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문화재단은 오는 12월 17일(화)부터 2025년 2월 22일(토)까지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을 개최한다.
송은미술대상은 역량 있는 동시대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2001년부터 매년 운영하는 미술상이다. 올해 공모에는 총 598명의 작가가 지원하였고 지난 2월 진행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가 20인이 선정되었다.
이번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에 참여하는 작가 20인 구나, 구자명, 김원화, 노상호, 박종영, 배윤환, 손수민, 송예환, 안유리, 얄루, 업체eobchae, 오묘초, 유아연, 이승애, 이혜인, 조재영, 진민욱, 최장원, 추미림, 탁영준은 회화, 조각, 설치, 영상, 사운드 등 여러 매체를 아우르며 동시대 한국 미술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신작을 선보인다.
송은문화재단은 2020년 제정 20주년을 맞이함과 동시에 신사옥 개관을 기념하며 송은미술대상의개편을 준비해 2021년부터 기존의 전시 형식의 심사 단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전시 참여 작가를 20인으로 확대했다. 이를 기점으로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되는 미술상으로 거듭나고자 다양한 미술 전시 및 프로그램을 통해 역량 있는 작가를 양성 및 지원해 온 서울시립미술관, 그리고 예술과 문화에 대한 지속 가능한 지원과 헌신을 보여온 까르띠에와 협력해 수상 혜택을 대폭 확대했다.
제24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자는 전시 기간 중 최종 심사를 통해 선정하며 2025년 1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기존 혜택인 상금 2,000만 원 수여 및 3년 이내 송은에서의 개인전 개최 지원과 더불어 송은문화재단과 까르띠에의 후원으로 대상 수상자의 작품 총 2점(약 3,000만 원 상당)을 추가 매입한다. 이 작품은 송은문화재단(1점)과 서울시립미술관(1점)에 각각 소장될 예정이다. 또한 서울시립미술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1년 입주 기회를 제공하는 등 작가의 꾸준한 작업 활동 및 발전을 도모한다.
송은미술대상전에 참여하는 작가 20인에게는 런던 델피나 재단(Delfina Foundation)과 국내 단독 협약을 맺고 운영하는 ‘송은문화재단–델피나 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 자격을 부여하고, 선정된 1인에게 12주간 델피나 재단 레지던시 활동을 지원한다. 델피나 재단은 런던에서 가장 큰 국제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비영리 기관으로, 매년 40여 명의 작가를 초청해 예술인들을 위한 국제적인 예술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본 전시와 더불어 송은의 웰컴룸에서는 4321-MARKET을 진행한다. 2020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이하는 홀리데이 마켓 ‘4321-MARKET’은 독립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로 구현된 재기발랄한 제품들을 제안하고, 국내외 신진 디자이너들이 구매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이번 4321-MARKET을 관통하는 주제는 ‘송은’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22개의 팀, 28인의 디자이너는 젊은 작가들을 지원, 육성해온 송은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와 신사옥의 건축적 특성을 소재 및 구조 중심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제품들을 마켓 당일인 12월 22일(일)에 선보인다. 그들의 작업 배경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보다 심도 있게 살필 수 있는 각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는 2월 22일까지 웰컴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송은미술대상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네이버 사전 예약을 통해 자율 관람 가능하며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도슨트 투어는 네이버 예약 시스템을 통해 사전 예약한 관람객을 대상으로 무료로 진행하며 11시, 12시, 15시, 16시 총 4타임으로 운영된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송은 홈페이지(songeun.or.kr)를 참고하거나 전화(02-3448-0100) 문의 바란다.
참여작가 소개 (전시 동선순)
최장원 (b.1981)
최장원은 건축과 미술의 경계에 위치하며 건축적 요소를 일시적으로 해체하거나 이에 내재된 조형성을 촉각적인 환경에서 재맥락화하며 장소적 의미를 확장시키는 실험을 이어왔다.
