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상자들
오광수(미술평론가)
“나는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종이상자를 보고 항상 사각형이란
박스 속에서 생활하고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박스를 모티브로 선택한 계기를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박스는 너무 흔하게 대해지는 구조물이기에 쉽게 지나치게 된다. 그 기능이 단순한 포장이란 데서 더욱 무관심해지는 존재다. 내용물을 담고 난 뒤에는 대부분 쓸모없는 존재 취급을 받는다. 이 하잘것없는 존재를 작품의 소재로 삼으려는 생각을 가진 이는 아마도 김봉태가 처음이지 않나 생각된다. 엉뚱하고도 무모한 선택이라고 말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쉽게 버릴 수 없는 어떤 절실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갇혀진 공간과 사고에서 해방된 자유롭고 긍정적인 삶을 나누고 싶다.”는 말에서는 선택의 무게가 실리고 있다. 버려진 박스가 실은 우리들의 삶의 억제, 규격화된 사고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열린 상자들은 현대인들이여 닫힌 공간에서 벗어나 나처럼 자유를 구가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으냐고, 춤추는 나의 모습에서 자유의 황홀한 경지가 보이지 않는가”고 우리를 향해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버려진 박스의 선택은 현대인의 갇힌 상황에서 열린 공간으로 이동을 암유하고 있다. 규격화된 박스가 열림(해체)으로써 박스는 스스로의 존재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상황을 맞게 된다. 버려진 것이 선택됨으로써 버려진 것이 아닌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가 된다. 상자라는 기능에서 해방됨으로써 비로소 자유를 획득한 것이 된다는 사실로서 말이다. 어떤 목적에서 만들어진 기물이 아니라 어떤 기능도 갖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로 태어난 것이 된다.
박스는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인의 생활공간에 차고 넘치는 존재로 군림하게 되었다. 대형 마트나 우체국에 배달할 물품을 담을 박스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집으로 배송해 오는 물건들도 한결같이 박스에 담긴 채이다. 과자 상자, 음료수 상자, 화장품 상자, 케익 상자, 약품 상자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것뿐이랴, 우리의 주거 공간, 아파트, 대형건축들이 상자형이고 보면 현대공간에 박스처럼 많은 존재도 따로 없을 것 같다. 기능주의의 만연이 온통 도시를 박스로 채우고 있는 형국을 만들고 있다. 박스가 없는 현대도시는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다.
김봉태의 작품 속에 박스가 모티브로 등장한 것이 200년대초쯤 되니까 벌써 20년을 상회하는 셈이다. 이에 앞선 작품들은 <창문> 시리즈에서 <비시원>, <그림자> 시리즈로 소급된다. 물론 이 앞선 시리즈에서 박스와 어떤 필연적인 관계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미국 시대 초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박스가 태어날 암시는 적지 않게 산재한다. 기하학적 패턴, 대담한 원색의 구현, 견고하면서도 간결한 구성요소와 그 속에 잠재된 생명에의 찬미는 근래로 오면서 더욱 고양된 인자로 작용하면서 박스라는 실존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의 전체적인 조형 편력을 살피다 보면 새삼 그의 존재가 대단히 특이한 위상을 점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게 한다. 우리의 현대미술의 지평에서 본다면 그의 존재는 단연 예외적이고 이채롭다. 우선 견고한 기하학적 구성의 작품과 대담한 원색(오방색)의 구사는 우리의 미술 속에선 쉽게 만날 수 없는 그 독자의 영역으로 치부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미국적인, 서구적인 세계에 함몰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의 오랜 뿌리 찾기의 탐구자였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된다. 그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예술가였다는 점에서다. 동양 정신에 바탕한 “한(韓)” 사상에 한동안 몰입한 그의 태도에서도 근원에 대한 탐색은 단순한 호기심에 머문 것이 아니었다. <비시원> 시리즈는 “한(韓)” 사상을 자신의 고유한 조형 논리로 풀려고 한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부단히 자신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가 다룬 매체는 타블로, 판화, 입체, 드로잉 등 미술 영역 전체에 걸친 것이다. 이는 어느 한 곳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열려진 조형사고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 체류기간에는 판화가 중심 매체로 지속되면서 타블로와 입체물, 드로잉을 곁들이는 편이었다. 판화가 중심매체로 오래 다루어졌다는 것은 그가 국내에서 작가로서 등단할 무렵부터 관심을 가졌던 영역이란 점에서 극히 자연스럽게 이어진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63년 파리청년작가 비엔날레 한국대표작가로 출품한 것이 판화였다는 점에서이며 미국에서의 본격적인 판화의 기술적 습득에 매료된 것이었다. 당시 한국에서의 판화의 수준은 기술적인 면에서 후진적인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여기에다 판화가 지닌 일반적 인식이나 교류적인 측면에서의 편리함이 자연 이 영역에 집중한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귀국한 80년대 이후의 작업은 다시 타블로 중심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판화와 입체, 드로잉이 뒤따르는 편이다.
