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모방자
어쩌면 친절한 접근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온라인 세계에 존재하는 ‘밈’을 아는가? 일반적인 설명으로 “밈(meme)”의 어원은 리처드 도킨스가 제안한 것으로, 그리스어 ‘모방된 것(mimema)’의 의미와 ‘유전자(gene)’의 발음을 결합해 만든 것이다. 이는 유전자와 같이 복제와 전이를 반복하는 인간의 문화, 곧 서로에게 전달되는 생각, 개념, 행동 등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밈은 최초의 의도와는 달리 인간 문화 전반을 통칭하기보다는, 국소적으로 온라인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생성-확산-변이-재확산의 과정을 반복하는 밈은 더 많은 주목을 목표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지반에서 선택과 변이를 반복하며 자신의 모습을 진화시켜 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본의 의미는 초기에 탈각되며, 밈의 복제는 일말의 유사성과 무한히 차이 냄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들은 놀이의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 생성과 반복을 지속한다.
밈을 바라보는 권은산의 시선은 탐구와 탐닉 사이에 있다. 밈이 생성되고 확장되는 현상은 무에서 유의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이상향이나 환상과도 닿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이 밈처럼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은 사실 예술가의 보편적이고 고전적인 지향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밈의 자리에 곧바로 모나리자를 대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밈인가? 밈은 변형과 합성, 조작을 거친 혼재된 양상, 때로 불쾌감까지 이르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형상, 심지어 많은 이들을 거쳐 생성되는 과잉 맥락과 무맥락의 기묘한 공존 지점을 포용하기에 고전적 의미에서 비예술적 어법이자, 실패에 가까운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흐름을 형성한다. 무엇보다 밈은 동시대성을 중심으로 패러디, 풍자, 차용 등을 통해 기존의 기준이나 규율의 해체를 자행한다. 작가에게 이러한 밈 현상 전반은 균열과 틈, 차이로 존재 가능한 새로운 이미지의 창조 모델이자 기존 체제의 전복이나 융합을 위한 하나의 표본처럼 자리한다.
그렇기에 권은산의 조형, 평면 작업의 원천에는 온라인 세계의 문화와 이미지, 영향력에 관한 관심사가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가상으로 존재하는 밈 이미지와 현실에 존재하는 작품이 갖는 대립적인 두 세계, 가상의 허구성과 현실의 실체성, 더욱 확장적으로는 그릇됨과 옳음의 규범과 같은 이분법적 개념의 경계를 중첩시키고 있다. 이것은 두 세계의 어법에 익숙한 작가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온라인 세계와 그들의 이미지를 즐기고, 그 문화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창조적 사고를 기반으로 실재의 모방과 재현의 행위를 중심으로 갖는 예술가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작가는 조형 작업의 한 부분으로 박제를 가져가고 있는데, 이 또한 진짜의 표피 속에 영구적인 가짜를 채워내는 작업으로, 그 결과물로 마치 살아있는 듯 보이는 가짜와 진짜가 혼재하는 창작물을 생성한다. 이렇듯 작가에게서 가상과 현실, 가짜와 진짜의 세계는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일상의 삶과 개념적 사유에서 다양한 레이어로 겹쳐 있다.
개인전 《IllIIll》의 전시명은 이러한 작가의 관심사와 정체성을 암시하고 있다. 쉽사리 ‘읽을 수 없는’ 전시명은 알파벳 대문자 ‘I(아이)’와 소문자 ‘l(엘)’의 조합으로 특정한 의미는 없으며, 단지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단번에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회피적 방법에서 착안한 것이다. 은폐함으로써 더욱 존재감을 끌어내는 역설적 기법은 가상과 현실의 시각과 방법론이 혼재되어 있는 권은산의 작업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 자리한 두 밈은 모두 ‘튀김’과 관련되어 있다. 밈 “U REALLY CAN FRY ANYTHING”은 튀김에 관한 다양한 이미지를 포괄한다. 이것은 인스턴트 음식이나 자본주의 식문화를 가리키는 자조적인 말과도 관련이 있지만, 황당하거나 불쾌한 튀김 이미지를 생성함으로써 온라인상에서 시선을 끌고자 하는 현상 전부를 아우른다. 또 다른 밈 “labradoodle or fried chicken”은 닭을 튀긴 음식인 치킨의 껍데기와 개의 종류 중 하나인 푸들 외형의 유사성을 시각적 착시로 연결한 것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밈이 가지고 있는 생성과 확산의 유기적 생태계를 작업의 소재로 삼아, 이 거대한 가상 세계의 모방을 시도한다.
