼쳐온 바 있다.
1997년, 누아즈 양식을 창안하다
신성희의 작품세계는 누아주로 대변된다. 불어로 “맺기, 잇기”의 뜻을 가진 누아주는 신성희 작품에서 일차적으로 엮는다 또는 묶는다는 제작 방법을 지칭하게 된다. 작가는 캔버스에 색점, 색선, 얼룩 등을 그려 우선 채색 캔버스를 만들고 그것을 가는 띠로 잘라 그림틀에 엮어 그물망을 만든 후 그 위에 다시 채색하는 몇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누아주를 완성한다. 누아주는 묶여진 색띠 매듭과 그 사이 사이 구멍들로 구성된 그물망이다. 그것은 더 이상 면이 아니라 질감있는 부조로서 회화의 본질인 평면성을 탈피하게 된다. 색띠의 선묘가 면을 만들고 그 면이 부조적 질감을 획득하면서 선, 면, 입체가 공존하는 회화적 조각, 또는 조각적 회화로 존립한다. 이것이 누아주의 미학적 의미이자 회화적 혁신이다.
신성희 누아주의 양식적 특징은 다채로운 색채와 풍부한 질감이 창출하는 회화적 맥시멀리즘에 있다. 이런 점에서 누아주는 모노크롬 미니멀회화 이후의 포스트미니멀 회화의 용례를 마련한다고 볼 수 있는데, 실로 마대 페인팅 이후 판지 콜라주와 캔버스 박음질 작업에서도 칼라리스트이자 맥시멀리스트로서 신성희의 양식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모노크롬 마대 페인팅이 미니멀리즘을 대변하는 그의 작품세계의 한 축이라면, 그 이후 칼라풀한 콜라주에서 박음질을 거쳐 누아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군은 맥시멀리즘을 표출하는 또 다른 축이다. 작가는 미니멀리즘에서 맥시멀리즘으로 이동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일궈나가지만, 실상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은 그의 미학적 감수성을 대변하는 양대 요소이기도 하다. 즉 맥시멀리즘의 표상인 콜라주, 박음질, 누아주에서도 이러한 양면성이 공존하는 것이다. 특히 칼라풀한 그물망으로 전 화면을 채운 올오버 화면의 맥시멀한 누아주와 흰 모노크롬 바탕면에 부분 누아주를 간결하게 배치한 미니멀한 누아주가 맥시멀리즘과 미니멀리즘의 극대비를 반복한다.
실물의 마대보다 더욱 사실적인 마대를 표현했던 1970년대 작업을 비롯해 추상으로 발전하였던 1980년대의 콜라주 작업, 1990년대의 박음질 캔버스 작업 그리고 2000년대의 누아주 작업에는 짧고도 강렬했던 신성희 예술세계의 울림이 담겨 있다. 본 전시를 통해 예술세계의 누아주를 일구어냈던 신성희의 작품 세계를 다시한번 느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1.Nouage Painting, Shaped Surface
- 신성희의 ‘회화-공간’
시작하며: 캔버스의 증언
“우리는 입체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평면에서 태어났다. (...) 작가 신성희는 우리들로 하여금 예술이라는 나라의 존재자가 되게 하였다.”
누가 이렇게 말하는가? 여기서 ‘우리’란, 그림이 그려지는 공간 중 가장 아카데믹하고 일반적인 공간인 ‘캔버스’이다. 그러니 서두에 인용한 말을 다시 번역하면, ‘신성희 작가가 캔버스에 예술의 존재를 부여했다’고 입체가 되기를 꿈꾸는 평면 캔버스가 말했다는 것이다. 한갓 사물에 불과한 캔버스가 이런 말을 했을 리는 없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을 누구에게 전해 듣는가? 인용구에 호명된 바로 그 사람, “작가 신성희”로부터이다. 그는 2005년 작가 노트에 “캔버스의 증언”이라는 부제를 붙여 이렇게 써놓았다. 그러니 이때 캔버스의 말은 사실, 본인이 ‘회화라는 예술의 나라’에서 성취한 바를 넌지시 자평하고 있는 한 예술가의 목소리가 아니겠는가?