최근에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해체된 상자가 아닌 원상태의 상자들이 모아져 있는 상황이다. 마치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방안 가득히 쏟아부어 놓은 것을 상상케 한다. 상자 아상브라주(Assemblage)라고 할 이 집체의 작품군은 <축적>이란 명제로 통일된다. <춤추는 상자>가 개별 단위라면 <축적>은 집합의 단위이다. 그럼으로 해서 상자는 또 하나의 상황을 연출해 보인다. 흩어져 있던 사물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여들면서 물체끼리 독특한 관계항을 만드는 것이다. 전체를 향한 집합의 논리가 탄력적인 상황을 연출해 보이는 것이다. 그가 만드는 독특한 관계항은 단순한 상자의 그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 속으로 투사해 옴으로써 하나의 절실한 현전이 된다. 아름다운 꿈으로서
다시 색과 형태의 감각으로
심상용(서울대학교 교수)
“색은 그토록 풍부하건만 배색할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는 현대인이 쫓는 이상과 특히 현대교육에 잘못된 모든 것을 깨우쳐주는 아주 완벽한 비유다.”
-길버트 채스터턴, 『왜 세상이 잘못 돌아가나』,-
로스코도 뉴먼도 아닌
김봉태의 회화는 얼핏 색면추상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의 조형은 ‘인간의 원초적 존재성’에 관한 질문과 결부되어 있고, 그 질문은 신(神)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간다. 회화건 비회화건 그에게는 존재의 탐사이자 절대자를 향한 염원이다. 이 경성은 이 세계에서 일찍이 눈에 보이는 표층과 그렇지 않은 심층의 이중 구조를 간파했다. 표층은 ‘냉철한 합리 정신’의 표방으로 칼로 자르는 듯 명확한 형태고, 심층은 절대자에 대한 물음과 대화에 대한 존재 내적 열망이다.
절대자의 의미는 불분명하다. 일찍이 〈그림자〉나 〈비시원〉 연작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전지적 시점으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광원은 캔버스 외부에 있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초월적인 어떤 존재인가? 종교적 맥락과 결부된 것인가? ‘비밀스런 생기(生氣)’나 ‘정령(精靈)’ 같은 범신론적 의미거나 형이상학의 도상적 알레고리(allegory)일 수도 있다. 어떤 심오함(profound)이나 영감(inspiring)의 차원, 이 세계에 지칠 줄 모르는 동기와 활력을 공급하는 에너지와 결부되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김봉태로 평생 “어떤 조류에도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조형을 이루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 그것에 의해 이 세계는 ‘양식은 남았으되 정신은 표백되어 부재에 가까워진’ 추상미술의 유산들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 된다.
근자에 타계한 작가 김병기의 관점도 그러했다. “21세기에 현대미술 양식만 남고 정신이 없어졌다. ... 개념미술은 공허하다. 결국 남는 것은 똥통(변기)뿐이다. ... ” 그 자신 일평생 개념주의 미술에 정진했지만 결과는 그 허위성을 목격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하면서 다음의 울림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20세기에 길이라고 했던 것이 21세기에도 그대로 길일 것인가?” 이 낭창한 공명(共鳴)을 김봉태의 회화에서도 마주한다. 김봉태의 회화도 이성과 계몽의 철학 노선, 청맹과니 같은 자유주의, 개념주의의 질주에서 떨어져 나오는 몸부림의 연대기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회화는 무엇인가’같은 메마른 매체적 사유는 일찌감치 청산했다.
