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원리
최서원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인간으로 살아가며 감정의 영역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이는 없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감정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스스로가 느끼는 바로부터 비롯되지만 주체가 자기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물리적으로 움켜쥐거나 풀어내며 이성의 범주에서 조종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밀려오는 감정들을 오롯이 표출하지 못한 채 때에 따라 적합한 방식으로 통제하지만 미세하게 변화하는 심정을 본능적으로 자각할 수 있다. 최민지 작가는 수많은 감정 중 인간이 사랑을 느끼는 심리에 주목하고 이로부터 퍼져 나가는 생각의 물결에 탑승하여 인류가 사랑을 지향하게 된 배경 및 전후 상황의 맥락을 조명한다. 결국 사람은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같은 종자와 공존하기 위해 진화하면서 모든 것을 혼자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거대한 울타리 속에서 무리 안팎을 강한 소속감에 안주하여 소요하기를 원한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인간이 의지하려 하는 감정적 무의식을 기반으로 작업을 개시하며 사랑에 대해 사생한 철학적 소양으로 각각의 조형성을 드러낸 평면과 입체의 분야를 망라한 예술을 창작한다.
귀속으로 인한 안정감과 상호 간의 단결에서 오는 연대감은 사람으로 하여금 소외되지 않으려 하는 내적 욕구를 일으킨다. 인간이 시대를 주름잡고 문명의 중심에 자리한다 하나 한편으로는 늘 심경의 불안함을 호소하며 불완전한 감정의 여백을 메우려 한다. 부족한 감정에서 오는 결핍은 모순되게도 스스로 자립하여 의식주를 충족하던 이전과 달리 인간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시대를 구조화하면서 만들어 낸 인공적인 것들에 의해 소멸하는 자연과 멀어지면서부터 피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끝내 어딘가에 지탱하여 살아갈 만한 매개체를 찾는 상황에 이르렀다. 모든 이는 인류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쓰며 보이는 것만으로 속단하기 어려운 인간을 대상으로 모자람 없는 완벽한 안(案)을 제시하려 한다. 육안으로 분명한 확인이 가능한 사물은 도출되는 결과 또한 자명하기에 이를 뒤로 하고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 모난 부분이 없이 일관적으로 같은 형태로 존재하고자 한다. 최민지 작가는 대외적 정의로 무언가를 아끼는 귀중함으로 알려진 사랑이 어쩌면 인간이 심리적인 고립을 경계하기 위해 느끼는 약점의 증명이라는 관점으로 전환하여 이를 작품을 통해 해석한다. 작가의 이번 신작 ‘AKOAOYOI’는 무해한 외양으로 실상은 가냘프고 여린 모습을 한 사람을 ‘양’에 비유하여 떼로 몰려다니는 다수의 가장자리에 남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심리적 현상을 양을 연상케 하는 덩어리 밑에 발이 달린 조각으로 진행한 작업이다. 거대한 발은 그리스·로마 시대 신발 밑 부분에 새겨져 있던 ‘나를 따르라’라는 구절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신을 신은 발이 자취를 남길 때마다 묵직한 무게를 받들며 무의식적으로 그 이를 따라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군중심리를 떠올리게 한다. 굵고 두터운 신에 비해 비교적 얇고 쇠약해 보이는 다리는 자신과 같은 인간의 뒤를 순종적으로 좇아가는 행위를 일컫는듯 하다.
필연적으로 서로가 연결된 인간은 본래부터 이어져 있는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에서 벗어나 본인의 사고로 기인한 결과와 현상으로 스스로를 구성하고 있다고 여긴다. 모두가 같은 것을 지향할 때 본인은 개중 무언가 다르다는 차이를 인식하려 하고 주변의 것들에서 사소하게 눈에 띄는 특수성을 간직하며 잠재적 욕구를 채우려 한다. 작가는 일체화를 바라며 무리에서 부여받은 소속감에 안심하면서도 근소한 간극을 욕망하는 우리의 감정을 작가 고유의 시각으로 비추어 원인을 부정해 본 적 없던 사랑의 배경과 서사를 입체적으로 노출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작품에서 인도하는 공감각을 상기하며 눈에 보이듯 훤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감정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세밀한 원리와 작용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작가 노트
한없이 불안한 인간은 다양한 허상의 것들에 귀기울인다.
그 허상은 불일치에 대한 공포에서 나온다. 자연과 결별한 순간부터 우리는 불완전하고 약한 존재가 되어 완전한 해답을 찾으 려 하고 분리되지 않으려는 강박 속에 남을 탐색하고 공부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물과 다르다. 온전히 만져보고 분해되는 사 물과 달리 타인은 영원히 나의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런 타인과의 합일의 필연성 속에서 우리는 작은 차이를 추구하는 애처로운 욕구의 양일 뿐이다. 그들과 같이 약하고 반복되는 작은 파장의 소리들을 내며 무리지어다닌다. 그 약하게 반복되는 아지랑이들은 완전한 합일이라 여겨지는 사랑의 머릿말이 되어 나타난다.
우리가 주목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닌 인간의 한계에서 비롯된 약함의 증거일 수 있다.
전시제목최민지: 무용한 밑그림을 그리는 우리
전시기간2024.08.21(수) - 2024.08.27(화)
참여작가
최민지
관람시간11:00am - 06: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37 제1전시관(B1))
연락처02-737-4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