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웅미술관 광주청년작가전
<하이퍼이미지 시대의 미술>
오병희(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하정웅미술관 광주청년작가전은 예향 광주의 청년 미술을 통해 한국미술계에 있어 광주 미술의 성장과 현황,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마련한 전시이다. 21세기 문화는 대중의 정신계를 지배하며 이데올로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문화는 역사이자 정치적 행위가 되기도 한다. 좌우익 이념 갈등이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문화를 통해 경제적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정치적 무기로 사용한다. 이러한 시대에 광주시립미술관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닌 광주에서 현대미술을 하는 광주청년작가를 알리고 육성하는 공모전을 개최한다.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개최하는 광주청년작가전 《하이퍼이미지 시대의 미술》은 부단히 고민하는 우리 지역 청년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알리기 위한 순수 미술 문화 전시이다.
광주를 중심으로 한 남도는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 등 구상미술과 다양한 양식의 추상미술을 전개한 한국 모더니즘 미술 흐름에서 중요한 지역이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 광주비엔날레의 전개와 함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가 작품 활동을 선보였으며 그리고 미술을 통해 사회 변화를 꿈꾸는 민중미술이 전개된 지역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미디어 사회, 정보화 사회로 전개되면서 현대사회의 문화와 시각 환경은 각종 매체의 활용과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가 되었다. 뉴미디어 사회에서 살고 있는 광주청년작가는 이미지를 활용하여 과거에는 거짓이라고 여겨 왔던 것들을 작업 소재로 삼아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이번에 출품된 광주청년작가 작품은 후기구조주의에 근간을 둔 포스트모더니즘미술과 디지털이미지를 활용한 작품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상대성을 주장하고, 다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미술에 있어서는 기존의 보편적인 추상미술 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가 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광주비엔날레 등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광주에 소개되었으며 이후 미술의 주류가 된다. 이러한 흐름이 나타난 시대적 배경에는 컴퓨터, 통신 매체의 급속한 발달과 보급, 대중이 중심이 되는 대중문화에 의한 개인의 부각과 관련된다. 1980년대 정치적 민주화를 열망하는 민중미술이 주류를 이루었던 광주미술계는 1990년대 이후 시대변화에 맞춰 설치미술 등 포스트모더니즘미술로 이동한다. 당시 청년작가들은 개인이 강조되는 시대적 분위기 속 포스트모더니즘미술을 창작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광주청년작가들은 새롭게 전개된 가상이미지를 작품에 활용한다. 또한 전국 네트워크를 통한 작품 전시는 물론 광주 등 곳곳에서 펼쳐진 레지던시 활동이나 전시를 통해 작품세계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정웅미술관 청년작가전에 선정된 작가 10명(김수진, 남석우, 노은영, 박기태, 박아론, 위주리, 이세현, 이진상, 정덕용, 조유나)은 포스트모더니즘미술과 새롭게 전개되는 가상이미지를 활용한 작품을 창작한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들을 ‘하이퍼이미지, 텍스트’, ‘개념주의 전통’, ‘타자의 미술’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작품을 전시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작가들의 작업에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시각, 세상에 관한 생각과 철학 등 현대 청년작가들의 다양한 생각이 담겨 있으며 이를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나타냈다.
첫 번째 주제는 뉴미디어시대의 이미지와 텍스트 즉 이야기가 있는 작품이다. 21세기 동시대 문화는 미디어 사회, 후기산업사회, 정보화 사회이며 작가들은 전에 볼 수 없는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해 작품을 창작한다. 이러한 뉴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광주청년작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새롭게 나온 가상이미지이다. 청년작가들은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는 가상이미지를 활용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제공하는 작품을 창작한다. 남석우, 이진상, 조유나 작가는 가상이미지를 이용하여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작품을 제작한다. 두 번째 주제는 미술에 있어서 개념주의 전통을 따르는 작품이다. 모더니즘이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대성을 주장하고, 다원적인 성격을 지닌다. 광주 청년작가는 다양한 생각과 철학 등 개념주의 전통을 따르면서, 시각적 요소를 중요시한다. 이러한 작품은 개념과 시각을 동시에 추구하는 뉴미디어 세대의 감각을 만족한 작품이다. 개념주의 전통을 계승한 작가는 김수진, 노은영, 박기태, 박아론, 위주리 작가가 있다. 세 번째 주제는 여성, 피지배자, 제3세계 등 중심이 아닌 타자의 미술이다. 환경, 인권, 여성, 인종 문제 등 예술가들은 타자를 생각하고 이를 작품에 표현하였다. 이러한 타자에 관한 생각을 가진 작가는 이세현, 정덕용이다.
