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흔적 — ‘Beyond_Wind’ 시리즈
“무엇을 보려 하지 말고, 무엇이 지나가는지를 느껴야 한다.”
이번 전시는 강호란 작가의 최근작을 중심으로, ‘회화적 감각의 생태’를 조명한다. ‘Beyond Wind’ 시리즈는 ‘바람’을 모티프로 삼아 물질성과 무형성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려는 시도이다. 작가는 바람 그 자체가 아니라 바람이 남긴 흔적을 기록한다. 이는 곧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로 환원시키는 미학적 실험이며, 부재를 통한 현존의 탐구라 할 수 있다.
작가의 회화 안에서 바람은 더이상 배경이 아니고 중심이며 사건이다. 작가의 손끝에서 생성되는 풍경은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거나 어떤 구체적인 장소라기보다, 바람이 지나간 자취, 혹은 감각의 잔여물, 진동의 흔적에 가깝다. 마티에르의 농담, 손으로 꿰맨 중첩된 선, 희미한 레이어를 통해 “풍경”을 지우고 새기며 오히려 바람이라는 무형의 존재를 통해 감각의 미세한 진동을 시각화한다. 이 회화들은 일종의 감각적 필드이며, 보는 이를 그 진동의 중심으로 이끈다.
또한 접힘과 펼침, 주름과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는 시간의 퇴적층이자 감각의 흔적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눈앞의 이미지가 아닌 그 이면의 세계를 사유하게 만들며, 흐르는 색면은 기온과 시간, 정서의 결을 머금은 하나의 ‘기후적 회화’이기도 하다.
강호란 작가는 바람을 따라 걷는 시선의 흔들림, 파동의 결이 마치 음악처럼 재현되기를 바란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가는 그 흔적을 따라 길을 그리고, 그 길은 새로운 세계로 이어진다. 결국 「Beyond_Wind」는 ‘바람의 부재 속에서 바람을 기억하는 회화’이며, 사라짐이 남긴 침묵 속에서 다시 불어오는 생명의 숨결을 기다리는 일종의 시각적 기도와 같다.
Traces of Wind — the Beyond_Wind Series
"Do not try to see, but feel what passes through.“
This exhibition focuses on Kang Horan’s recent works, illuminating what might be called an ecology of painterly sensation. In the Beyond Wind series, the artist takes wind as her motif, crossing the threshold between materiality and immateriality in an attempt to visualize the invisible. She does not depict the wind itself, but rather the traces it leaves behind. This becomes an aesthetic experiment that restores what is absent into presence an exploration of existence through absence.
Within her paintings, wind is no longer a backdrop but the very center, the event itself. The landscapes that emerge from her hand are not depictions of places or scenes, but rather the afterimages of wind’s passage the residue of sensation, the tremors of vibration. Through tonal variations of matter, hand-stitched lines, and faintly layered veils, she erases and reinscribes “landscape,” translating the intangible presence of wind into subtle visual tremors. These works unfold as sensory fields, drawing viewers into the resonance at their core.
Her canvases also hold folds and unfoldings, creases and traces that accumulate like layers of time and deposits of perception. They invite the viewer to reflect not only on the image before their eyes, but on the world that lies beyond it. Flowing planes of color carry with them temperature, time, and emotion, taking form as a kind of “climatic painting.”
Kang Horan hopes that the wavering of vision as it follows the path of the wind, and the rhythms of vibration, may unfold like music. Though the wind itself cannot be seen, she traces its vestiges, mapping out pathways that open onto another world. Ultimately, Beyond Wind is a painting that remembers the wind in its absence a visual prayer awaiting the breath of life that rises once more from the silence left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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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 민
'통섭미술'시리즈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강호란(b.1971) 작가가 더스퀘어즈갤러리에서 선보이는 개인전 《Beyond_Wind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회화적 감각의 생태'를 조명하며, 현대 회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철학적 여정이다. 이 전시는 작가가 지속해온 'Beyond_Wind' 시리즈를 통해 물질성과 무형성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려는 미학적 실험을 보여준다.
작가의 작품세계는 바람 그 자체가 아니라 바람이 남긴 흔적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로 환원시키는 미학적 실험이며, 부재를 통한 현존의 탐구라 할 수 있다. 작가의 회화 안에서 바람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고 중심이며 사건이다. 이러한 접근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에서 바람이 징조처럼 등장하며 보이지 않는 영적 차원을 암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작가 노트에서 작가는 "세상에 기투된 존재의 피투성을 그리고 그것의 회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힌다.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피투성(被投性, Geworfenheit)'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작가는 "내가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나를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리어졌다"며 실존적 조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작가는 "인간은 불안하다. 인간만이 불안하다. 아니 인간이기 때문에 불안하다"며 존재론적 불안을 인간의 본질적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이러한 불안을 넘어서, 사라짐이 남긴 침묵 속에서 다시 불어오는 생명의 숨결을 기다리는 일종의 시각적 기도와 같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가는 그 흔적을 따라 길을 그리고, 그 길은 새로운 세계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작품과 함께 설치, 영상, 음향을 통한 시감, 청감, 촉감을 함께 보여준다. 특히 작가는 "공간(전시장)은 우주이고, 작품은 하나의 행성(지구)이며, 작품 속의 빛은 우리(존재)이다"라고 말하며, 미시적 개인의 경험을 거시적 우주론과 연결시킨다.
