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제도를 바꾸고 시작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3>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선정된 4명의 작가(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의 신작뿐만 아니라 이전 작업들을 함께 소개하는 것이다. 각 작가들은 신작을 통해 새로운 작업 세계를 선보이는 한편, 작가의 오랜 고민과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주요 작업들을 함께 전시한다. 이를 통해 전시는 신작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여정을 살펴보고,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작가의 예술세계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특히, 2023년 선정 작가들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후기 산업사회에 접어들며 변화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의 질문과 답을 던지며 동시다발적인 평행우주를 만들어낸다.
<올해의 작가상 2023>에 출품된 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의 작업은 현재의 시점에서 인간문명과 역사가 성립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적 기준에 대하여 질문한다. 무엇이 인간과 비인간, 이웃과 타자,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도록 하는 바탕이 되는가? 그 구분은 가능한 것인가? 현대의 우리를 인간으로서 기능하도록 하는 합리적인 근대의 제도와 시스템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배타와 구분, 규율적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쌓아온 인간의 역사는 과연 인간이라는 종족에 관한 진실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예술을 넘어서서 인간으로서 근본적인 지점에서 우리에 대해, 혹은 인간의 문명과 역사의 흐름의 방향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도록 한다. 작가들은 현재의 관점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인식과 제도, 관습과 터부들을 살펴보고 이들이 갖고 있는 모순과 허점을 밝혀내거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이 질문을 갖는 지점들과 제시하는 대안이 다양한 만큼, 전시가 열어주는 생각의 층위 또한 다양하게 진행된다.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서 문명의 역사, 인간과 자연의 관계, 제도의 뿌리와 작동방식, 공동체의 정체성과 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 이들의 작업세계는 동시대 미술이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는 철학적, 실천적인 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갈라 포라스-김과 전소정은 마치 인류학(인간학)을 공부하는 외계인과 같은 관찰자적 시점에서 보편적이고 거시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작가들의 질문은 특정 지역이나 국적, 인종, 정치사나 사회사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문명을 구성하는 보편성의 기반을 흔드는 문제의식을 포괄한다.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은 종교적 믿음이나 죽음과 같이 지나온 모든 문명이 관심을 갖고 흔적을 남긴 유물들에서 시작한다. 석관과 고인돌과 같이 삶과 죽음을 경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의 오브제들이 현대의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유산 등의 시스템 속에서 본래의 기능을 잃고, 예술작품이나 국보로 분류되어 수장고와 전시장에 전시되는 상황에서 작가는 물건을 만들고 숭배하던 고대인들의 뜻과 현대의 제도를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하여 미술관이나 연구소와 같은 기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며 소통하는 한편, 관련 규정과 법을 모색하고, 고고학이나 역사학 등의 학술적인 자료들과 종교적 믿음, 민속적인 전통을 탐구하여 현재의 근대적(이성적) 제도가 과거의 전근대적(제의적) 제도를 차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더 나아가 작가는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과 미술관 공기 중의 수증기와 같이 본래 자연의 일부이던 것들이 종교적 믿음과 문화적 제도의 일부가 되고, 일상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 하였다가 다시 자연과 인위적 분류의 가운데에 애매하게 서서 시간을 견뎌내는 과정을 관찰하여 전달한다. 영원 불멸하고 강건해 보이는 역사적 구조물도, 강력한 제도와 법도 지질학적 시간 속에 부식되고 역사적 과거와 자연의 변화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고고학적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해, 범신론적 믿음을 바탕으로 현대 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법과 제도, 학문의 분류 체계와 예술의 역할 등을 우주적인 시공간 위에 놓고 새롭게 재단한다.
전소정은 끊임없이 동시대가 딛고 선 근대가, 근대화의 과정에서 놓아버린 바깥의 영역을 탐색하는 작가이다. 근대는 국가정체성과 합리성, 효율성, 빠른 속도와 자본의 세계화가 지배하는 시공간이다. 작업은 15 세기에 발달하기 시작한 유럽의 도시와 20 세기 초의 도쿄와 경성 등 근대의 시공간을 제시하지만, 작가가 바라보는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근대화의 시공간에 온전히 속해 있기 보다 이를 넘나드는 경계의 것들이다. 이들은 때로는 광인의 모습으로, 도주자와 방랑자, 약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근대적 인간의 조건이 과연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종 도착점인지 질문한다. 한편, 근대는 문자와 숫자를 지배하는 시각적 감각이 쌓아 올린 빛나는 금자탑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읽기와 쓰기, 계산하기의 과정에서 잃어버린 촉각과 청각, 후각의 감각들이 전소정의 작업에서는 대안적인 소통과 이해의 도구로 등장한다. 이 감각들은 항상 인간의 일부로써 존재했지만 근대화의 과정에서 희미해진 잔영들이다. 작업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시각 데이터뿐만 아니라 소리의 질감, 떨림과 진동, 냄새의 기억들이 인간과 역사의 서사를 잇는 임시통로를 구축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작가는 역사 속의 시인과 예술작가, 무용수와 음악가를 호출하여 그들이 온몸으로 부딪힌 근대의 시간을 곱씹는다.