지난 2009년 10월 유명을 달리한 故 신성희 작가는 40여 년 동안 일관되게, 그러나 동시에 대략 4번 정도의 커다란 형식적 분절을 만들어내면서 회화 작업을 했다. 그것은 1. 구체적 형상을 재현함으로써 ‘실재와 환영의 관계’를 실험한 단계(1970년대 중후반-80년대 초). 2. 판지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조각낸 후, 다시 하나의 ‘콜라주 그림’으로 재구성한 단계(1980년대). 3. 캔버스 천에 그림을 그린 다음 그것을 일정한 크기의 띠로 잘라내고, 다시 그것을 ‘박음질해서 단일화면’으로 조직한 단계(1990년대). 4. 캔버스 화면을 그림 띠들로 묶고 매듭지어(‘누아주: nouage’) 입체화시킨 단계(2000년대)로 나눌 수 있다. 나는 이 네 단계를 신성희 회화 전체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는 결정적 계기들로 본다. 이를테면 ‘1. 형상 재현의 단계’가 초기에 속하고, ‘2. 콜라주 단계’가 중기에 속하며, ‘3과 4의 단계’를 후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분석은 본문에서 하기로 하고, 다시 “캔버스의 증언”으로 돌아가 보자. ...축약
Ph. D. 강수미 (미학,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2. 신성희, 페인팅으로 페인팅을 넘어서다.
1. 프롤로그
신성희는 다채로운 색채와 풍부한 질감으로 회화적 맥시멀리즘을 창출한 이 시대의 페인터이다. 회화적 맥시멀리즘의 표상이자 그 만의 고유 브랜드인 누아주(nouage, 엮음 페인팅, 일명 매듭 페인팅)는 화가로서 그가 겪어온 회화적 고민과 탐구, 장고의 실험과 진통이 가져온 창조적 결실이자, 페인팅으로 페인팅을 넘어서는 새로운 개념의 회화이다.
1971년 홍익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작가활동을 시작할 당시 신성희는 초현실주의적 표현주의 형상화로 국전과 한국미전에 특상, 특선한 재능있는 화가였고,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마대 위에 마대를 그린 극사실적 모노크롬 <회화 Peinture>로 시대적 사조에 반응하면서도 자신의 양식을 모색했던 진지한 예술가였다. 마대페인팅으로 시작된 그의 조형실험은 1980년 프랑스 이주 이후 고된 여정을 거쳐 대망의 결실을 맺게 된다. 1983-1992년 사이 미리 채색한 판지를 손으로 찢어 화면에 부치는 콜라주 작업 <회화 Peinture> 연작을, 이후 1993-1996년에는 채색한 캔버스를 길이로 잘라 박음질로 이어 붙인 <연속성의 마무리 Solution de Continuite> 연작을 선보인데 이어 1997년 누아주라는 획기적인 양식을 창안하게 되는 것이다.
<결합 Entrelacs>, <공간을 향하여 Vers Un Espace>, <공간별곡 Peinture Spatiale> 등의 시리즈 제목으로 발표된 이 누아주 작품군은 캔버스 색띠를 박음질하는 대신 그림틀에 엮어 그물망을 만드는 새롭고도 흥미로운 방법론으로 제작 당시부터 파리 화단의 주목을 끌었다. 실로 누아주는 프랑스 파리가 그에게 안겨준 가장 고귀한 선물이었다. 한국 화단을 떠난 고독한 작가에게 독자적 조형 실험의 기회를 주고 그것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게 해 준 것이 바로 파리였던 것이다. 작가는 2009년 10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누아주 조형 실험을 심화시키는 한편, 한국, 프랑스, 스위스, 일본, 뉴욕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지며 누아주의 창시자, 한국의 칼라리스트 페인터로서 정평을 얻게 된다.
...축약
김홍희 (경기도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3. 신성희의 예술: 인생을 영원하게 직조하다.
신성희는 캔버스를 자르고 묶어 삼차원 구조를 만들어 낸다. 1997년 이 방법을 사용한 이래 그것이 작가 자신 고유의 양식이 되었다. 루치오 폰타나가 캔버스를 자른 최초의 인물로서 그는 이차원 평면을 뚫음으로써 그것과 공간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반면에 신성희의 커팅은 반복적, 규칙적으로 이루어진다. 폰타나의 커팅 행위가 격정적이고 강렬하고 즉흥적이라면, 신성희는 복수적 의미를 갖는 계획되고 조직된 행위로 새로운 페인팅을 성립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캔버스를 자르는 행위가 회화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페인팅은 근본적으로 이차원 그림 평면에 삼차원적인 공간과 깊이의 환영을 어떻게 재현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집약되었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러한 질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오늘날에 이르러 타카쉬 무라카미가 일본 전통 회화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한가지 방법으로 사용한 “수퍼플렛”이라는 용어로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야마토이라는 일본 전통 회화에서부터 유끼오에 이르기까지 일본 회화는 음영 없이 평평한 색면의 구사로만 현실을 재현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한국 전통 회화도 마찬가지로 평평한 색면들과 정교한 선묘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현실의 시각적 재현을 위한 더욱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축약
후미오 난조(모리미술관 관장) 전시제목신성희의 엮음 페인팅 “누아주”
전시기간2010.09.10(금) - 2010.10.31(일)
참여작가
신성희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현대 Gallery Hyundai (서울 종로구 삼청로 14 갤러리현대 본관)
연락처02-734-6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