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타이틀 매치 《이동기 vs. 강상우》
권혜인 학예연구사
2023 타이틀 매치는 대중매체 이미지를 차용하되 ‘차용한 것을 차용’하거나 ‘하찮고 연약한 뒷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우리를 둘러싼 스펙터클을 재구성하는 이동기, 강상우 작가를 초청한다. 작년 조각에 이어 회화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 리얼리즘과 추상이라는 큰 흐름 사이에서 미술사를 자유롭게 참조하고, 진지한 실험과 위트있는 태도로 대중매체에서 발생한 조형과 무의식 그리고 사회적 현상을 탐구해 온 한국적 팝을 다시 정의해 볼 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대 미술의 화두 중 하나일 대중매체 이미지 실험을 초기부터 지속해 온 이동기 작가와 그 실험의 반대쪽을 비추는 강상우 작가의 작품을 되짚어 보고, 두 작가의 신작을 통해 경계의 확장과 돌파를 시도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두 작가가 다루어 온 이미지나 소재에 집중하기보다 각자의 세계를 떠받치는 매체적 논리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우선 두 작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요약하면, 이들은 사회적 무의식과 시각성에 대한 관심, 선형적 발전 논리에 대한 회의, 기이한(uncanny) 조형에 대한 감각적 촉수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선명한 차이도 존재한다. 이동기 작가의 작업은 텔레토비 꽃동산을 연상시키는 아주 매끈한 수공의 캔버스 표면을 보여준다. 이동기 작가는 캔버스 표면 뒤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단번에 작품의 의미나 작가의 의도, 존재를 포착할 수 없도록 작업한다. 이에 비해 강상우 작가의 작품은 마치 딩동댕 유치원의 거친 세트나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를 연상시킨다. 강상우 작가는 화려한 앞면과는 다른 세트 뒷면을 자꾸 노출시키고, 작가 머릿속 이미지 기억 창고에서 생생했던 이미지를 건져 올리자 눈 앞에서 풍화되어버렸음을 보여준다.
이런 공통점과 차이점을 공간으로 가시화하며, 두 작가의 작업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재구성하였다. 우선 이동기 작가는 후기구조주의와 초현실주의 같은 언어기반의 사고 체계 위에서 팝아트의 조형 어법을 활용하여 회화 매체로 미술의 위계와 경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또한 작가는 작품 자체의 의미나 작품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불가해지고 현전의 형이상학이 의미가 없어졌음을 전제로, 그 불확실성 자체를 주제로 삼거나 이런 불가능 속에서 어떤 작업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작가에게 후기구조주의와 초현실주의는 고정된 의미를 탈피하고, 작가를 지우며,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낼 수 있는 틀이다. 그는 이 언어를 기반으로 한 철학들을 회화의 논리로 조형화하고자 시도한다. 그 조형화의 방법으로 작가는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을 병치시켜 그것들 사이의 구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거나, 팝아트를 포함한 여러 다른 작가들의 방법론을 차용하여 작가의 존재를 숨기거나, 관객의 배경에 따라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을 제시하여 의미를 해체한다. 이 방법론은 다시 대중 매체적 특성에 의해 분화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동기 작가의 일방향 매체 시기에 대해서 ‘전쟁, 폭력, 자본 vs. 로큰롤, 히피의 자유 평화’라는 대립되는 사회적 무의식의 공존을 핵심 개념으로 잡았다. 디지털 다매체 시기의 작품에 대해서는 조형 실험에 주목하였다. 혼성모방과 후기구조주의가 디지털 조형을 참조하여 신체 감각적으로 재구성된 ‘분열’, 개념적으로 스크린 같은 캔버스 위에 재구성된 ‘절충주의’, 후기구조주의 이후 사물화된 신체를 예견한 아토마우스들을 소개한다. 신작 중 하나로 작가의 이론적 틀의 근간인 언어를 기반으로 작동하면서도 인간이 아닌 객체라 할 두 개의 A.I.