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움미술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오는 20일부터 화단에서 인정받는 중견 작가들의 작품으로 ‘경향교점-산.목.인.해’ 특별전을 연다.지난 10년간 지방, 예술, 사립미술관이라는 3중의 타자화를 극복하고 나아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의미 있는 시간들을 함께 해온 5명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성과를 확인하고 동행을 기약한다. 풍경은 많은 작가들의 융통성 있는 장르이면서 신화와 역사, 일상이 공존하는 묵직한 특징이 있다. 이번 전시의 참여작가인 김진열, 민정기, 고(故)손장섭, 안창홍, 이흥덕 역시 자연의 풍경을 작품의 주된 소재로 했다. 이에 전시 부제인 ‘산.목.인.해’는 5명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소재들을 의미한다.
■ 해움미술관
평론
이선영(미술평론가)
현대사회는 다양성을 구가하는 것 같지만 시스템과 결합 된 동일성의 논리가 지배한다. 하지만 후기구조주의나 해체주의 등 현대철학의 성과에 의하면, 동일성의 몸통 그 자체는 타자들로 이루어졌다. 동일성은 타자를 배제하는 가운데도 실제로는 타자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올해 10주기 기념전을 여는 해움미술관은 한국사회에서의 편중 현상, 즉 중심집중적 좌표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 지난 10년은 지방, 예술, 그리고 사립미술관이라는 3중의 타자화를 극복하고 나아갔던 시간들이었다. 해움 미술관이 자리한 수원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변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예술이나 사립미술관이라는 실정도 장기적인 투자와 비전이 필요한 만큼 마찬가지 상황이다. 하지만 수원의 대표적인 사립미술관인 해움미술관의 10주년 기념전은 3중의 타자화를 돌파하려 한다. 이번 10주기에 초대된 이들의 면면 자체가 지역/중앙을 초월하여 화단에서 인정받는 중견 이상의 작가들이다. 그들은 해움미술관과 어렵지만 의미 있는 시간들을 함께 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앞으로의 10년도 함께 할 것임을 이 전시를 통해 보여준다. 앞으로 개인전 또는 기획전으로 초대되고 참여할 작가들의 한자리에서 살펴봄으로서, 그동안 인연의 성과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동행을 기약한다. 그들 이외에도 훌륭한 작가들이 많이 있었지만, ‘00주년 기념’ 만큼이나 테마를 가진 전시 자체의 응집성도 중요하다. 미술관은 축소된 세계다. 그 안에 함께 자리한 작품들 또한 각각의 세계다. 미술관은 각각의 세계를 일련의 맥락으로 배치하여 가까스로 존재하는 세계들과 연대함으로서 예술이라는 대안의 세계가 지금 여기에 존재해야 할 명분과 당위를 제시하고자 한다. ‘산.목.인.해(山.木.人.海)’라는 전시부제는 참여작가 김진열, 민정기, (고)손장섭, 안창홍, 이흥덕의 작품에 두루 나타나는 소재들을 특별한 인과관계 없이 나열한다. 풍경은 이러한 느슨한 관계들을 한데 묶어 줄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장르다. 그러한 소재는 풍경의 통상적인 요소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풍경은 신화와 역사, 그리고 일상이 공존하는 묵직함이 특징적이다.