<행려자(行旅者)의 파빌리온: 일시성과 가벼움에 관하여>(2024)은 공간과 중력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긴장과 이완의 순간을 포착하고, 이 미묘한 균형을 통해 기존 건축 문법을 흩뜨려 기하학적 요소들 간의 자유로운 대화를 이끌어낸다. 작가는 ‘반(反)-덩어리 건축’개념을 경유해 볼륨을 해체하고, 이를 이동과 변화라는 특성을 지닌 새로운 관계로 재구성한다. 한편 작품은 고대 신전의 숭고한 기둥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원시 오두막과 같은 태초의 건축과 현대사회가 공유하는 공간과 사물 간의 수평적 상호작용을 환기한다. 이로써 <행려자의 파빌리온>은 현대 도시와 건축의 고정성에 대한 시적 비평이자, 신화적 상상과 동시대적 감각을 교차시키며 건축과 전시가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공간적 시도이다.
탁영준 (b.1989)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탁영준은 퀴어 정체성과 종교적 신념, 그리고 특수한 장소성이 이질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을 추적해 영상, 조각, 평면의 형태로 그 구조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컨템포러리 댄스 필름 연작의 세 번째 작품 〈월요일 날 첫눈에 똑떨어졌네〉(2024)는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가 구전되는 유기적인 구조를 안무적인 맥락에서 변주시킨다. 작가는 노르웨이의 저술가 라스 뮈팅(Lars Mytting)의 소설 『자매 종』(2019)에 영감을 받았고, 이 소설은 19세기 후반 노르웨이의 외딴 마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애정 관계를 주요한 서사로 다루는 동시에 중세 목조 교회의 ‘자매 종’에 얽힌 전설, 그리고 전 국가적 근대화와 맞물려 혼종성이 주입된 공동체의 구조적 변화와 건축사를 살핀다. 이에 착안해, 본 필름은 두 명의 십대 후반 여성 무용가가 각자 부모의 사랑 이야기를 토대로 창작한 안무에서 시작해 두 명의 남성 무용가의 듀엣 안무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번안, 재창작의 과정을 쫓는다. 이야기, 기억, 공감으로 직조된 안무의 조각들은 12세기에 지어진 노르웨이 중세 목조 교회와 퇴역한 대형 여객기 사이를 오가며 서로를 향해 단계적으로 응답하고 중첩하며 점차 그 얼개를 드러낸다.
오묘초 (b.1984)
오묘초는 직접 집필한 공상과학 소설에 기반해 미래의 지성체들이 제안하는 대안적인 생존법을 현재 시제로 치환하고, 조각, 설치, VR 영상 등을 활용해 기억 전이와 감각 분화가 수반하는 물질성에 풍부한 서사를 부여한다.
작가가 주요 매체로 다루는 유리와 금속은 외부 환경에 따라 단단하게 응고하거나 흘러내리기도 하면서 상태 변화를 거듭하는데, 이러한 재료의 가변적인 물성은 물질에 내재된 서로 다른 시간성과 기억을 추출해내고 고착화시키기를 반복한다. 뇌과학자와 협업하며 단순한 추상으로 인식되었던 기억이 인위적으로 조작, 전이 가능한 물리적 실체임을 시각화하는 최근 몇 년간의 작업에서 작가는 기억과 감각마저 혼종적으로 부유하는 미래의 상황에서 인간성을 견고하게 지탱해오던 조건들을 반추해왔다. <딱 걸린 진화의 현장>(2024) 역시 도래할 세계의 종말과 인류의 범주를 벗어나는 생태를 조각적으로 상상하면서 파괴된 현실을 딛고 새롭게 자라날 생명의 서사를 더듬어가며 잃어버린 공존의 감각을 낙관적으로 되살린다.
진민욱 (b.1980)
진민욱은 동아시아의 회화기법을 연구하고 고전문학의 키워드를 일상에서 채집한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 소외된 주변적 서사를 정제된 감정으로 그려낸다.