김봉태의 조형 세계는 빛, 비전, 희망, 미지의 세계를 포용한다. 임의성이나 우연, 계량되지 않은 과도함이나 결핍 같은 반미학적 표상들의 자리는 없다. 불안정한 자극, 과한 흥분상태, 격한 메시지나 방법적 변화무쌍함과는 정반대의 노선이다. 마크 로스코의 울렁거리는 것과는 크게 상이한 호흡이다. 색면은 섬세하게 기하학적으로 구획되고 구성되어 요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색의 수용으로 선명하지만 차갑지는 않은 적정량의 정서가 허용된다. 질서정연하면서도 체온이 느껴진다고 할까. 원색들 간의 감각적인 각축은 강렬함이나 뜨거움과는 다른 차원의 온기를 제공한다. 바넷 뉴먼의 색면추상처럼 작위적인 숭고미 같은 것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색의 감각
이 시대가 정신적으로 고갈되고, 환희와 열정이 증발하고, 두려움에 이끌리는 시대라는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실패를, 가정에선 고독을, 쇼핑센터에선 경제적 상실을 곱씹는다. 삶의 현장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을 경험한다. 예술은? 서울에서 열렸던 개인전(2009)의 작가간담회에서 터너상 수상작가(2001) 마틴 크리드(Martin Creed)가 기자의 질문에 답한다: “기자: "사람들이 토하는 걸 찍은 이유는?"/ 마틴 크리드 : 토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고통이 수반된다.” 덧없는 위트, 반짝이는 재치, 의미 박약의 아이디어들이 이어진다.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사례: 젊은 시절 다윈의 가슴을 채웠던 것은 신비로움과 경이감, 강한 애착, ‘벅차오르는’ 느낌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철학 노선, ‘실험과 증명’의 밖에서 만나거나 느끼는 능력을 통째로 앗아간 노선을 택하면서, ‘정신적인 색맹’이 되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이제 나는 아무리 놀라운 광경을 보더라도 이전과 같은 확신과 느낌에 사로잡히지 못한다. 색맹이 되었다고 해야 맞으리라.” 젊은 시절 다윈은 시와 그림과 음악을 즐겼지만, 그 이후로는 여러 해 동안 시 한 편도 감상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내 마음은 사실들의 거대한 집합체로부터 일반적인 법칙만을 갈아내는 그런 기계가 되고 말았다.” 자연주의 철학, 과학과 지성의 한계다.
한국의 단색화 담론이 어떠했는가 생각해 보라. 색의 부재는 사유의 고졸한 차원, 격있는 취미로 간주되어 적극적으로 기념되었다. 아마도 ‘서구 모더니즘이 벌여놓은 파티의 막판에 끼어든’ 거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안간힘의 일환으로, 노장(老莊)의 현대적 현현 운운에 더해 칸트적 ‘무관심성’까지 되는대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뭐랄까 이 ‘가짜스러운 깍듯함’을 곁들인 사조의 귀결은 늘 ‘색의 부재 = ‘탈속(脫俗)의 미학’으로 떨어지곤 했다. 견디기 어려울만큼 단선적 시각이다. ‘색은 곧 속물적 감정’이라는 이 등식, 어물쩡 제도화되고 이내 확증편향이 되어버린 이 등식은 자신의 독보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주변에 장벽을 세우는 옹색한 방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봉태의 조형론은 단색화 같은 관념주의 노선에 편승할 수 없다. 그의 세대가 색을 지적 퇴행이나 미학적 열등으로 폄훼할 때, 김봉태는 색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공통된 특성, 태초의 호흡을 감지(感知)했다. 문명의 때가 타지 않은 것들,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평야와 눈부신 햇빛, 마야 문명, 아메리칸 인디언의 원초성으로의 초대를 보았다. 무한한 열림, 무한대의 가능성으로서의 색! 이 점에서 프리모 레비(Primo Michele Levi)가 정확하다. 이성의 시대는 색을 상실한 시대다. 그리고 색을 상실한 시대는 쉽게 전체주의로 기울어진다. 회색은 영적 회색으로 이어진다. 현대세계는 희미하고 덧없으며 “악마성도 카리스마도 결여된 회색 인간들"이 대거 등장하는 끔찍한 무대다. 회색 인간들이 저지르는 사건들은 위선적이고, 지긋지긋하며 대부분 은밀한 뒷거래를 통해 왕성하게 무한히 이어진다. 그 결과 현실과 미래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을 갖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감각의 의미
김봉태는 그의 시대에는 드물게, 색 감각, 정확히 하자면 색과 형태를 조율하는 감각을 치향해 왔다. 그의 기하학적인 조율마저 대단히 감각적이다. 직선적 형태는 정확하게 색의 울림을 제한하지 않을 만큼만 엄격하다. 오스트리아의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가 정확하게 알았듯, 직선은 자칫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조형적 의미에서 직선은 자를 댄 것처럼, 그러니까 외부의 규칙을 들여와 규정하고 재단하는 것의 상징이다. 이 외부의 재단을 순화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김봉태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기제가 바로 색의 감각적인 구현이다. 다행히 형태의 망보다 색의 망이 훨씬 더 촘촘하기에, 기하학적 선과 구성이 외부에서 끌어들인 독소가 치유되고, 이 세계의 적정한 체온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이 세계의 색 감각은 밝고 쾌활하며 긍정적이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존중이 배어 있다. “그림이라도 보고 사람들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의 태도 지평 위에서 심화되어 온 감각이다.
