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시간과 텍스트의 연동성
(Epos: a peristalsis of time and text)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며, 만물을 변화시킨다. 이 시간을 기록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기록을 위해 언어나 상징 같은 기호체계를 사용한다. 즉 시간의 변화를 기록하기 위하여 텍스트를 사용한다는 것도 그런 맥락 중에 하나이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체화된 기록은 시간에 대한 모든 정보를 꼼꼼히 그리고 거짓 없이 남기고 있지만, 텍스트는 다르다. 그러므로 시간을 기록하는 여러 장르들, 이를테면 역사, 일지, 일기 등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텍스트는 선택된 내용을 주관적 판단에 의해 기술된 것 일뿐이다. 기록된 시간, 즉 역사(歷史)가 그런 결함을 보충하려고 보다 구체적인 6하 원칙을 바탕으로 정비되어 있다면, 서사(敍事)는 함축된 내용 속에서 기록되지 않은 모든 것을 은유하거나 지시한다. 이것이 서사가 지닌 매력이다. 역사와 다른 것이 또 있다면, 서사는 시간을 분절하지 않고 노래하듯 이어간다는 점이다. 부단하고 항상적인 변화 중에 우리의 삶과 그 삶을 조절하는 운명이 기대어 있다. 이것을 기록하는 서사는 어쩌면 인간이 부여받은 가장 축복받은 재능이자 저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류승환의 그림은 여러 면에서 서사적이다. 이것은 그만이 서사적인 성격을 띤 작품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보여주는 내용에서가 아니라 그가 취한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90년 이후 삼성동에 작은 화실을 꾸려놓고 거기에 지금까지 ‘칩거’하면서 그가 취하는 모든 정보, 지식 그리고 체험을 기록해 가고 있다. 화실에는 작업대 외에도 작은 책상이 놓여 있다. 그 위에는 오래된 경전이나 역사나 철학적 내용을 담은 책들이 정연하게 펼쳐져 있다. 그의 책상은 마치 선승이나 수도사의 것을 연상시킬 만큼 지식의 제단이다. 그는 거기서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이란 세 항목을 좌표 삼아 앎의 세계로의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작은 공간은 지식과 체험으로 구성된 우주였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하고 읽은 것들은 또한 정리되거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서사의 지도로서 재현되며, 그는 그 지도를 두루마리 위에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류승환의 그리기는 철저하게 소묘(素描, drawing)이다. 그러므로 화면에 더해질 다양한 시각적 효과는 처음부터 지양된 셈이다. 소묘에 사용된 도구도 3mm 얇은 두께의 펜이다. 오로지 그것만으로 서사의 형상을 완성한다. 그러므로 그의 그리기는 기록하거나, 더 원리적으로 쓰는 것에 가까운 행태가 된다. 즉 화가라기보다는 사서(historiographer)로서 태도를 가진다. 그가 화면으로 두루마리도 그의 서사적 그리기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관건이다. 그림은 정해진 화면 속에 구도를 갖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써내려가는 것이 된다. 여기서 또 하나 설명해야 할 것이 파생한다. 두루마리에 담겨진 내용은 페이지로 체계화된 현대의 책 개념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또한 찾기도 수월하지 않다. 내용뿐만 아니라 글의 형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어 있는 탓이다. 다시 말해 분절되지 않은 채로 기록된 것이다. 작가 류승환이 채택한 이러한 방식의 그리기는 한 화면에 분리되어 나타난 특정한 내용이라는 오래된 미술사적 형식을 벗어난 것이 된다. 이것이 이해가 안 된다면,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우리는 이전에 장을 넘겨하면서 만화책을 보아야 했다. 이제 우리는 컴퓨터 화면 위에서 그 내용을 스크롤하면서 본다. 후자의 형식으로 보는 만화는 훨씬 더 시간의 지속성이나 연관성을 체감할 수 있다. 이것이 필자가 느끼는 작가의 서사적 형식이다.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도 상통한다. 그는 종이를 잘라 폭 30cm의 긴 두루마리를 준비한다. 이 준비만 꼬박 한나절이 걸린다고 작가는 소회한다. 긴 두루마리를 한쪽으로 펴 가며, 다른 한쪽으로는 말아가며 그린다. 또한 이 30cm의 폭에서도 그의 그리기는 단지 3분지 2정도이다. 즉 여분은 그가 그리는 작업의 시간이나 참조로 기입할 텍스트에 필요한 공간으로 남겨둔다. 하루에 그리는 양을 정확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체크하여 놓은 그의 두루마리 그림은 대개 완성 시간만을 알려주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시작과 끝 그리고 작업을 수행했던 그 기간까지도 명시해 준다. 더 나아가 매일 같은 양으로 작업을 수행하지 않았거나 쉬는 날이 있었다는 점도 솔직하게 드러내 주어서, 관객은 작가의 작업이 - 필자는 이것을 또한 서사의 내용 중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한다 - 그가 당시에 지녔던 열정이나 고민뿐만 아니라 그의 사생활까지 폭로해 줄 수 있는 단서로 보아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그리기는 그가 존재하는 근거라는 점이다. pingo ergo sum!
이제 내용을 살펴보자. 서사의 구성을 위한 전제가 마련된 다음에 그려지는 내용들은 작가의 말을 빌면, 주로 인생, 언어, 침묵, 신화, 미래세계 등이다. 간혹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표방하는 주제를 담을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떤 특정한 내용이라고 명확히 윤각 짓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류승환의 형상들은 그의 서사적 구조와 같이 분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형상들은 결합(혼합)되어 있기 일쑤이고,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는 경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그의 텍스트는 연동성(peristalsis)을 띤다. 유기체적인 변화양상이 그의 이미지가 갖는 특성이라도 할 수 있다. 뒤죽박죽으로 보이는 이 형상 덩어리 속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초 은유적이거나 메타 상징적이다. 그렇다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음어(陰語)는 아니다. 모르는 외국어를 들으면서도 감성적으로는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형상들은 사회화된 이미지의 문법을 의식하면 할수록 더욱 복잡해 보인다. 오히려 필자가 앞에 사용한 개념을 초극하는 순간, 즉 원초적인 바라보기나 그런 차원의 감수성을 회복하는 순간, 그림들은 명시적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한 서사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경지에 이를 관객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가 무엇을 말하든, 그것이 그리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서사는 역사처럼 정확한 기록으로 남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인지, 류승환의 상형문자는 암호체계처럼 일정한 법과 율에 의해 조성된 것이 아니라, 그의 예술적 감수성이 서사적인 사유와 결합하면서 자의적으로 형성한 것들처럼 여겨진다. 그 자의성은 한편으로는 예술적 자유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객에게 이미지 사유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도 할 수 있다. 형상의 구체적 지시를 벗어나 마음대로 자신만의 형상적 서사를 그려보라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두 아이가 불편 없이 서로 즐겁게 대화하는 것처럼 류승환의 작품과 관객은 바로 이러한 관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락 (미술사학자)
Kim, Jung Rak (Art-historian) 전시제목류승환: 그림, 꿈을 꾸다 Drawing to Dream
전시기간2010.08.18(수) - 2010.08.31(화)
참여작가
류승환
초대일시2010-08-18
관람시간9:00am~20:00pm 토요일 10:00am~03:00pm
휴관일없음 공휴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포스코미술관 POSCO ART MUSEUM (서울 강남구 대치4동 892번지 포스코센터 서관 2층)
연락처02-3457-1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