전작에서 고대시가집 『시경(詩經)』의 시 구절과 그를 필사하면서 떠오른 심상을 대구시켜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징성 간 상호보완적 관계를 탐구한 바 있는 작가는 단가(短歌) 편시춘(片時春)을 토대로 작성한 자작시 ‘봄조각’을 신작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편시춘의 가사 중 일부를 임의적인 방식으로 재조합한 후 다듬음 없이 쓰여진 자작시의 시어들은 4폭 병풍, 그리고 병풍의 환유성을 반영한 변형 캔버스에 흩뿌려지듯 안착한다. 이러한 자동기술적 조형 과정은 원작의 고정된 전형성에서 벗어나 서사의 유연한 확장 가능성을 작동시키고, 전통적인 소재 선택과 화면 구성에서 이탈해 동양화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가능케 한다.
구자명 (b.1986)
구자명은 소프트웨어의 형태를 조각으로 물질화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작가는 소프트웨어의 하부구조인 코드를 추출해 이를 취약하고 불완전한 상태로 제시함으로써 견고한 구조의 이면을 가시화하고 기록한다.
신작 <소프트웨어 빼돌리기>(2024)에서 작가는 북한의 선전 웹사이트 속 코드 구조를 알파폴드(AlphaFold) 및 유전체 브라우저(Genome Browser)와 같은 생물학적 방법을 거쳐 단백질과 DNA로 변환시킨다. '자금 세탁' 개념을 차용한 작품 제목에서 드러나듯, 작품은 코드의 출처와 내용을 은폐하거나 재구성해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끔 하는 변환술로 읽힌다. 웹사이트의 HTML 태그를 생명체의 기본 구성인 아미노산 및 염기서열로 물질화하는 전략을 통해 작가는 특정한 체계와 메시지를 지닌 코드가 생물학적 물질성을 덧입고 재맥락화되는 양상을 고찰한다.
노상호 (b.1986)
노상호는 온라인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AI와 3D 모델링 기술을 활용해 이를 회화, 조각, 영상의 조형 문법으로 번역하고 재해석한다. 그의 작업은 동시대에 이미지가 소비, 창작되는 양상을 좇아 디지털 글리치와 아날로그 회화라는 두 세계의 물리적 차이를 시각화하는 데 집중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오가는 일상적인 감각을 ‘성스러움’으로 치환하는 <홀리-중력과 은총>(2024)는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글리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서로 호응하지 않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동시에 디지털 세계를 작동시키는 물리 법칙을 제시한다. 작업에 주요하게 사용되는 에어브러시 기법은 디지털 이미지를 아날로그 세계의 표면에 기입하며 디지털과 아날로그 본연의 간극을 효과적으로 극화시키는 도구다.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신의 의견과 자기반성적 목소리가 접촉하는 장소인 고해소를 재현하는 조각은 이질적인 두 영역이 각자의 존재 방식을 이해받으면서도 그들이 유일하게 맞닿을 수 있는 창구로 작용한다.
업체eobchae
김나희, 오천석, 황휘로 구성된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콜렉티브 업체eobchae는 2017년 결성되어 미래를 가속하는 신기술과 그와 맞물려 작동하는 초자본주의적 환경을 배회하며 그 틈에서 간과된 내러티브를 사변적으로 직조해왔다.
신작 < d.raft >(2024)는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합의가 이뤄지는 방식과 종교 집단이 계시를 받아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상동성을 환각적으로 그려낸 그래픽 노블이다. 업체eobchae는 분산 시스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뗏목 합의 알고리듬(Raft Consensus Algorithm)’를 모르몬교의 복수결혼 문화에 대입해 다이어그램으로 시각화한다. 작품은 네트워크 시스템의 일관성 유지와 종교 교리의 순수성 정립의 기제를 겹쳐 보이며, 종교의 노드로 역할하는 인물들(부부와 애인)이 계시를 받아 가족 공동체의 상태를 동기화하고 충돌을 해결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렇듯 < d.raft >는 네트워크 기술과 영적 진술이 불확실성을 처리하는 방식의 구조적 동형성을 포착함으로써, 모든 종류의 진위 판단이 프로토콜에 따른 합의의 산물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배윤환(b.1983)
배윤환은 최근 지구와 인간이 필연적으로 공명하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를 반영해, 지구를 인격화해 개인과 환경이 대등하게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이미지와 영상에 담아낸다.
