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박진아의 작업세계는 자신의 일상적 단편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것을 회화로 재구성한다. 그의 회화는 초기 로모 카메라로 찍은 지인들의 모습을 두 개 혹은 네 개의 분할된 캔버스에 그려낸 로모그래피 시리즈를 시작으로, 야외, 밤, 공원에서 친구들과의 일상적 순간들을 기록한 스냅사진들을 하나의 캔버스에 담아낸 그림들로 연장되며, 자신의 일상이기도 한 미술관, 갤러리 공간, 전시설치, 오프닝을 다룬 회화들로 이어진다. 박진아의 회화는 카메라가 포착한 일상의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의 디테일을 빠른 붓 놀림과 함께 의도적인 생략적 묘사법을 통해서 기록사진의 리얼리즘을 해체하며 ‘실재와 그것의 재현’에 관계를 자연스럽게 모색하게 된다. 사진의 정지된 시간은 작가의 그림에서 빠르고 느린 리듬감을 타고 유동적 움직임을 생성하게 되며, 사진 속의 사적인 순간의 추억과 감정들은 캔버스 화면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관찰자의 시선을 통과하며 중립적 거리감을 유지하게 된다. 이것은 회화 속의 등장인물 혹은 상황이 더 이상 특정적 혹은 사적인 관계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주관적 시선/시간에서 객관적 시선/시간으로의 이행인 것이다. 이번 2010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에 소개하는 박진아의 회화 7점 역시 그의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미술관 전시, 수장고, 작품 설치 과정을 찍은 스냅사진들을 회화로 재구성한 최근작들은 이 특정 공간과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인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지만, 이것을 토대로 그가 그려낸 그림들은 곧 미술현장, 시스템, 관객 그리고 그 곳에서 회자되고 생산되는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객관적인 ‘현상’을 담아내고 있다. “여러 겹 쌓아 올린 느슨하고 얇은 붓 터치로 이루어진 회화형식은 순간성과 시간의 흐름, 유동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이 회화들은 주변에서 가져온(스냅사진으로 기록된) 사적 경험을 담고 있으나 동시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술활동, 그 활동이 이루어지는 문화적 배경을 보여주는 사회적 기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그림은 특정지역에서 미술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 시대에 예술가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 우리가 어떻게 문화를 생산하는가, 특정한 문화적 배경에서 어떻게 미술공동체가 만들어지는가 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림을 보는 관객은 작품과 전시를 하나의 완결된 대상이 아닌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과정의 결과물로 인지하면서, 미술활동의 의미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들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 작가노트에서 발췌
배종헌(일기예보)
배종헌에게 있어서 미술은 “자연스러운 것을 거스르고, 당연한 것을 거스르고, 편안한 것을 거스르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비켜나 앉아 보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구체적 컨텍스트를 근간으로 하는 그의 작업세계는 과학, 고고학, 사회학적 고찰과 분석의 방식을 차용하며, 한 개인의 사적 영역 혹은 하나의 단편적 사건을 넘어 사회적 현상, 집단적 사고, 우리의 삶의 태도를 모색하게 된다. 이번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2010을 위해서 배종헌이 제안한 새로운 프로젝트 (일기예보)도 그의 이러한 작업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내일의 날씨를 알려주는 일기예보는 그것의 신뢰도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고, 기후변화의 예보에 따라 우리의 삶의 태도 또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배종헌의 (일기예보)는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예보하는 과학적 분석이-그것의 오차를 포함해서- 어떻게 우리 사회와 삶을 지배하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들을 다루고 있다. “이상기후에 따른 재난의 상황에 처한 이들의 구체적 장면은 하나의 강력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되기에 충분하다. 이 경이롭고도 무서운 피해 장면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우리들의 심리를 교묘히 자극하며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에 활용된다. 토네이도가 파괴적 혹은 환상적인 자연현상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토네이도라고 하는 단어와 이미지의 의미를 다른 차원으로 밀고 나가게 만드는 이유도 이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기후는 ‘자연현상’이라기보다 ‘사회현상’이자 ‘문화현상’이다.”* 배종헌은 이번 작업에서 내일의 날씨, 천재지변, 지구온난화 등의 자연현상을 매우 자연스럽게 하지만 철저히 분석적 방식을 통해서 사회문화적 ‘징후’로 전환시킨다. 배종헌의 (일기예보)는 영상, 디지털 프린트, 텍스트, 오브제들 총 8개의 단편들로 구성된 설치작업이다. (터너의 산)과 (프리드리히의 산)은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er David Friedrich)와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의 작품들을 보며, “하늘과 땅과 바다와 바람과 태양을 지배할 수 있으리라 자만해온 인간의 역사를 회고”*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들이다. (생존자)와 (이상기후 형 인간)은 “날로 강도를 높이는 자연의 역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들을 만들고 착용하는”* 새로운 인간 유형을 상상하는가 하면, 첨단과학을 동원한 일기예보 보다는 생활과학의 지혜가 엿보이는 (우리 집 일기예보)와 (우리 집 일기예보를 위해 고안한 기후측정기구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지구의 이상기후의 원천에 대한 다양한 상상들이 쌓여 있는 반쪽 짜리 (기후의 원천_콜로세움)과 이번 (일기예보) 프로젝트를 집약한 (작업집서)들이 소개된다.
