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도시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와 명예가 집중되고 모두의 소망이 이뤄지는 곳. 가능의 유토피아. 밤낮없이 아름답게 빛나는 도시의 삶에서 우리는 실낱같은 성공의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각지에서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빛나는 유리의 성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은 채 어쩐지 조금 외롭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아름다운 도시는 필연적으로 폐허를 딛고 일어서며 또다시 폐허를 향해갑니다. 자본주의의 환영으로 눈속임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찰나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문주 작가는 대도시 환영 너머의 세계, 폐허 사이를 걷는 산책자로 본인의 역할을 상정합니다. 그의 손에는 폐허 풍경을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카메라가 들려 있습니다. 작가의 대형 캔버스에 담긴 폐허의 스펙터클은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그는 빛을 잃고 쇠락한 산업 도시, 재개발을 앞둔 지역에 널린 건축 쓰레기 무덤, 뿌연 먼지를 일으키는 중장비가 오가고 숲이 파헤쳐 져 벌거숭이가 된 모래산 풍경을 작품을 통해 펼쳐 왔습니다. 기록을 목적에 두었던 사진은 캔버스 위 붓질과 물감을 통해 물질로 환원되고, 어떤 부분은 그 자체가 물질이 되어 화면 위에 덧붙었습니다.
건물을 쌓아 올리듯 차곡차곡 조합하여 완성된 폐허 풍경은 도시 이면의 도시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선사합니다. 도시가 폐허가 되기까지의 중첩된 시간이 회화라는 물질로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을 소비하듯, 캔버스 안팎으로 펼쳐진 폐허의 풍경이 시각으로 소비됩니다. 이 즈음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환영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개발과 폐허를 지속하는 도시의 순환고리, 자꾸 실패하고 마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풍경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사람입니다. 카메라를 빌어 객관의 눈을 덧입은 작가는 작게 눈을 깜박이며 다시 기지개를 켜 봅니다. 예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도심을 빗겨난 한적한 공원에서 벌어지는 어르신들의 한바탕 춤사위도 괜스레 신이 나 보입니다. 재개발을 앞두고 황폐해진 동네에 끝까지 남아 있던 화원 사장님이 파는 화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삶의 표상으로 읽히는군요. 채석장의 텃밭이나 공사 터의 풀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펙터클의 완결성을 위해 소거되거나 크게 조명하지 않았던 인물은 실상 폐허가 된 도시의 주인공입니다. 이제 폐허 풍경의 새로운 층위가 발견됩니다. 진공의 공간에 서사가 생겨납니다. 공업도시 디트로이트에 살던 어린이는 무사히 자랐을까요? 외환위기로 공사가 중단된 채 근 30년 가까이 골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대천 아파트가 제대로 완공이 되었다면 누가 와서 살고 있을까요? 재개발 공사에 투입된 인부의 하루는 어땠을까요?
작가는 이 과정을 재발견(revisiting)이라고 표현합니다. 풍경은 이제 물리적 흔적의 차원에서 한 걸음 나아가 복합적 관계망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환영의 세계가 아니라 실체적 현실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보면 재발견은 환영으로 이루어진 심미적 물질의 세계에서 보다 확고한 물질의 세계로 작품을 이끌어 내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도시가 개발과 쇠락을 반복하며 지속되듯 작가의 작업도 그의 삶 안에서 어떤 추동에 의해 변화하고 지속됩니다. 도시에 속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치열하듯, 작업의 세계 또한 치열한 삶의 현장에 더 가깝습니다. 관찰자에서 발견자가 된 작가는 사람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폐허를 응시하면 그 끝에 비로소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전혀 모르는 낯선 이이기도, 이웃의 누군가이기도, 그리고 작가 자신이기도 합니다. 비로소 폐허 위로 두 다리가 단단히 서게 되는 순간입니다.
전시의 제목 ‘Continuous Cities’는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의 소챕터 제목 ‘지속되는 도시’에서 따왔습니다. 환상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 내용을 단번에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칼비노는 책을 통해 도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고 있습니다. 도시는 꿈과 희망에 가득 찬 아름다운 곳이기도, 빈곤과 쓰레기, 폐허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도시가 자아내는 환영 너머의 세계를 오롯이 바라보기 위해 나의 관점을 찾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 완결된 작업에 대한 열망은 결코 끊이지 않고 지속될 것입니다. 유토피아는 바로 이곳,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찾아내는 것입니다. 작가가 다시 들여다본 폐허 풍경 속 사람들을 마주하며, 보이지 않는 실체를 응시하고, 현실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그의 긴 작업 여정을 함께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한승주, 도암갤러리 큐레이터)
전시제목이문주: 지속되는 도시 Continuous Cities
전시기간2024.12.07(토) - 2024.12.28(토)
참여작가
이문주
초대일시2024년 12월 7일 토요일 17:00pm
관람시간10:00am - 19:00pm
휴관일일, 월, 공휴일(크리스마스)
Sunday, Monday, Holidays(Christmas)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Admission Free
장소이길이구 갤러리 2gil29 Gallery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58길 35 (신사동) 이길이구 빌딩 1층과 지하1층)
기획이문주, 이길이구 갤러리
주최이문주
주관이문주
후원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2024년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연락처02-6203-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