작가는 얼핏 일상은 지겹게 되풀이되는 서사로만 점철된 것 같지만, 자세히 살피면 균열과 틈 속에서 비롯된 변칙과 우연으로 전개되는 비선형의 소설과 닮아있다는 발상에서 <3시에 추는 춤>(2024)을 출발시킨다. 제주도의 자연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상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반복과 변주라는 두 축을 끊임없이 구르는 돌멩이와 정형 행동을 반복적으로 지속하는 두더지로 은유한다. 이같은 유비를 통해 작가는 반복과 변칙이 불운으로, 때로는 행운으로 발현할 수 있다는 삶의 임의적인 양면성을 이미지화하고 개인의 일생과 서사를 미시적인 생태계로 간주한다.
유아연 (b.1996)
유아연은 개인의 특수성이 자본주의에 의해 기형적으로 상품화되어 소비되는 과정 내부에 신체를 오브제로서 배치해 수동적으로 답습되어오던 이미지 유통 방식을 재고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 Elevator >(2024)와 < Escalator >(2024)는 AI로 대표되는 인공적인 공상이 개인의 욕구와 정치적 경향성을 폭력적으로 재단하고, 나아가 사변적인 유희마저 침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권력의 대안을 상상하는 데서 출발한다. 자본주의의 매끄러운 유통망에서 탈주하기 위해 작품은 엄청난 속도로 스크롤을 내려 데이터를 가소적 형태로 변환시키는 ‘Scrolling’과 견고한 스크린 밖으로 미끄러져 물리적 창을 깨뜨리는 ‘Slipping’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제안한다. 일련의 동작을 반복하고 가속하는 조각은 스스로 동력을 생성하는 바퀴로 기능해 가독성을 부정하는 전복적인 이미지로 거듭난다. 이러한 매커니즘의 격동적인 부품으로 초대된 관객은 결코 완결될 수 없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이동시키고 해체하며, 무한소비주의에 대항해 개인 단위의 상상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연대에 동참한다.
송예환 (b.1995)
송예환은 대안적인 웹사이트와 비디오 설치의 형태로 디지털 매체의 허점과 권위주의를 폭로하고, 디지털을 둘러싼 사회적 불균형이 이데올로기로 굳어지는 과정을 숙고한다.
<정지된 정보의 바다>(2024)는 제한된 정보만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동시대의 인터넷 사용자, 즉 ‘웹서퍼’를 무기력하게 물속에 침잠해버린 서퍼에 비유한다. 설치 작품은 서퍼가 가라앉고 있는 수면 아래의 세계로, 침체되고 규격화된 웹 공간을 상징한다. 이 구조 내부에는 전형적이고 획일화된 웹사이트를 대표하는 UX/UI 키트와 사용자를 나타내는 아이콘들이 바닥으로 끝없이 가라앉으며 군집을 형성한다. ‘서퍼’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점차 침몰하는 동안 자신이 속한 인터넷 환경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조차 인터넷 속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결국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작은 인터넷' 속으로 침체되어 사라진다. 무겁게 침전하는 정보와 지식에 휘말려 필터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리는 웹서퍼의 무력함은 공격적인 알고리즘과 기업의 이윤 추구에 의해 자율 의지가 억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추미림 (b.1982)
추미림은 웹과 도시를 동시대의 일상적 환경으로 설정하고,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픽셀과 도시 구조를 한 눈에 포착하는 위성지도의 시각적 요소를 조형적으로 결합해 두 사용자 환경(interface) 간의 유사성과 차이를 평면, 영상, 설치 등의 매체로 환원한다.