를 활용해 키워드들로 생성된 ‘사물화된 가짜 아토마우스’에 대한 작가의 화답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미술관 밖에서 사람들과 만난 공공미술, 상업 콜라보, 수배자 전단 작품은 비관객과의 해프닝을 발생시켰는데, 이를 다시 제작해 회화가 대중매체로 전환되었을 때 어떻게 그 경계와 위계가 드러났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강상우 작가는 대중매체 이미지가 상징하는 강력한 사회적 욕망이나 압력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작가로서 작품 세계를 펼칠 것인지 탐구한다. 그 방법으로 작가는 작가 개인의 추억이나 개인이 마주했던 사회적 이미지 중 익숙하면서 낯선, 언캐니한 이미지를 포착한다. 균질하게 흘러가는 대중매체 속에서 이 이미지들이 도드라지는 이유는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모델의 이면을 언뜻 드러내었기 때문이거나 온라인에서 고화질로 복제되고 어디선가 계속 상영되고 있는, 방구석에서 꾸는 돌아가고 싶은 날의 백일몽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시는 기본적으로 작가가 지나온 유년기부터 현재까지를 하나의 층위로, 그 안에서 개인과 사회의 대립을 한 쌍으로, 또 포착된 이미지를 조형화하는 방법을 다른 하나의 층위로 구성하였다. 특히 조형화의 의미를 살펴보면, 첫째, 작가는 3차원(실제)에서 2차원(이미지)로 다시 2차원(대중매체)로 변환된 이미지를 3차원(작품)으로 구현하면서 가상과 현실, 평면과 입체 사이에서 ‘리얼함’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묻는다. 두 번째로는 사회적 역할이나 기능, 유능함에 대한 압력이 이미지의 조형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음을 드러내며, 수공이나 하찮음, 전설적 만화가들의 시그니처가 사회적 모델이나 클리셰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기존의 작품 세계에 더해 신작은 여러 세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다중우주처럼, 또는 ‘과거의 미래가 현재’이듯 여러 시간과 매체의 성격을 중첩해 압축하는 방식으로 시간성을 교란해 돌아갈 수 없고 선형적인 시간에서 탈락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작은 입체에서 공간으로 규모를 확장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각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옛 대중매체 이미지나 회화 같은, 신기술과 거리가 먼 매체는 레트로하거나 올드한 것인가? 한국의 팝아트는 뻔하고 상업적으로만 보이는가? 개인은 하찮고 우리를 둘러싼 대중매체 이미지는 저급한 것인가?
두 작가는 이에 답한다.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해 옛것을 진부하게 만드는 소비 사회에서, 언제나 청춘인 로큰롤처럼, 머리가 꼬리를 먹는 순환의 뱀처럼, 동시에 존재하는 다중우주처럼, 이미지와 매체는 언제나 새로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이 그려내는 팝아트는 유럽과 미국의 팝아트가 보여준 실험들(이미지 매체의 변환, 노스탤지어, 새로운 원본을 만들어내는 수공성 그리고 폭력, 죽음 등 사회적 사건에 대한 관심)과 공명하고 한편으로는 매체성, 작가성, 가상성에 대한 새로운 면모들을 혼성해 짜넣으며 한국적 팝아트를 차별화한다.
그리고 두 작가는 개인, 시대, 미술사를 오가며 증식하는 이미지를 타고 이미지의 위계와 매체별 조형 언어, 참조, 시각적 리얼함에 대한 인식의 틀을 가로지른다. 이를 통해 선형적이고 내면화된 규준들을 깨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제목2023 타이틀 매치: 이동기 vs. 강상우
전시기간2023.11.23(목) - 2024.03.31(일)
참여작가
이동기, 강상우
관람시간화-금 10:00-20:00
토, 일, 공휴일 10:00-19:00 (3월-10월), 10:00-18:00 (11월-12월)
*문화가 있는 날 매주 마지막 주 수요일 22:00까지 연장
휴관일월요일, 1월 1일 휴관
장르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관람료무료
장소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THE SEOUL MUSEUM OF ART (서울 노원구 동일로 1238 (중계동,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1, 2층 및 프로젝트 갤러리 1,2)
주최서울시립미술관
연락처02-2124-5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