작가의 작업은 시각적인 측면에서 마치 밈 현상의 표피를 그대로 들어 올려 물성의 조형으로 구현한 듯 보인다. 그러나 작가가 행하는 모방의 특이성은 현상의 단일적이거나 파편의 재현이 아닌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존재와 존재가 서식하는 생태계 전반의 복합적인 묘사를 수행한다는 것에 있다. ‘생태계’의 도입은 존재의 해석 층위와 이로부터 파생되는 연계 지점을 더욱 다양하게 엮어낸다. 이것은 시선과 사유의 자유로운 전이를 유도하며, 단순히 어떤 것을 무엇이라 식별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이것에서 저것, 때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을 연결시킨다. 더욱이 작가는 가상적 이미지로 존재하는 밈을 현실의 물성으로 재현함으로써, 그리고 때로 박제라는 강렬한 실재성을 작업의 방법론으로 제시함으로써 현상에서 은폐되어 있던 맥락, 곧 존재의 서사나 특정 사회적 사건, 집단의 무의식 등의 확장적 층위를 끌어낸다.
전시장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조형작품 시리즈 〈IllIIllI-Ⅰ〉, 〈IllIIllI-Ⅱ〉, 〈IllIIllI-Ⅲ〉는 푸들, 너무나도 치킨 같은 푸들의 형상화이다. 보통은 털이 없는 눈이나 코, 입안까지 모두 튀김 형상으로 뒤덮여 있는 이들의 모습은 하나의 큰 덩어리처럼 보이며 더욱 치킨 같은 형상을 띄고 있다. 작가의 1단계 직조는 푸들과 치킨을 대응시키는 것에서 출발한다. 다음으로 작가는 푸들의 인간 친화적 생태계로 도그 어질리티(dog agility)*를, 치킨의 산업 생태계로는 튀김기와 주방 가구를 연결함으로써 2단계의 장치를 구현한다. 이 설정들은 서로 간 강한 시각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푸들 : 도그 어질리티 = 치킨 : 주방(튀김기) 간의 대응을 허물고 교차 지점의 형성을 유도한다. 전시장의 푸들은 개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과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그야말로 생생한 현장감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치킨의 질감으로 형상화된 푸들의 털은 기름기까지 묘사되어 있기에, 눅진함에서 바삭함에 이르는 식감과도 연결되며, 대상에서 오는 이질적인 감각의 충돌을 불러일으킨다. 푸들과 치킨의 혼종적 양상에서 이들의 같고 다름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고의 흐름, 또는 혼돈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푸들이 도그 어질리티가 아닌 주방(튀김기)에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존재 형태로 제시될까? 상상력이 뛰어난 이는 어쩌면 치킨이 뛰노는 어질리티 현장을 그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개와 같은 동물계인 닭이 어질리티 현장에 있다는 상상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작가는 이곳에서 특정한 메시지나 담론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두 생태계를 충돌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균열들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의 생성 가능성을 내비친다.
작가가 공간에 심어둔 하나의 작품은 이 지점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킨다. 작품 〈illiilli-ⅰ〉는 다른 푸들과는 다소 차이 나는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에 쓰인 것은 실제 개의 두개골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약 5년 전 어느 식당에서 버려질 부산물을 받아와 만든 것이다. 이 식당이 무엇을 주재료로 하는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가짜인 플라스틱 푸들 사이에서 생명의 흔적을 간직한 ‘진짜’ 존재의 등장은 한순간 우리의 사유를 환기시킨다. 이 존재는 작가의 의도 여부, 혹은 옳고 그름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인간, 동물, 생태, 환경 등의 연속되는 개념 사이로 우리를 미끄러지게 한다. 인간 중심주의 세계관, 현대의 육식 문화, 종차별주의 담론, 그리고 터부시되는 문화에 관한 불편한 진실 등의 이야기는 언뜻 유쾌해 보이는 장면에서 점진적으로 끌어올려진다.