하정웅미술관 청년작가전에서 보듯이 광주청년 작가는 정보 미디어 사회에서 이미지를 활용하여 회화, 사진, 설치,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시각 작품을 제작한다. 이미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 청년작가들은 가상의 이미지를 활용해 시대에 관한 이야기, 철학, 삶 등을 나타낸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광주청년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광주에는 현대미술을 수용하여 독자적 작품세계를 형성한 청년작가들이 있으며, 다양한 미술 장르에서 예향 남도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김수진
작가에게 산과, 바위, 계곡 등의 자연은 만물이 상호 작용하는 조화와 평형의 상태이며 상호 작용하는 본질적 자연을 나타내는 텍스트이다. 작가는 자연과 교감을 통해 깨달은 색으로 세상의 관계에 대해 표현하였으며, 이는 생명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작품으로 나타난다. 자연과 생명은 진실, 본성, 정서, 신뢰 등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가치는 자연이란 본질적 세상이며, 포용, 공생, 화해임을 나타낸다. 이처럼 작가가 그린 자연은 오감으로 느낀 자연이 아닌 모든 구성요소가 상호 작용하는 본질적 세상이며 본질에서 나온 세상은 조화로운 세상이다.
남석우
작가의 상상 세계는 편안함과 익숙함을 불러일으키는 현실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의 작품은 그림책을 보는 듯한 친숙함으로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주며, 다양한 상상의 세계에 들어가게끔 한다.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는 인간의 실현되지 않은 욕망이 실재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새로운 이미지가 등장하는 시대라고 하였다. 작가의 상상 세계 속 생명과 문화는 현실에 기반을 둔 무의식 속에 잠재된 욕망의 이미지이다. 상상 속에서 파생된 세계는 현실과 닮았으며, 작품 속 가상 세계에서 인간처럼 행위를 하는 존재와 문화는 현실 속 인간의 행위 및 문화와 상호연결된다. 즉, 작품 속 가상 세계는 상상력(욕망)이 조성한 새로운 세계이자 작가의 생각과 무의식의 투영이다. 그림책과 같은 감수성과 색채, 재미있는 상상의 이미지가 연결된 텍스트가 있는 우리 꿈속에 존재하는 상상 속 세계의 가상현실이다.
노은영
일상의 경험과 기억에 기반한 무의식이 만든 세상은 새로움과 낯섦, 익숙함과 거리감, 가상과 현실 세계를 넘나든다. 자연의 신비함에 무의식과 욕망을 투영하여 현대인의 내적 고백,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등을 표현하였다. 작가는 경이로움과 환희를 잃은 시대에 대하여 사회에 관한 생각과 무의식을 통해 신화의 세상을 만들었다. 현실 속 자연과 일상의 이미지들이 작가의 감수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새로운 가상 세계가 펼쳐진다. 인물, 별, 나무, 숲 등 현실을 기반으로 한 가상 존재가 있는 꿈속의 세계, 상상 속 세계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만나는 가상 무대이다. 작가는 가상 무대에서 내적 관심, 인간이 사는 사회에 관한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을 은유적으로 나타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자신과 세상을 탐구하였다.
박기태
자신 모습을 감추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바라본 작가는 철제 조각으로 만든 이미지들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그렇지만 작가의 철 조각이 담금질을 통하여 금속의 성질과 형태가 안정감을 유지하듯이, 작가가 표현한 세상은 상호작용 속 조화를 이룬 공존과 상생의 사회이다. 물질과 에너지들은 자연법칙에 의해 본래의 공간에서 순환과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삶을 살다 죽음을 맞이한 인간의 육신은 물질과 에너지로 되돌아간다. 작가는 동물과 인간을 소재로 인간의 삶에 대해 제작한 실존주의 철 조각을 통해 인간의 실존은 원인과 결과의 메커니즘이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은 실존을 경험하지만 결국은 자연과 우주의 법칙을 따르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박아론
인간 중심의 현대 문명이 일으킨 일상용품을 사용한 피라미드 작품은 궁극적으로 인간은 지배자가 아닌 생태학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A glass bottle on pyramid >은 폐기된 유리병으로 만든 피라미드 설치미술로 조형적으로 아름답다. 폐유리로 만든 피라미드는 세상을 이루고 지배하는 피라미드를 상징한다. 피라미드는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지만 작가가 쌓아 올린 피라미드는 불안해 보인다. 작가는 피라미드를 통해 현실도 본질이 아닌 허위라는 사실을 나타냈다. 이러한 내용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작가의 피라미드 설치는 피라미드가 이데아인 본질도 아니고 그림자(현실)도 아닌 강화된 하이퍼(가짜)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피라미드의 본질적 모습은 현실(허상)과 본질적 세계(이데아)의 세계도 아닌 현실(허상)에서 본 거짓이다. 작가는 폐 유리병으로 쌓아 올린 피라미드를 통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문명의 거짓에 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보는 세상의 본질이 허상임을 나타냈다.