전시장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동명의 설치작품이다. 이는 3년 전 소천하신 아버지를 기억하며 만든 작품이다. 한땀 한땀 꿰메어 늘어뜨린 세 갈래의 천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의미하는 듯하다. 아버지의 유품을 흰 상자에 넣어 추억하고, 아버지와 함께 거닐던 숲속 길에서 주운 나뭇가지에 흰색을 칠해 생명을 불어넣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드시던 소주에 반주상을 차려드려서 먼 길 외롭지 않게 떠나 보내드리는 딸의 염원을 담았다. 세개의 천 사이로 함께 걷던 그 길을 녹화한 영상을 여러 겹 쌓아올려 잊혀진 기억을 다시 그려놓고 또 그려넣었다. 전시장 내부는 아버지와 함께 걷던 발자국 소리와 바람 소리가 살아 움직인다. 작가가 포착하는 바람의 흔적은 바슐라르가 말한 "상상력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작가의 자기 고백을 담고 있다. 작가가 바라는 "잊고 있었던 정서를 기억하고 상념하게 되기를"이라는 소망처럼, 전시는 관객들로 하여금 일상에서 망각했던 존재의 근원적 감각을 되찾게 하는 계기가 된다.
작가의 손끝에서 생성되는 풍경은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거나 어떤 구체적인 장소라기보다, 바람이 지나간 자취, 혹은 감각의 잔여물, 진동의 흔적에 가깝다. 마티에르의 농담, 손으로 꿰맨 중첩된 선, 희미한 레이어를 통해 “풍경”을 지우고 새기며 오히려 바람이라는 무형의 존재를 통해 감각의 미세한 진동을 시각화한다. 이러한 접근은 가스통 바슐라르에 따르면 진정한 예술적 상상력은 단순히 형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본질적 힘과 만나는 데서 발생한다. 강호란 작가의 회화는 일종의 감각적 필드이며, 보는 이를 그 진동의 중심으로 이끈다.
작가는 “하나의 캔버스로는 부족했던 나의 이야기”를 여러 개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연결회화’형식으로 풀어낸다. 작품 안에는 접힘과 펼침, 주름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있다. 이는 시간의 퇴적층이자 감각의 흔적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눈앞의 이미지가 아닌 그 이면의 세계를 사유하게 만든다. 작가가 말하는 중첩과 흘러내림의 많은 레이어 과정은 단순한 기법적 방법론을 넘어서, 시간성과 존재의 층위를 드러내는 철학적 실천이다. 흐르는 색면은 기온과 시간, 정서의 결을 머금은 하나의 기후적 회화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공간 확장성을 “하이데거의 시처럼 바깥으로 열려있는 낯선 새로운 가능성, 즉 보이지 않는 가상성의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하이데거에게 시짓시(Dichtung)는 단순히 운율이나 문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술의 본질적 행위를 가리킨다. 하이데거는 진정한 예술작품이 단순히 대상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장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마치 반 고흐의 낡은 구두 그림이 단순히 신발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농부의 삶과 세계전체를 드러내듯, 예술작품은 숨겨져 있던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작가의 작업 역시 바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통해 우리가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감각의 진리를 드러내는 열린 장을 만들어낸다.
한강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바람은 화가 서인주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서서히 드러내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이정희가 인주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에서, 바람은 마치 쌓인 먼지를 날려 보내듯 숨겨진 비밀들을 노출 시키며 진실 탐구의 동력이 된다. 미시령 고개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해서 불어와 주인공을 진실로 이끌어가는 것처럼, 작가의 작품에서도 바람은 보이지 않는 감각적 진실에 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작가가 그려내는 바람의 흔적은 논리적 증명을 넘어선 체감적 인식영역에 속하며, 이는 한강의 소설에서 바람이 진실을 향한 집요한 탐구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강호란 작가는 상명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삼성종합기술원과 NHN 등에서 UI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석사를 졸업하고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개인전을 개최하며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디자인 작업에서 회화로 전향한 계기에 대해 작가는 "디자인이 타자의 이야기를 객관성이라는 그물에 걸러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회화는 나의 이야기를 주관성이라는 그물에 걸러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적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통찰이다.
< The Stranger > 시리즈로 시작된 그의 작업은 < Beyond > 시리즈를 거쳐 현재의 < Beyond_Wind 바람이 지나간 자리 >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철학적 탐구를 보여준다. 작가는 “차와 불빛 그리고 거리는 늘 내게 영감을 주었다”고 말하며,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작품은 현대인의 실존적 고뇌를 회화적 언어로 승화시키며, 관객들에게 깊은 사유의 시간을 선사하고 있다.
전시제목강호란 초대전 Beyond_Wind [바람이 지나간 자리]
전시기간2025.09.17(수) - 2025.09.29(월)
참여작가
강호란
관람시간12:00pm - 07:00pm
휴관일일, 월요일 휴관
장르회화, 영상, 설치
관람료무료
장소더 스퀘어즈 갤러리 The Squares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72-10 (대현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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