뿌리는 물론 전후좌우와 뒷면도 없는 시대, 산과 나무, 바다와 사람 등은 소비되기 쉬운 풍경의 요소들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로 호출된다. 그들의 작품은 일종의 리얼리즘이다. 하지만 그들의 리얼리즘은 모든 종류의 ‘00 이즘’이 빠지기 쉬운 관념성보다는, 관념화 될 수 없는 실재에 근접하고자 한다. 이들에게 그림은 이러한 실재에 다가가기 위한 유력한 수단이자 목적이다. 각자의 개성 와중에도 그들을 묶어줄 수 있는 고리는 형식주의라는 동일성의 원리에 대한 공통적인 반대 입장이다. 모든 것이 코드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실재는 코드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다. 이 전시의 다섯 작가들은 1980년대 리얼리즘이 꽃피우던 시대에 그 한가운데 서지는 못했다.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미술운동이나 미학적 이론의 지배적 코드에 완전히 부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80년대의 진보적 미술과 함께 하기도 하고 따로 가기도 했다. 좋은 의미든 아니든 ‘각자도생’의 시대에 이들의 작품은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김진열의 작품 속 나무는 대개 하나의 화면에 오롯이 담겨 있지 않다. 나무는 일종의 우주로 보기에 충분한 상징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선택은 특이하다. 여러 화면이 한데 결합한 형식에서도 나무의 온전한 전체는 없다. 이 전시에서 손장섭 나무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대신 그의 작품에서는 세부에 나무의 드라마가 격렬하다. 푸른 바탕 속 묵직한 나무는 그의 한 작품 제목처럼 ‘불휘깊은’ 존재다. 지상과 지하를 잇는 통로들을 품고 있는 나무는 흡사 바위같은 무기질적 견고함을 가지고 있지만, 생동하는 삶 또한 품고 있다. 작품 [불휘깊은](2015)에서 푸릇한 작은 잎새들은 고목이 다시 한해의 주기에 돌입함을 알려준다. 인간의 상상계에서 나무는 재생이나 부활이라는 관념을 인간에게 예시한 존재로 평가된다. 그것들은 사람들처럼 우뚝 서서 온몸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작품 [뿌리와 더불어]는 무성한 나뭇가지를 통해 보이지 않는 그 반대쪽에 그만큼의 존재가 있음을 암시한다. [숨겨진 숨길]에서 존재는 삶의 궤적을 형태로 드러낸다. 나무는 자신이 뿌리내린 생태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부에 기록한다. 예술 또한 그렇다. [바람을 품는 당산목](2021)은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지키며 공동체의 중심 자리를 이뤘을 법하다. 이제 사라져가는 그런 존재들을 그림이 증언한다.
손장섭의 작품에서 나무는 배경이 아니라 전경을 차지한다. 그것은 작품의 주인공이다. 지상에 우뚝 선 이 존재는 늘 인간과 비유되어 왔다. 오래되어 거친 나무둥치에서 부드러운 새 이파리를 내는 [태백 느티나무](2016)처럼, 그의 나무에는 경이로운 기운이 서려 있다. [봄을 기다리는 산](2008)에서 잔설이 덮인 산은 뿌리와 씨앗, 알을 비롯한 자연의 잠재태를 품고 있다. 세계의 중심에 나무가 있는 신화가 있다면, 나무가 있는 바로 그곳이 세계의 중심일 터이다. 작품 [신목](2012) 근처에는 원두막 형태의 인간의 거처가 있으며, 그 아래의 골이 파인 대지 또한 인간적 삶과 무관하지 않을 터전이다. 생산을 위한 노동을 하되, 자연에서 큰 것을 바라지 않으며 순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이다. 손장섭의 작품에서 자연에 투사된 성스러움은 그자체로 숭배되어야 할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지상적 삶의 평화를 위한 것이다. 속(俗)은 성(聖) 아래에서 평등하다. 평등이 평화의 조건이자 결과다. 인간적 삶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듯한 성스러운 나무는 위안이 된다. 바위나 산의 풍경은 식물, 즉 나무의 상징을 더 큰 주기인 지질학적 시간대에 투사한다. 산과 바위는 그곳에 늘 있을 것이다. 산 위의 오래된 건물 또한 그렇다.