* 작가노트에서 발췌
양아치(밝은 비둘기 현숙씨)
양아치는 웹을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아트로 작업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초기 작업인 (양아치조합), (전자정부), (하이퍼마켓) 등은 웹을 활용하지만 미디어 시스템의 감시와 통제, 집단성과 허구성을 공략하는 작업이었으며, 그 후 양아치는 그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작업에 도입하며 가상성을 극대화하며 그 파워를 실험하는 <미들코리아> 시리즈를 진행해 왔다. 기존 시스템, 거대권력에 저항하며 현 시스템을 파괴하고 새로운 정부를 표방하는 ‘미들코리아’에는 김씨 가족, 김씨 공장 그리고 거기서 소량으로 생산되는 특수한 바이크들이 매번 다른 시나리오를 구성하며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전개해왔다. 지난 3년 동안 진행해 온 <미들코리아>의 일방적 스토리텔링 방식은 최근 (감시 드라마)시리즈에서는 보다 상호교란적 방식으로 전개된다. 24시간 작동하는 감시카메라를 통해서 작가를 포함한 이 프로젝트에 연루된 다양한 구성원들은 감시와 통제의 주체와 대상을 넘나들며, 거기서 발생하는 허구적 진실 혹은 사실적 허구에 대해 반응하거나 그것을 엿본다. 이번 2010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에서 양아치는 이 (감시드라마) 시리즈와 작년에 시작한 (그럼에도 빙의(憑依) 소녀) 작업을 근간으로 하는 (밝은 비둘기 현숙씨)를 제안했다. ‘밝은 비둘기 현숙씨’의 이야기는 비둘기가 된 현숙씨가 자신의 집인 부암동에서 도산공원 근처의 에르메스를 오가는 도중 실제 혹은 가상의 6명 인물과의 빙의를 경험하는 과정이며, 이 작업의 스토리텔링은 빙의세계, 조류세계, 원근법적 세계와의 관계망을 생성하게 된다. ‘비둘기 현숙씨’는 스스로 자신을 일관성 있는 확고한 주체로 생각지 않고, 또 그 자체를 신뢰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비둘기 현숙씨’는 기존 질서와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며, 일종의 원근법적 시선에 의존해서 살아가게 되지만 스스로 소실점이 되는 못한다. 이렇듯 스스로 일관된 주체를 신뢰하지 않는 ‘밝은 비둘기 현숙씨’는 명확한 발언 혹은 입장보다는 그 주변부를 맴돌며, 또 구체적 결과보다는 불확실한 전제조건에 의존하며, 현실에 대한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상황을 전망할 뿐이다. 양아치의 (밝은 비둘기 현숙씨) 작업은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입구, 테라스, 중정, 그리고 구석의 작은 방에 설치되며, 영상, 비둘기 박제, 조화, 감시카메라, 사진, 그리고 사운드 설치 작업 등 총 6점의 단편들로 구성된다.
전시제목2010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기간2010.07.23(금) - 2010.09.19(일)
참여작가
박진아, 배종헌, 양아치
초대일시2010-07-22 18pm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없음
장르특별전시
관람료무료
장소아뜰리에 에르메스 ATELIER HERMES (서울 강남구 신사동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3층)
연락처02-544-7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