철학적 관념에 포획되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태도 또한 이 감각의 연마에 기여했다. 이 맥락에서 (한때 그의 생각을 이끌었던) ‘한’ 사상을 벗어나려 애썼던 시기인 1990년대 후반에 색채의 측면에서 큰 조형적 도약을 보여준 <창문 연작> 시리즈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 즈음 한층 강렬하고 쾌활하며 고양된 시원시원한 원색의 색면이, 뒤섞이거나 모호한 구석이라곤 없는 형태와 채색의 단순하고 강렬한 대비가 이 세계의 조형적 근간으로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조형의 수단, 과정과 노동을 배제하고 미학적 원칙에만 기대면서, 기이한 지적 정신분열이 초래되었다. 격정의 결핍, 무활력성..., 콘라드 하이어스(Conrad Hyers)는 탄식한다. “섬광을 발하는 온갖 사물들과 관념들과 사건들이 무수한 방향에서 온갖 형태와 크기로 분출하는 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와우’라고 외친 것이 과연 언제인가?” 인간의 특징이자 창조성의 결정적인 요소인 ‘유희의 정신’을 상실한 시대, 장 프랑수아 리요타르에 의하면 결국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고 ‘폐쇄성’과 이데올로기성‘으로 경사되고 만 근대 지식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근대주의 회화의 연대기도 2차원 평면성의 강령에 발목이 잡히고, 이성과 감각의 편향적 서열화에 매몰되면서 전례 없는 빈곤으로 내려앉고 말았다. 그러한 시대의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김봉태는 몸부림을 쳤다. 모더니즘 예술론이 폐기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붙잡아야 했다.
감각(感覺)의 복권: 김봉태의 조형에서 감각의 복원과 복권이 중요하게 논해져야 한다. 감각은 ‘물질은 악하고 영(靈)은 선하다’는 오래된 영지의 지혜인 영지주의(gnosticism)로부터 흘러들어온 유산을 신뢰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선지자가 꾸었던 ‘거짓된 꿈’, 비물질과 물질의 위계 서열화, 이를테면 정신노동이 육체노동보다 더 고귀하다는 거짓에 더는 속지 말 것, 회화, 조각 운운하는 장르 구분에 얽매이지 말 것, 알루미늄 틀이건 반투명 플렉시글라스(plexiglass)건 그 무엇이건 재료나 기법의 선택에 제한을 가하지 말 것, 명제적 개념적 조건이 아니라, 두뇌로부터 손가락까지 살아있는 감각에서 오도록 할 것.
감각은 이성의 철학이 끊임없이 조장해온 편견과 달리 외부의 물리적 자극을 감지할 뿐인 제한적인 의식행위가 아니다. 느낌이나 감정 같은 신체적인 영역으로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미술에서 소통은 비인지적, 신체적, 물리적 정서의 수준에서 일어나고 객관적으로 전달, 공유될 수 있다. 명제나 개념에 포섭되지 않으면서, 일련의 감각 여건이 고양될 때 지배적이고 압도적인 경험으로서 ‘정서적 공감’(synphathy)이 일어난다. 표현 주체인 예술가의 감각적 자질이 이 정서적 공감의 강도에 깊이 관여한다. 그 자질은 어느 정도는 가지고 태어나지만, 학습과 태도를 통해 연마되고 고양되며. 심화할 수 있고 진화한다.
감각(적 자질)은 조형의 질과 수준을 측정하고 판단하는, 미술작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저울이다. 대상이건 추상이건 표현을 빈혈과 빈곤으로 내모는 요인들, 과장이나 결핍, 덧없는 엄숙함이나 장식성을 걸러내고 정화하는 계량으로, 수학적 정확성을 능가하는 정교함이 요구된다. 과도한 개념주의의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예술이 명제와 개념의 시소게임을, 고장난 축음기처럼 반복해오는 동안 상실되다시피한 자산이다. 색 감각이 특히 더 잃어버린 세계다. 오늘날 대학에서조차 색채를 가르치지 않는다. 철학과 미학을 가르치느라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적 상황에 대하여는 화이트 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감각론이 적절한 질문을 제기한다. “...예술작품은 의식에 의해 내쳐진 것들, 보이지 않은 것(the unseen)으로부터 오는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의식의 정확성이 실패하는 경계, 바로 그 경계의 배후에서 오는 느낌의 깊이를 풀어놓는다.”
