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실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방정아 작가는 지역, 일상, 이웃 주민들의 평범한 순간들을 통해 일상의 이면을 탐구하며, 이를 초현실적인 리얼리즘 회화로 그려낸다.
전시실을 들어서면 송전탑의 호위(?)를 받는 마을<월성>이 보이고, 그 너머로 바닷물 안팎에 군상, 파란 몸을 가진 좀비의 형체가 담긴 대형작품 <핵좀비들 속에서 살아남기>, <죽는 게 소원인 자들>이 걸려있다. 그와 마주하는 낮은 공간의 벽면에는 아름다운 색채와 평온한 장면의 <스스로 가두기>, <잠시 디오니소스>, <눈 가리고 입 막고> 신작들이 전시돼있다. 지구 환경을 훼손하며 현재에 충실한 인간의 모습, 좀비화 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시대를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요제프 크뤼천(Paul Jozef Crutzen)이 제안한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환경체계는 급격하게 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게 된)시대라고 작가는 말한다.
알고는 있지만 외면하게 되는 즐겁지 않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가의 시선에서 포착된 일상의 한 장면 안에 다양한 현실의 문제를 녹여내었다. 무거운 주제를 선과 색으로 경쾌하게 표현하고, 사실적인 내용을 추상적인 요소와 상상력을 가미하여 초현실적 리얼리즘 회화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작가가 일상에서 경험한 현실적이지 않은 순간들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고, 관객과 무겁지 않게 대화를 시작하기 위함이며 해피엔딩을 기대한다.
태양계 속에 속한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다운 모습으로 사는 게 소원인 작가는 예술가로서 우리의 삶, 일상 속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불안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느낀 것을 일기장에 기록하듯 그리기 수행을 한다. 작가 특유의 시각언어에 담긴 이야기(narrative)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환기시키고자 하며, 두 발을 딛고 있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를 바라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를 유도한다.
■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김영숙
전시 평론
“알고 있지만 잊고 싶은, 그러나 결코 잊으면 안 될”
방정아는 화가이다. 방정아는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의 화두인 매체의 다원성이나 융합, 이런 담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그리는 행위 자체만으로 현실에 대해 발언할 수 있고, 그 현실이 개선되기를 희망하는 리얼리즘 작가이다. 방정아가 발언하는 현실은 “알고 있지만” 어쩌면 “잊고 싶은” 그러니까 대부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우리의 일상과 함께 자라온 불안과 위기의 싹들이다. 방정아는 이것들을 리얼리스트답게 사실주의적 구상성(the figurative)과 서사성(the narrative)을 통해 하나둘 캔버스 위에 소환한다. 캔버스에 가시화된 불안과 위기의 싹들은 모두 작가의 삶을 둘러싼 “지금-여기”에서의 일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일들은 자연생태계의 파괴와 원전의 폐해 그리고 부산, 일상, 여성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자기만의 특유한 리얼리즘 형식미로 구현해 온 방정아는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르게 되는 영예를 얻는다.
이번 전시 《죽는 게 소원인 자들》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하나는 전지구적인 이슈인 원자력발전소의 폐해이다. 탄소를 줄이고 고효율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원전 옹호자들의 명분과 자본과 권력의 연합은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생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작품 <핵좀비들 속에서 살아남기> 중 부분(2022)과 <월성>(2016), <죽는 게 소원인 자들>(2023)은 이러한 폐해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다른 하나는 탈모던 이래 다원주의(다양성의 공존과 차이를 인정하는)라는 명분이 파생한 개인주의의 단면들, 즉 탈사회화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이는 사회적 존재이지만 탈사회적 존재가 되고 싶은 양가적인 개인의 욕망과 관련된다. 다시 말해 작가를 비롯한 현대인들의 정신·심리적 징후들을 시각화한 작품들이다. 작품 <눈 가리고 입 막고>(2023), <스스로 가두기>(2023), <잠시 디오니소스>(2023)는 답답한 현실의 출구를 찾는 개인의 양가적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다.
방정아가 언급하고 있는 “핵좀비” 이야기를 좀 더 들여다보자. 방정아는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들, 원전을 옹호하는 자들을 핵좀비에 비유한다. 즉 “죽는 게 소원인 자들”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의 피폭 사태가 던져준 교훈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과 힘에 대한 탐욕 때문에 원전을 옹호하는 핵좀비들이 우리와 함께 생존한다. <월성>(2016)은 방정아가 살고 있는 부산 동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경주시 월성이란 곳에 위치한 원전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전통가옥을 둘러싸고 있는 전봇대와 전선이 얽히고 설킨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죽는 게 소원인 자들>(2023)은 ‘핵연료봉’같은 것을 들고 있는 핵좀비가 다른 사람의 눈을 찌르고 있고, 이 찌르는 사람은 이미 왼편 아래쪽에 있는 사람에게 다리를 물리고 있는,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고 있다. 원전 옹호자이든 반대자이든 핵좀비 바이러스에 피폭되기만 하면 잡고 잡히는 먹이사슬 구조처럼 인류세를 피할 수 없는 공생공멸의 관계이다. 우리는 모두 핵좀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팽배로 탈사회화가 심화되는 21세기 디지털 기술시대에 몰개성적 집단성을 표상하는 좀비 콘텐츠가 증가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실제로 혼술, 혼밥, 혼자 살기, 데이트앱으로 혼자 연애를 하고, 혼자 스포츠를 관람하며, 플랫폼 일자리가 상용화되고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극장가와 넷플릭스에서도 인기 상승세를 누렸던 좀비 영화와 함께 등장한 좀비 게임, 이제는 미술작품(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등)에 이르기까지 좀비가 등장하는 것은 집단의 몰락, 지구상의 생물의 집단적 멸절 혹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예언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기후 위기, 바이러스 증식, 전쟁, 각종 재난 등 인류세의 징후들이 발생하는 현실은 “알고 있지만 잊고 싶은, 그러나 결코 잊으면 안 될” 끔찍한 사건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고, 이 현실을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상태로 살아가기 위해, “눈 가리고 입 막고”,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가야 할 때가 많다. 그래야만 정신·심리적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더러는 세상을 향해 소리 질러 보지만 꿈쩍하지 않은 철벽을 느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 자기 안에 단단한 담을, 작가는 쌓고 싶었을지도 모른다(<스스로 가두기>2023). 최근 작품에 등장한 텍스트는 이미지만으로 다 표현이 되지 않는 사연들이 작가의 내면에 차있는 것 같다. ‘내’ 안에 외부를 향한 단단한 벽들이 느껴질 때 “잠시 디오니소스”가 되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낙천적이고 낭만적이다.
요약하면 이번 전시는 사회성과 탈사회성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된다. 방정아는 사회성과 탈사회성, 그 경계에 서서 사회적 존재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양가성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이 두 축은 표면과 깊이, 거대서사와 미시서사, 이미지와 텍스트, 선과 색면(방정아 특유의 리얼리즘 예술세계를 결정짓는), 리얼리즘과 낭만주의로 연결될 수도 있다. 이는 작가를 둘러싼 환경이며, 표면에 드러나는 사건들 저변에 감추어진, 즉 개인의 미시서사를 관통하고 있는, “결코 잊으면 안 될” 거대서사를 반추하는 거울과도 같다.
■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미학박사 허정선
전시제목2023 기억공작소Ⅳ 방정아展 죽는 게 소원인 자들
전시기간2023.10.25(수) - 2023.12.24(일)
참여작가
방정아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 중구 봉산문화길 77 (봉산동, 봉산문화회관)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2층))
연락처053.661.3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