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각으로 느끼는 해석
최서원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세계는 현재 자리하고 있는 문화권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개인이 융합을 이루어 구성된 사회이다. 이 사회는 좁고 넓은 범위에서 여러 인종이 가지는 배경지식을 통해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범세계적으로 교류해 왔다. 사람마다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차이의 다양함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닌 더욱 포용적이고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Claire Kim 작가는 구태여 관점의 방향을 매듭짓거나 고정하려 하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화면 속 각종 인물의 제스처나 시선, 구도, 배경 등을 전체적으로 살피며 본인의 서사로 투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작가의 머리에서 탄생한 특정 이야기와 주인공들의 연관성은 제삼자의 시각에서 새로운 장르로 개편되고 혼합된다. 이 그림이 과연 무엇인지 작가 스스로 구체화하여 원초적인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작품에 자유로운 단서를 남기고 그 단서를 통해 관객과 가까워지며 예술적 사색의 장을 마련한다.
작품에서는 불특정 다수가 주된 캐릭터로 등장한다. 국적과 인종에 구애받지 않은 인물은 어딘가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등 실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자세로 모종의 행위를 취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정해진 역할에 집중하면서도 표정에서 모호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그 시선은 프레임 밖으로도 이어지며 마치 관객과 가시적으로 소통하는 듯하다. 이때 우리는 마주한 인물을 매개로 자신의 경험과 지난날의 기억을 회상할 수 있다. 작품에서 어딘가 또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인물의 눈빛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 허공일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빈 공간일지언정 눈빛의 끝자락은 우리의 머릿속을 메우고 있는 정신적 가상의 일루전이 된다. 창작한 대상에 형태와 서사를 부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실과 비현실의 간극은 작품을 감상하는 찰나의 시간 동안 수많은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허상은 허상으로, 사실은 사실로 구분 짓는 이분법적 해석을 넘어 동일한 몸짓이나 실루엣일지라도 눈앞에 직면한 주체들을 각자의 세계관으로 풀어내며 장기적 메커니즘의 변모를 추구하는 동시에 경계 없이 트여 있는 예술적 범주를 무한히 확장한다. 관객은 작품을 거쳐 고요한 이상 속으로 다가가 현실과 현실 이면의 환상 속 영역을 초월적으로 넘나들며 자아가 파고드는 무의식으로 발을 담근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Doll House 시리즈는 이러한 심리적 감상의 증폭을 더욱 신선하게 다룬다. 언어 그대로 인형의 집이 모티브가 된 작품은 아기자기한 색감과 파스텔 톤으로 잠재되어 있던 어릴 적 관념을 떠오르게 한다. 묘하게 이질적인 풍경은 낯설지 않은 익숙함을 자아내면서 작가 고유의 독창성으로 시공간을 구현하여 누구나 한번 쯤 꿈꾸는 유토피아를 공유한다.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매체는 우리 곁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다문화 시대를 향유하는 현대인은 각종 커뮤니티와 발전된 소통망에서 지속적인 교감과 관심 분야의 정보를 얻는다. 작가는 모두가 가장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차용하여 다채로운 사고를 시도함으로써 무엇이든 허용되는 예술의 힘을 자유분방하게 발산한다. 나아가 자문하여 스스로에 대한 답을 모색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삶의 전반적인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느끼는지 작품을 통해 다시금 떠올리도록 한다. 환상과 이상, 현실과 가상은 과학적인 이론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의식 저편에서 늘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자신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작품과 연결된 자아가 스스로를 어디로 인도할지 작가가 선사하는 회화로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작가 노트
나의 상상력의 한계는 다른 차원의 세계,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공간과 사물이 얽힌 장면을 떠올리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한 초현실적 세계보다는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호기심에 집중한다. 예컨대 옆자리에서 점심을 먹는 소녀의 미래, 행복해 보이는 연인이 함께할 저녁 메뉴, 혹은 발견하지 못한 복선을 추리해보거나 소망 섞인 미래를 꿈꾸는 것과 같이 나의 상상은 일상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소박한 기대와 설렘을 찾아간다. 이러한 상상의 시퀀스는 영화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고, 때로는 담백한 소설의 한 페이지처럼 일상적이기도 하다.
성장 과정에서 마주한 수많은 이미지와 이야기들은 기억 속에서 뒤섞이며 나만의 네러티브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이야기인지, 많은 경험이 엮인 클리쉐 덩어리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서사의 한 장면은 본인의 문화적 배경을 알레고리 삼아 만화의 한 컷 혹은 그림책의 삽화처럼 재탄생 되었다. 나의 회화는 순간의 정지된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이야기의 연속성과 서사적 깊이가 흐르고 있다. 유년 시절 자아를 투영시킨 인형놀이나 한정된 공간을 본인의 우상으로 채웠던 청소년기의 기억 속에는 상상과 현실이 혼재해 있었고 이러한 경험은 성인이 되어 디지털, 지면, 스크린 속 가상의 세계와 현실 사이에서 미묘한 불균형과 긴장을 만들어 냈다. 허구가 때로는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으며, 이상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허구가 사회적 관습, 미디어, 자본주의적 논리에 길들여진 채 무의식적으로 주입된 환상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져보곤 한다. 결국 현대인은 사회적 역할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형’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며, 나만의 시각 언어로 이 질문을 캔버스 위에서 탐구한다.
또한 이 회화적 장면들이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너머에 숨겨진 경험과 감정, 남겨진 향수, 그리고 상상으로부터 파생된 환상에 이르기까지 관객이 자신만의 서사를 불러일으키는 촉매가 되기를 바란다. 필터링된 색채와 서정적 구성을 통해 관객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공감과 해석의 여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는 회화가 그 여정의 연결고리가 되길 희망하며 시간과 기억의 층위를 넘나드는 상상의 세계를 캔버스 위에 펼쳐보았다.
전시제목김선경 : 허구적 진실성Fictional Veracity
전시기간2025.03.12(수) - 2025.03.18(화)
참여작가
김선경
관람시간11:00am - 06: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37 제1전시관(B1F))
연락처02-737-4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