버려진 것들을 연민하기
세상은 시시하고 시큰둥하고 하고 권태로운 곳이라는 인식, 생명의 경이가 빠져버린 인식에서 차라리 관념이나 이념의 어두침침한 동굴로 기어들어가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자폐나 정신분열을 앓는 빈혈의 미학이 그 스팩트럼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2005년 즈음 시작된 <펼쳐진 상자>, 뒤이어지는 〈춤추는 상자〉, 〈날으는 상자〉, 〈축적〉 연작을 잉태한 공통의 자궁은 일상(日常)의 긍정과 연민이다. 어느 날 골목 어귀에서 눈에 들어온 버려진 상자들에서 받은 영감, 그럼에도 살만한 것으로서의 일상, 그럼에도 더 잘 살아내야 하는 일상이다. 버려진 것에 대한 연민은 돌연히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김봉태에 있어 그것은 절대자에 대한 사유의 지속이요 연장이다. 버려진 것들, 가장 하찮은 것들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은 중력에 이끌리는 세속화된 욕망으로부터가 아니라 저 먼 곳, 절대자로부터 오는 마음이다. 가장 위대한 것과 가장 하찮은 것은 서로 뒤섞여 있다. 가장 일상적인 순간과 영원의 시간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양자는 서로를 위해,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서로 뒤바뀌기도 한다. 정화된 감정이 이입되면서 사물은 되살아나고, 다시 춤추고 날기 시작한다. 정말 제목처럼 된다. 예술의 가능성은 생각과 감각, 존재와 세계, 영혼과 신체의 지속적인 긴장 관계에서, 분리가 아니라 분리된 것의 통합하는 데서 확보된다.
〈춤추는 상자〉의 기원이 용도를 다해 버려진 상자들이었다면, 〈축적〉의 기원은 배달되거나 구입된 상자, 약봉지 같은 것들이다. 〈축적〉 연작에는 배달된 상자, 봉지, 구매한 제품의 출처를 밝히는 상표나 기호 등의 텍스트도 동반된다. 그것들은 이 세계가 더 큰 세계와 단절되고 유리된 고립무원의 것이 아님에 대한 증명이다. 그것들은 대문자로 표기되는 세계(The World)에서 유입된 것이다. 세계의 상징물로서 기호나 텍스트를 유입하는 이러한 접근은 피카소가 최초로 시도했던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의 미학과 일맥상통한다. 피카소는 전위주의자로서 자신의 회화형식이 세계와 동떨어진 것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 현실을 더욱 보강하는 기제로서 신문지, 악보, 상표, 벽지를 캔버스에 풀로 붙였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과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의 측면에서 김봉태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이미 가난했던 전후 시대부터 그는 양철지붕, 마분지 조각으로 누덕누덕 이은 판잣집에서 “가난과 무기력함, 전후의 허탈감”의 도상학을 포착하곤 했다.
김봉태는 한때 의지적으로 뉴스가 전하는 세계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TV나 신문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하지만 <춤추는 상자>를 시작할 즈음 생각이 바뀌었다. “내 틀에서만 갇혀 그리다 보니 재미가 없어졌어요. ... 이제는 매일은 아니지만 신문과 방송을 챙겨봐요.” 오만한 개인, 운명 결정권을 손에 쥔 고립된 주체를 넘어 자신을 개방하고, 세계와 관계 맺고, 그 배후의 절대(자)에로 한 발 내딛는 것이 이 세계가 걸어 온 자취다.
원자화된 개인, 사적 영역과 경쟁적인 공동체 외의 모든 것을 내다 버린 개별성이 오늘날 문명해체의 요인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지식은 전인격적인 참여 행위다. 개인 성향, 현실, 사회적 조건, 신체 조건까지 결부되는 전면적인 소통행위다. 지식에서 인격적 요인과 가치를 제외하면 전체주의의 덫에 걸리는 일만 남는다. (칼 폴라니.Karl Polanyi) 전체주의는 약하고 흔들리는 주체가 그 강한 규범에 의존하는, 즉 규범이 우상이 되는 현상이다. 예술은 우상을 깨는 일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개념이나 명제적 파악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전시제목김봉태 회고전: 축적(Accumulation)
전시기간2024.05.17(금) - 2024.06.16(일)
참여작가
김봉태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30여점, 조각 5점
관람료.
장소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28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1, 2, 3관)
연락처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