최근 작업에서 작가는 웹과 도시를 작동시키는 동력인 데이터로 탐구를 확장해 데이터 기반 사회의 내부 구조를 드러내고 그 본질을 환기하는 실천을 이어왔다. 디지털과 도시라는 이질적인 두 환경에서 추출한 조형 패턴을 충돌시키거나 느슨하게 엮어가며 유기적인 모듈을 구축하는 것에서 나아가, 일상의 모든 네트워크를 가속화시키는 촉매제로서 데이터를 파악하고 이들이 변형, 유실되면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도시적 감수성에 집중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5점의 영상 역시 디지털-도시 환경이 엇갈리듯 중첩된 타임라인을 제시하고, 벽면의 시트지 작업과 연결되며 데이터들이 구축하는 복합적인 관계망은 공간으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조재영 (b.1979)
조재영은 최소 단위의 기하학적인 형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증식시키며 특정한 도상이나 기능으로 명명할 수 없는 조각을 구성하는데, 최근 작업에서는 기존의 인식체계로 포획되지 못하는 중간자적 존재들을 주로 신체에 빗대어 상상한다.
<쌍둥이 정원>(2024)은 신체를 소재로 삼지만 작품 안에서 신체의 온전한 형태는 포착되지 않는다. 작품을 구성하는 조각들은 종이라는 재료를 껍질로 삼고 이 얇은 껍질을 통해 신체 부분들을 형상화하는데, 종이의 유약한 물성에 의해 이들의 형태는 항상적일 수 없다. 가변성을 내포한 구조는 절단되고 그 위에 새로운 구조가 덧대어지기를 반복하며 변형, 변질된다. 조각을 이루는 기하학적 형태들은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복제하고 변이시키며 관계 맺는 동시에, 새로운 기관이자 몸체로서 독특한 형상을 갖추어 간다. 기관들은 본래의 위치에서 이탈해 다른 부위에 접합되고 가지와 뿌리, 돌기와 가시들은 이 접합 사이로 엮여 들어간다. 한편, 붉은 거치대는 해체와 결합을 지속하는 기관들이 조응하는 장소로 기능하며 이들을 하나의 몸으로 묶어낸다. 이렇듯 질료가 열어젖힌 구조적 틈새 사이로 끊임없이 차이를 낳는 조각들은 중력에 이끌려 대지 위에 착륙하기를 거부한 채 공중에 부유하며 인간을 관통해 비인간의 몸으로 확장된다.
이혜인 (b.1981)
이혜인의 회화는 특정 장소나 인물을 면밀히 관찰하고, 이로부터 촉발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정서와 경험, 그리고 기억이 중첩된 시간의 흔적을 좇아 그 아래에 여전히 생동하는 감각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화면 위로 끄집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보아온 오래된 재래시장 골목의 가게들을 은은히 중첩된 면과 선들로 그려낸다. 겨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 시장 안에서 가게들은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고는 있으나 수십년째 재개발만을 기다리며 점차 쇠락해간다. 작가는 특히 늙은 남자가 운영하는, 손님 대신 낡은 골동품으로 가득찬 주점과 밤이 되면 붉은색 조명이 새어나오는 유흥업소를 관찰해 이들을 실제 스케일에 가깝도록 캔버스에 옮겨냈다. 이렇게 그려진 풍경은 희미하게 점멸해가는 불빛과도 같은 주변적인 장소 내부로 관람객을 소환하는 동시에, 공간을 둘러싼 축적된 시공에 현재 시제의 색채와 리듬을 입혀 다시금 불을 밝히며 실재하는 대상과 그것을 재구성하는 기억 사이를 수행적으로 오간다.
김원화 (b.1980)
김원화는 역사 속 패러다임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순간이 인류를 진보된 미래로 이끌지만, 위기를 타개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전제로 작업한다. 최근에는 급속도로 발달한 기술이 모호성을 띠는 지점을 가시화하는데 초점을 맞춰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기반의 작품을 선보인다.
<인간의 거울>(2024)에서는 인간이 설계했지만 그 원리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친근함과 이질감을 동시에 유발하는 미지의 대상으로 제시해 관람객과 조우하게 한다. 인공지능은 인간 주체를 객체화시키는 유사 인간으로 기능하며 공간에 들어서는 관람객을 관찰하고 판단하는데, 판단의 주체성을 빼앗긴 관람객은 인공지능이 도출한 판단의 결과물을 시청각적으로 즉각 접하고 불확실성의 불안에 휩싸인다. 작품의 골격을 이루는 거울 터널은 인공지능이라는 증강가상(AV)과 관람객이라는 현실의 존재를 비춰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게 하고, 주변을 둘러싼 미디어 환경을 다각적으로 인식시켜 인공지능 잠재공간(Latent Space)을 상상하게 한다.
