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지갤러리는 35세 이하 젊은 작가에 주목하는 기획전 프로그램 ‘Perigee Unfold’의 2024년 전시로 김의선, 신디하, s.a.h(심유진, 한지형) 작가가 참여하는 《활동적인 풍경(Active Environments)》을 개최한다.
《활동적인 풍경》은 기후위기의 현실을 목도하며 근미래의 디스토피아와 그 너머의 새로운 풍경에 관한 상상을 토대로 구성되었다. 전시의 제목 ‘활동적인 풍경’은 애나 르웬하웁트 칭의 저서 『세계 끝의 버섯』에서 참조한 것으로, 더 이상 행위하는 인간을 위한 정지된 배경으로 보기 어려운 그 자체로 활성화된 환경을 일컫는다. 더 나아가, 본 전시에서 환경은 우리가 ‘자연’이라 칭해온 환경과 오늘날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근미래의 풍경을 그리는 이번 전시에서 자연과 인공물, 물질 세계와 온라인 세계의 풍경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은 채 서로 얽히며 연출된다.
신디하는 동식물을 비롯한 비인간 존재의 건축술에 관심을 두어왔으며, 더 나아가 스스로 건축하는 물질을 상상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석회동굴과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을 겹쳐 바라보며, 건물 지하에서 자라난 시멘트 종유석과 석순의 모습을 설치 미술로 선보인다. 이는 작가의 상상일 뿐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사례이기도 한데, 석회암에 든 탄산칼슘이 물에 녹았다가 굳는 과정에서 동굴이 만들어지듯이 누수가 계속되는 건물에서도 종유석과 석순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건물은 겉보기에 단단하게 고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인간의 의도 너머로 움직이는 물질이 되곤 한다. 물에 의해 녹고 부식되거나, 작은 달팽이에 의해 표면이 갉아먹힐 수도 있다. 신디하는 인간이 사라진 세계에 남겨진 콘크리트 건물이 다른 비인간 존재들과 끊임없이 마주치며, 탄산칼슘을 섭취하기 위해 모여든 달팽이의 군락지가 되어가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쓰임을 다하고 방치된 물질이 비인간 생명의 새로운 둥지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바라보게 된다.
김의선은 그물망을 통해 서로 다른 물질들을 마주치게 하고, 자신과 타인의 작업 사이를 연결하는 환경을 만든다. 그는 유기적인 재료 연구를 해오면서 예민하고 가변적인 재료를 주로 다뤄왔으며, 이번 작업에서는 묽은 흙이 철 섬유로 만들어진 망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서서히 건조되면서 조형을 형성한다. 흙은 그물망의 어떤 곳에서는 실타래처럼 가느다랗게, 다른 곳에서는 조금 더 두껍게 뭉쳐져 덩어리를 만들면서 유기체의 형태처럼 뻗어 나간다. 떠다니는 물질들은 얇은 구조물에 매달려 뭉쳐서 일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이러한 풍경을 마주하다 보면 미묘하지만 ‘늘어진 긴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미세하고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이 장면에는 우리의 시각으로 충분히 감각할 수 없는 활동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미래의 세계를 감각하는 또 다른 방식은 온라인을 매개하는 것이다. 이미지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중첩되는 지점을 주의깊게 사유해 온 s.a.h(심유진, 한지형)는 온라인 게임을 매개로 이미지 과부하 시대의 폐허를 상상한다. 그들은 ‘유저에게 주어진 너무 높은 자유도로 인해 통제 불능 상태에 도달한 오픈 월드(open world) 게임’을 제시하는데, 이를 인간에 의해 활발하게 개발되면서 점점 우리에게 불리한 환경이 되어가는 지구와 은유적으로 겹쳐 볼 수도 있다. 이 게임은 다수의 사용자들이 게임 속 세계에 자유로운 변형을 가하자 모든 키(key)가 동시에 활성화되고, 결국 어떤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를테면 공격과 방어의 기술이 함께 발현되는 오류를 보여주는 조형물은 지나치게 활성화된 상태가 도리어 정지 상태에 가까워지는 역설을 나타낸다.
이번 전시의 작업들이 공유하고 있는 키워드는 ‘세계 (만들기)’이다. 현 세계의 면면을 감각하고 근미래를 상상하며, 폐허가 되어가는 풍경을 ‘저 너머’가 아닌 현실로 직시하고 그 폐허에서 나타나게 될 새로운 움직임을 가늠해보고자 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우리가 함께 해온 것은 온전히 홀로 존재하는 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환경의 일부를 이루는 구성원이자 타자와 얽힌 존재로서 나를 감각하는 연습이었다. 이러한 연습은 오늘날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자 함께할 미래를 조금 더 연장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작가 소개
김의선(b. 1997)은 주변 환경에서 그러모은 소재를 통해 설치를 기반으로 작업한다. 식물, 바람, 물과 같은 유기적인 방법으로 물질적 경험을 재현하며 관객의 지각이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도록 이끈다. 개인전 《Near, yet》(Art center Ongoing, 도쿄, 2024)을 개최했으며, 단체전 《사랑하는 마음으로》(Gallery TOWED, 도쿄, 2024), 《물은 모든 것을 매개한다》(갤러리밈, 서울, 2023), 《미지의 순간들》(술술갤러리, 서울, 2023), 《Response-Ability》(SomoS, 베를린, 2023) 등에 참여했다. 교육 프로그램 <작가와 함께하는 예술 놀이터: 모두 잇기, 그림자 잇기>(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4), <미술관의 행동대장: 관계 잇기>(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3) 등을 진행했다.
신디하(b. 1993)는 물질에 깃든 생명력과 에너지에 주목하고 이를 생동하는 존재로서 공간에 연출하며, 가상의 풍경을 비인간 존재를 중점으로 제시한다. 개인전 《미래식물원 2172》(공간 파도, 서울, 2022)을 개최했으며, 이인전 《플랜-t: 둥지 엿보기》(스페이스 미라주, 서울, 2024), 《Dear Late Human, From Early Bird》(중간지점 하나, 서울, 2023)와 단체전 《SWIPE》(띠오 갤러리, 서울, 2023), 《회상의 역방향》(오뉴월 이주헌, 서울, 2022), 《기이한 감각국》(온수공간, 서울, 2022) 등에 참여했다.
s.a.h는 심유진(b. 1997), 한지형(b. 1995)으로 구성된 시각예술 콜렉티브이다. 디지털이 확장됨에 따라 변화한 예술, 나아가 사회의 형태에 주목하며 이로 인해 새롭게 나타난 (혹은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현상들을 탐구한다. 개인전으로 《Hurdling》(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23), 《Black Sheep Wall》(공간 파도, 서울, 2022), 《Shot and Paste》(소원 갤러리, 서울, 2022)이 있으며, 단체전 《Dream Chasers》(누크 갤러리, 서울, 2024), 《Hackerspace》(TINC, 서울, 2023), 《가시선 너머》(상업화랑, 서울, 2023) 등에 참여했다.
전시제목활동적인 풍경(Active Environments)
전시기간2024.08.09(금) - 2024.09.07(토)
참여작가
김의선, 신디하, s a h(심유진_한지형)
관람시간10:30am - 06:00pm
토요일 Break time 12:00-13:00
휴관일일요일,공휴일 휴관
장르설치
관람료무료
장소페리지갤러리 PERIGEE GALLERY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18 (서초동, (주) KH바텍 사옥) B1)
연락처070-4676-7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