긴 호흡으로 인간의 문화와 문명의 변화를 관찰한다는 점에서 갈라 포라스-김과 전소정이 사용하는 방법은 스타 트렉(Star Trek)의 프라임 디렉티브(Prime Directive)를 연상케 한다. 광속을 뛰어넘는 워프(Warp) 기술을 갖지 못한 문명과 첫번째 접촉(First Contact)을 하기 전,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행성의 궤도를 돌며 문명 전체의 명암을 조감하는 것이 이들의 책무이다.
이강승과 권병준은 보다 적극적으로 인간의 역사와 문명의 기준에 개입하여 사회에서 추방되거나 잊혀진 역사를 탐구하고, 미시적인 관점에서 대안을 찾거나, 도전적인 방식으로 실천을 모색한다. 이들의 작업은 공동체 안에서 가시적으로 혹은 비가시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인간과 비인간, 이웃과 이방인, 난민과 정착민, 정상과 비정상의 교차점을 탐색하고 연결함으로써, 이전에 없던 지식과 사실적∙경험적 인식을 생성해내고자 한다. 작가들이 택하는 방법론은 서로 다르지만, 간단하면서도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강승에게 역사가 새롭게 재구성되고, 연결되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은 “돌보다”이다. 그의 “돌보다”는 단순한 도움이나 호의를 뜻하지 않는다. 돌보아 주는 자와 돌봄을 받는 사람 간의 깊은 이해와 연결이 전제 되어있다. 작가의 “돌보는 행위”는 보이지 않던 자료들과 물건들을 발굴하고, 시대와 국경, 인종과 성별을 넘어 이들을 연결하여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산실의 역할을 한다. 그의 작업의 퀴어 역사 아카이브들은 서로 돌보아주던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수집된 것들이며, 작가는 소중한 아카이브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노동과 수고를 들여 이들을 미술작품이자 미술사의 일부로 편입시킨다.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활동하던 퀴어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은 미술작품이 된 아카이브를 통하여 비로소 서로 마주보고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들이 남긴 오브제와 파편들은 물건들의 알레고리를 통하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상징하던 플랑드르의 정물화처럼 굳건히 버티고 선 현재의 소멸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에 이강승의 작업에서 언어와 오브제는 남아있지만 이를 입고, 만지고, 사용하던 인간의 육체는 아스라히 흔적만 남는다. 인간의 몸과, 그 몸이 속해 있는 사회의 규범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도 “돌보기”는 살아남아 공동체의 이야기를 전승할 것이다.
권병준은 사운드 작업과 퍼포먼스 연출을 통하여 공동체 속의 인간의 연대와 확장 가능성에 관한 실험을 해 온 작가이다. 주로 전시가 아닌 공연과 퍼포먼스, 사운드 경험 등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그의 작업은 로봇의 등장과 함께 종합적인 극의 형태로 진화하였다. 작가는 사운드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소리를 듣는 경험이 타인을 이해하고, 낯선 이들 간의 연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해 왔다. 이주민들의 낯선 노래들과, 풍경의 향, 지나간 시대의 변화가 사운드 하드웨어에 담겨 전시장에서 제공되면, 이 청각적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의 사이에서는 잠시나마 공감과 연대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더 나아가 작가는 인간을 닮은 비-인간의 상징인 로봇을 파트너로 삼아 이 비누방울과 같이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찰나적인 공동체가 이웃과 타인의 구분을 넘어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인간 공동체의 궁극적인 한계를 시험한다. 극 속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일어서고, 앉고, 명상을 하고, 예의를 표하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하도록 설계된 이들이며, 쓸모와 효용을 위해 디자인된 산업용 로봇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쓸모가 없어도 되는 로봇의 등장은 로봇의 등장으로 인해 노동력의 가치를 잃은 인간 노동자들을 씁쓸한 마음으로 떠올리게 한다. 우리를 낯설게 닮은 그들을 바라보며 관람객들은 경쟁자이가 협력자, 혹은 대체자로서 로봇은 이미 사회 속에서 이방인이 되어가는 인간 노동자들과 함께 실패한 연대의 공동체를 형성해 왔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작가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와의 대화에서 인용하였듯이, “우리는 결국 모두 이방인일 뿐이며(We Are All Strangers)” 오로지 이방인으로서만 함께 할 수 있을 뿐이다.
이강승의 이야기 발굴을 통한 새로운 지식의 생산과 권병준의 로봇을 이용한 인간 공동체의 무한확장은 뒤돌아보지 않고 거침없이 직진하는 인간사회의 거센 흐름에 여러 복잡한 갈래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새로 파내는 물줄기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새로운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며, 미래의 가능성에 관한 보다 적극적인 희망이다.
전시제목올해의 작가상 2023 (Korea Artist Prize 2023)
전시기간2023.10.20(금) - 2024.03.31(일)
참여작가
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
관람시간월,화,목,금,일: 10:00-18:00
수,토 야간개장: 10:00-21:00
휴관일1월1일, 설날, 추석
장르회화, 영상, 설치
관람료무료
장소국립현대미술관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3,4전시실)
주최국립현대미술관, SBS문화재단
연락처02-3701-9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