구나 (b.1982)
구나는 기존의 언어와 인식 체계로는 구현이 어려운 이해의 공백들을 페인팅과 입체의 물성을 빌려 메운다. 특히 개인적인 서사에 기반해 결핍을 동반한 신체의 한계를 추상적으로 형상화하고, 열망과 서늘함이 동시에 교차하는 신체의 잠재력을 포착하고자 한다.
<상아뼈그레이보철정물화와 상아빛브라운블랙초상화, 그리고 블루블루스물빛실물>(2024)은 ‘아픈 몸’을 전후로 결핍을 수용하고 시간을 감지하는 태도가 충돌하는 양상에 집중해 몸에 밀려드는 고통을 수수께끼이자 내부의 심야로 상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작품은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 이후 비동일한 객체들이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는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성을 고찰하며 몸의 심야에서 나타나는 짐작과 실천, 와해와 돌봄, 애수와 차가움 등 역설적인 속성들 사이를 진동한다. 작가는 세 개의 조각에서 이질적인 물성을 가진 재료를 결합해 몸의 양가성을 물리적으로 강조하고, 고통과 함께 수반되는 살갗의 낯선 질감, 몸 안의 어두운 줄기들, 혹은 통로들에서 흐르는 물과 같은 몸의 이면들을 가시의 영역에 조심스럽게 위치시킨다.
박종영(b.1978)
박종영은 현대 사회의 감시와 통제 매커니즘 등 디지털 환경에서 제기되는 문제의식을 인터랙티브 설치로 확장시켜 인간의 정체성과 자유 의지가 조작되는 양상에 집중한다
< Multi-persona >(2024)는 플랫폼 기업들이 사용자들의 정보를 수집해 이윤 창출의 도구로 활용하는 ‘감시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현대인이 다중의 정체성을 분열적으로 표출하는 ‘멀티 페르소나’가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작가는 AI와 빅데이터가 개인의 취향을 역으로 형성해 소비를 일방향적으로 유도함으로써 자유 의지를 왜곡하고 정체성을 교란시키는 현상을 효과적으로 꼬집기 위해 관람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관람객의 얼굴을 스캔하는 인터랙티브 마리오네트는 수집하는 안면 정보를 나이와 성별을 기준으로 세분화하고, 그에 따른 가면을 스크린 너머 부여해 무형의 데이터만으로도 정체성을 획일화하는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얄루 (b.1987)
얄루는 프로젝션 맵핑 조형, 미디어 파사드, VR 등 디지털 무빙 이미지를 활용해 작가가 새롭게 정립한 언어 체계와 신인류의 출현, 변이된 생태계 등을 근간으로 하는 세계관을 몰입형 스토리텔링으로 확장시킨다.
비디오 설치 <신인호 월드 투어>(2024)는 86세의 K-POP 아이돌이자 해적인 ‘신인호’의 여정을 공상적으로 그려내는 해양 어드벤처로, 애니메이션, 조형, 사운드, 텍스트의 형식을 경유해 내러티브에 시각적인 생동감을 더한다. 기억과 재현이 뒤섞인 타임라인 속 ‘신인호’라는 개인의 역사는 주류에서 이탈한 대안 서사와 동시다발적으로 이행한다. 단일한 역사 쓰기를 벗어난 유동적인 아카이브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예측불가능한 미래의 시점에 주체로서 단단히 발 디딜 수 있는 조건들을 검토한다.
이승애 (b.1979)
이승애는 죽음이나 잠, 고통과 불안, 직감, 망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대상들의 실체를 포획하고 이미지화하기 위해 영혼의 존재를 정립해나가는 과정을 드로잉, 애니메이션, 설치로 풀어낸다.