조형과 평면을 결합한 작품인 〈U REALLY CAN FRY ANYTHING.〉은 ‘어질리티 맵’의 형상을 빌려온 작품이다. 전체적인 구도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지도의 기능처럼 작가는 이 구조를 활용해 이번 전시와 관련된 밈의 문구와 이미지들을 연결해 제시한다. ‘튀기면 뭐든 맛있다’ 유의 말은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 등의 말장난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온라인상에서 즉시 이미지로 생성된다. 이 이미지들은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누가 더 많은 주목을 받는가를 목표로 삼는다. 작가는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르는 이미지들의 원형을 등장시킴으로써 이들의 실재성을 역으로 제안한다. ‘진짜’에서 오는 강력한 인상은 유머러스한 지점을 넘어서는 당혹감, 기괴함에서 오는 불쾌함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곳에 있는 장난감, 신발, 지폐는 모두 실물을 가지고 튀김을 형상화한 작업이다. 혹 누군가는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쥐를 진짜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예상처럼 이것이 실제 쥐를 활용한 작업이라면 어떻겠는가? 작가는 이 자리에 쥐 박제 작업을 선보인다. 플라스틱 튀김 옷을 입은 쥐는 생명과 죽음의 흔적을 통해 우리의 사유를 또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튀겨진 쥐의 모습에서 누군가는 직간접적으로 느꼈을 두려움을 떠올릴지 모른다. 오늘날 내가 먹고 소비하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대량생산 체제에 기인해 있으며, 이것은 극한의 익명성의 산업구조 위에 구축된다. 그렇게 작가의 쥐는 우리의 집단적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던 놀람과 공포의 감정을 끌어올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가는 현대의 생태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생의 가장 온전한 모습이 아닌 튀김 옷을 잔뜩 입은 채 박제된 쥐는 분명히 어디선가는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극단적인 사실주의적 표현이다. 이들의 존재는 인간 생태계에 들어온 동물에게 더 이상 자연스러운 죽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권은산은 현상의 관찰자이자 분석가, 그리고 적극적인 모방자로 존재한다. 작가는 밈을 닮은 이미지, 곧 정교한 재현의 지점에서는 탈락해 마땅할 외형의 작품을 예술의 범주로 들여온다. (하지만 치킨푸들이라는 제3의 종이 실재한다면 이 얼마나 훌륭한 재현인가?) 그리고 작가의 시도는 이 모호한 존재들의 있음직한 생태계들을 구현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작가가 구성하는 존재와 존재의 생태계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세계의 재현으로 이뤄진다. 이곳에서 작가의 모방은 피상적인 밈의 세계에서 은폐되어 있거나 지워져 있던 원본의 독특한 탈환적 시도와 같이 진행된다. 이 때의 원본은 우리 눈 앞에 존재하는 물성으로의 재현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밈의 탄생에 있어 존재했을 특정한 사회적 맥락이나 존재의 서사를 재인식하는 것으로 확장되어 다가오기도 한다. 결국 작가의 작업은 인간에 관한 사유이자 인간이 이뤄가는 현대 생태계 전반의 모방과 같이 주어진다. 작가가 유도하는 시선과 사유의 전이는 가상과 현실, 옳고 그름 등의 단순한 구조를 넘나들며, 특정 세계를 이루고 있는 인간과 인간 사회에 관한 다층적 이야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 도그 어질리티는 승마와 유사한 개 장애물 경주대회를 말한다. 개는 경주를 유도하는 사람인 핸들러와 함께 짝을 이뤄 장애물들을 순서에 맞게 통과해야 하고, 가장 빠르게 들어온 개가 우승한다. 개와 사람의 교감이 중심이 되는 경기로, 개의 사회성이나 신체적 능력 향상 또한 경기의 의의와 효과로 말해진다.
글 | 김민경(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큐레이터)
■ 작가 소개
권은산은 경희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조소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고양이 작품이 인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스페이스 카다로그, 서울, 2023), 《오싹오싹 축산망령》(삼각산 시민청, 서울, 2021)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MURDER!》(챔버, 서울, 2024), 《너무나도 총이 필요합니다》(우석갤러리, 서울, 2023), 《별별》(누하동259, 서울, 2023), 《WHORFIAN HYPOTHESIS》(IMBG Art Space, 서울, 2022), 《방, 향》(4log Space, 서울, 2018), 《50+1 개국》(무국적 아트스페이스, 서울, 2018), 《작은신화》(더갤러리, 서울, 2017) 등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 RE:SEARCH(서울문화재단, 2022), 삼각산 아트랩 지원작가(삼각산 아트랩, 2021) 등에 선정된 바 있다.
전시제목권은산: IllIIllI
전시기간2025.07.05(토) - 2025.08.09(토)
참여작가
권은산
관람시간월-금 10:00~18:00
토 12:00~19:00
휴관일일요일, 공휴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Art Centre Art Moment (서울 금천구 범안로9길 23 (독산동) 4층)
주최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후원㈜영일프레시젼
연락처02-6952-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