위주리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물질과 비물질, 이성과 감성,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상보적인 관계로 본다. 작가의 설치미술은 물질세계 법칙인 엔트로피 원리에 따른 생성과 성장, 소멸하는 세상과 미시세계의 원리인 양자역학에 존재하는 마음에 대한 작품이다. 인간의 뇌는 파동함수들의 중첩으로 인한 양자 현상으로 마음이 생성된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는 양자역학을 통해 마음과 몸이 가지고 있는 관계를 밝힐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기억에 대한 설치미술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기억의 물질적 이미지와 뇌 속 양자 법칙에 의한 마음에 새겨진 기억에 관한 작품이다. 마음에 새겨진 충격적인 기억의 이미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무질서도 증가)해 이미지는 사라져간다. 하지만 마음에 새겨진 기억은 소멸하지 않고 염장되어 생생한 기억으로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세현
사진은 진실성을 담아내며 작품 자체가 현실성을 가져 기록적인 성격을 지닌다.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항일운동,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노동운동 등 역사적 사건과 관련 있는 장소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해석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적 약자, 여성, 피지배자, 제3세계 등 약자의 권리를 지키고 소외 받은 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사상이다. 후기구조주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는 가짜 이미지가 진짜 이미지를 대체하는 사회이며 사람들은 새롭게 만들어진 가상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대라고 하였다.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특정 장소는 명칭과 사실성, 장소성을 통해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 관해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상징을 합성해 그 장소에서 일어난 일을 유추할 수 있게 하였다.
이진상
작가는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순수하고 즐거웠던 일상의 삶을 기반으로 이를 의인화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강아지, 고양이, 레고 등 작품의 소재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친숙한 반려동물 혹은 장난감이다. 작품에 나오는 반려동물은 친근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놀이 친구이며, 얼굴은 강아지 등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행위와 복장은 사람처럼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이 사람과 같이 행동하는 모습은 현대 미디어 사회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나타난다. 의인화된 동물의 행위는 재미와 상상 속의 세계에 들어가게 한다. 현대인과 반려동물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사랑과 슬픔을 나누는 등 일상의 감정과 감성을 교환한다. 반려동물에 인성을 부여하는 것은 놀이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반려동물의 의인화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나타냈다.
정덕용
<연민으로 짓누르기>는 거미가 살아가기 위해 모아놓은 거미줄에 붙어 죽은 벌레들을 보고 작가가 연민을 느껴 만든 비디오아트이다. 작가는 죽은 벌레들은 작은 함에 넣어 안식시켰다. 작가는 ‘우리는 어디에서 연민을 느끼는지, 혹은 우리의 연민의 형태는 어떠한지’에 대한 의문을 각기 다른 두 개의 화면 안의 시간이 정지되고, 재생되기를 반복하는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영상을 통해 관람객은 화면에 나타난 보이는 것 이상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연민의 감성을 느끼게 된다. <하찮은 의미가 있기에>는 공간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이해나 믿음이 바뀔 수 있다는 인식을 제시한다. 작가는 공간을 조성하고 그 안에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작가는 설치미술을 통해 후기구조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완벽한 의미는 없으며 의미는 ‘무엇이다’라는 정체성과 ‘무엇이 아니다’라는 차이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진 차연을 보여준다. 또한 사람의 믿음과 이해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작품을 통해 믿음과 사람에 대한 이해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특정 개인과 집단이 만든 내용으로 ‘사실’은 단지 ‘해석’일 뿐임을 관람자에게 제시한다.
조유나
작가의 자화상은 있는 그대로 사실적인 자화상이 아닌 꿈과 상상을 결합한 현대사회 속 자신의 자화상이다. 조각은 자신 모습을 딴 사실성에 기반을 두면서도 밝은 원색을 사용하여 환상적이면서 작가 내면의 다양한 감정과 꿈이 나타난다. 정교하면서 장식적인 효과가 나타난 작품에는 작가의 내적 고백이 반영되어 있으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작가의 꿈, 상상 등의 생각이 담긴 모습이다. 측면 인물상 안에 입체감 있게 조성된 문양과 패턴은 작가의 무의식과 꿈이 투영되어 있다. 현대사회에서 익숙하고 친숙한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작가의 생각과 정서와 연결된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자화상 조각을 통해 현대 이미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품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이퍼리얼리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전시제목하이퍼 이미지 시대의 미술
전시기간2023.11.18(토) - 2024.02.11(일)
참여작가
김수진, 남석우, 노은영, 박기태, 박아론, 위주리, 정덕용, 이진상, 이세현, 조유나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월요일,1월 22일 휴관
장르회화, 사진, 설치, 조각 등
관람료무료
장소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 GWANGJU MUSEUM OF ART (광주 서구 상무대로 1165 (농성동) )
연락처062-613-5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