작가는 동식물의 초월적인 힘을 향한 경외가 동북아시아의 무속적 전통에 깊이 이식된 양상을 좇고, 영혼의 윤회와 불멸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미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영속, 그리고 생자의 평안을 기원하는 시베리아 설화를 총체적인 설치로 재사유한다. 드로잉 애니메이션 < XXXX >(2024)은 시베리아 설화에서 태초의 대지를 창조했다고 묘사된 ‘새’에 주목해 이들의 헌신적이고 고결한 몸짓을 드로잉으로 대치하는 실천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더해 작가는 땅과 하늘을 연결시키는 존재로서 최초의 샤먼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새의 상징성에서 착안해 시베리아 샤먼의 무복을 수놓은 새 문양, 독수리와 여성이 교합하는 형상, 동물을 영적 매개로 저 너머 세계와 교감하는 장면들을 아우르는 드로잉 설치를 함께 제시한다.
안유리 (b.1983)
안유리는 정치사회적 격변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추적하고, 텍스트, 비디오, 사운드 등을 통해 과거의 궤적을 현재로 소환하며 시공간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단채널 영상 <은막(銀幕)의 방랑자>(2024)는 고대 그리스에서 저녁별 ‘헤르페로스’와 새벽별 ‘포스포로스’로 불리며 궤도의 위치에 따라 비치는 모습만 변했음에도 완전히 다른 두 천체로 여겨졌던 금성처럼, 국가와 시대의 요구로 극명히 다른 페르소나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두 명의 실존인물을 조명한다. '리샹란'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인 행세를 하며 가수이자 영화배우로 활동한 '야마구치 요시코', 청나라의 공주이자 일본 스파이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가와시마 요시코’는 공교롭게도 ‘요시코’라는 동일한 이름을 공유했고, 이들은 작가에게 서로 다른 외양을 내비치나 결국은 공통된 근원에서 비롯된 ‘저녁별’과 ‘새벽별’로 여겨졌다. 영상은 ‘은막(銀幕)’의 가장자리로 사라진 두 인물의 삶이 잠시 교차하는 ’환등상(Phantasmagoria)’의 무대로 설정되어 개인의 삶이 어지러운 역사 속에서 굴절되어 남긴 변곡점들을 치밀하게 좇는다.
손수민 (b.1986)
손수민은 거시적인 사회 구조가 일상의 경험에 침투해 만들어내는 균열을 배회하며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다각도로 탐구해 영상, 설치, 퍼포먼스, 출판물 등의 매체로 시각화한다.
<언더그라운드>는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조악한 초기 인터넷 및 디지털 기기의 한계와 더불어 그럼에도 기술을 통해 정서적 유대와 시대 정신을 공유했던 순간들을 조명한다. 대형 테크 기업 소유주들이 거대 지하 벙커를 짓는다는 뉴스가 시사하듯,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속도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적 이해와 규제를 대비해 초연결 자본주의 사회가 초래한 혼란, 고립, 불균형에 질문을 던진다. 한편 <뮤직박스>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뮤직박스를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연주하는 장면을 담는다. 작가는 을지로의 장인들과 협업하면서 기술이 담지하는 그들의 정직하고 담담한 삶의 자세를 마주한 뒤 노동, 그리고 노동의 주체인 사람을 사회가 정의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작품은 밀도 높은 가상으로 채워지는 일상에서의 물질적 한계를 재고하면서, 합리주의에 기반하는 원칙과 공간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시제목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
전시기간2024.12.17(화) - 2025.02.22(토)
참여작가
구나, 구자명, 김원화, 노상호, 박종영, 배윤환, 손수민, 송예환, 안유리, 얄루, 업체eobchae, 오묘초, 유아연, 이승애, 이혜인, 조재영, 진민욱, 최장원, 추미림, 탁영준
관람시간11:00am - 06:30pm
* 도슨트 투어는 네이버 사전예약으로 운영되며, 자세한 사항은 송은 웹사이트를 참고해주세요.
휴관일일요일, 공휴일 휴관
장르회화, 조각, 설치, 영상, 사운드 등
관람료무료
장소송은 SONGEUN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41 (청담동) )
주최재단법인 송은문화재단
후원까르띠에 / 협력:서울시립미술관
연락처02.3448.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