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기의 아토마우스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보다 먼저 등장했지만 세계적 주목을 받은 것은 한참 후에 나타난 무라카미 다카시의 수퍼플랫 시리즈였다. 외적으로 유사한 양식의 그림임에도 세계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이유는 명확하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수퍼플랫 시리즈에 일본을 담았고, 이동기는 그렇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홍콩 크리스티에서 열린 한·중·일 현대미술 전시는 세 나라의 차이를 한눈에 보여주었다.
일본은 망가 이미지를, 중국은 전통과 공산주의적 상징을 활용해 자국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반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타자의 시선과 무관하게 제각각 이었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예술의 의미를 읽어내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맥락이다.
맥락은 일종의 문법처럼 작동한다.
현재 예술 읽기를 지배하는 문법은 오리엔탈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시선으로 비서구를 규정하고, 비서구 작가들에게 지역적 특성을 드러내도록 요구한다.
이는 결국 개인의 고유성보다는 집단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상황을 만든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개인을 중요시하는 듯 보이지만, 지역, 성별, 세대 등의 정체성을 더욱 세분화할 뿐,
개인의 고유성을 읽어낼 방법은 제시하지 못한다.
결국, 개인은 더 세분화 된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개물로 기능할 뿐이며, 예술은 또 하나의 사회적 담론으로 흡수된다.
변한 것은 없다.
예술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는다.
그러나 개인의 작품에서 집단적 정체성의 반복적 패턴만을 인식하는데 집중한다면 새로움은 탄생할 수 없다.
진정한 새로움은 개인의 고유성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을 위한 맥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첨단 과학의 발달은 인간에 대한 데이터를 컴퓨터에 업로드 하여 인류의 오랜 염원인 불멸을 꿈꾸게 한다.
그러나 “나”는 과연 데이터로 환원 가능한 대상인가?
신분증, 습관, 취향이 개인의 정체성 전부가 될 수 있는가?
인간은 누구나 고유하지만, 그것이 규정되기 전까지는 가능태로 존재할 뿐이다.
세상에 동일한 것은 없다. 다름은 자연적 상태다.
자연이 부여한 차이와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구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진정한 개인의 고유성은 자신만의 존재론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누구도 개인을 경험한 적 없고 아무도 개인의 고유함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정체성이 구축될 장소는 아직 아무도 밟은적 없는 미지의 세계이자 새로운 영토다.
<두 번째 피부, 다차원 평면>
새로운 영토는 다차원 평면이다.
새로운 존재론을 구축하는 일은 단순한 물리적 신체를 넘어서, 비물질적인 정신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정신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가시화되려면, 반드시 형상을 입어야 한다.
평면은 비가시적 존재가 형상으로 드러나는 장소다.
다양한 객체의 시선과 관점이 가능태로서 존재하고 드러나는 장소라서 다차원이다.
다차원 평면은 개인의 고유성이 형성되는 장소이며,
이곳에서 개인은 고유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두 번째 피부’를 얻게 된다.
두번째 피부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혼돈스러운 괴물처럼 보일 것이다.
읽혀지고 의미를 가질 때, 그것은 새로운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개인의 정체성을 읽어낼 새로운 맥락은 평면의 다차원적 질서를 읽어내는데 있다.
<중심과 주변에서 전체와 부분으로>
오리엔탈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중심과 주변의 구조를 통해 집단의 정체성을 반복적으로 생산해 왔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의 다양함과 고유성에 주목할 수 있는 인식의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오리엔탈리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은 의식의 진화 발전을 위해 필히 거쳐야 할 단계였다.
이제 한 시대를 점유하던 담론이 막을 내리고 있다.
개인의 고유성을 읽어내고 의미를 구축하게 될 새로운 맥락은 전체와 부분의 구조로 재편된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작품들이 당장 그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시작을 알리는 전시다.
구조의 이동과 개인의 존재론을 구축하는 방법론은 연이어질 전시를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독립적 개인의 존재론 구축, 그리고 그것을 읽어낼 새로운 맥락의 출현.
이것이 앞으로 다루어질 새로운 예술 담론의 주제다.
전시제목두번째 피부 The Second Skin
전시기간2025.03.20(목) - 2025.04.30(수)
참여작가
노충현, 서동욱, 이동기, 정수진, 홍수연
관람시간11:00am - 06:00pm
휴관일일요일,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60길 26 )
연락처02-745-1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