산 또는 섬들이 품은 듯한 어촌을 그린
민정기의 [통영 당포항](2023)은 실제에 가까운 지형도를 가짐과 동시에 동화같은 분위기가 서려 있다. 산자락 아래의 전답과 집들이 있는 마을이 있는 [유형원의 반계서당](2019)도 푸근하다. 원경을 가로질러 달리는 산들은 마을을 보호해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 풍경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구성의 묘나 색상의 조율에 심혈을 기울였다. 붓터치 하나하나가 드러나는 색의 조합이 화면에 활기를 부여한다. 실재에 상응하는 환영의 자족성, 그것은 세잔 이래 현대 화가의 과제였다. 물론 이러한 자족성에는 양면성이 있다. 발전주의에서 지체된 시골은 누군가에게는 유배지처럼도 보일 것이다. 스펙터클이 지배하는 현대에 회화는 정체성의 위기도 겪는다. 화가는 자신이 골몰하는 것에서 세계와 우주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민정기의 작품 속 오래된 유적은 문명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처럼 보인다. 근대 이전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더 오래된 기간 동안 인간의 역사는 자연에 순응했다. 자연과의 불화가 빈번한 현대에 문명과 자연이 공존한 흔적인 유적지의 풍경은 의미 있다. 작가는 경주 칠불암을 산이 품은 것같은 구도로 그렸으며, [안산 수리산](2023) 풍경은 산들 생성될 때의 원초적 운율을 살린다.
푸른 바다로 난 산책로를 그린
안창홍의 [길](2022)은 제주 올래길의 성공 이후 많이 생겨난 여러 형식의 둘레길을 연상시킨다. 자연 속의 산책 같은 가장 단순한 행위가 치유가 될 수 있음은 광적인 상품생산/소비 이후에 가능하다. 풍광 좋은 산책길이 있는 지역으로의 여행 또한 소비와 무관하지 않지만, 산책같은 무위의 활동에 대한 대중적 선호도가 높아진 것은 사회의 성숙함을 말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포함한 머리 아픈 문제에 골몰해 오던 현실참여파 작가 또한 자연이라는 보다 광대한 지평 속에서 인간과 사회를 맥락화 한다. 배경의 수평선으로 보아 [길]과 연관된 풍경인 [사이프러스 나무들](2022)에는 반 고흐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나무들이 이국적이다. 식물을 표현한 꿈틀거리는 붓자국은 동물적 활기를 부여한다. 이 전시의 세 작품은 신화의 땅 지중해 지역에서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하며, 바다라는 공통된 배경을 가진다. 탁 트인 풍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이국적 나무들의 도열이 있는 작품과 함께 보는 [이카로스의 추락](2022)은 자살하듯 내리꽂히는 인물로, 극적 반전이 있다. SNS 등을 통해서 현재 우리 일상을 포장하고 있는 평화로움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은유다. 형식주의와 대결하면서 인간적, 사회적 서사를 담아온 작품들은 지금의 현실과 조응하는 메시지다.
제작년도가 각기 다른 작품들을 함께 건
이흥덕의 작품들은 추리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의 작품 자체가 불연속적인 구성을 통해서 모종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전달해온 터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 보이는 수수께끼같은 분위기는 카페나 마을 같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타나곤 하지만, [태풍](2013)이나 [쓰나미](2015) 같은 천재지변, 요컨대 예측 불가능성과 재난이라는 사건적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작품 [태풍]은 어마어마한 자연력이 훑고 지나간 사건 앞에서 얼어붙은 듯한 인간들의 다양한 면모를 불연속적으로 배치한다. 쓰나미는 그것이 바닷가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이 화면의 안배를 통해 나타난다. 집과 사람이 물고기처럼 파도 위에 떠 있는 광경을 바라보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공간공포증적인 구성으로 빽빽하다. 쓰나미에 희생된 사람들 못지않게 묵시록적이다. 오가는 열차가 동시에 정차한 승강장에 일관된 기준으로는 분류 불가능한 다양한 무리들이 쏟아져 나오는 작품 [종착역](2017)은 다양한 인간들이 한 플랫폼에서 뒤섞인다는 점이 활기와 불안을 동시에 야기한다. 붉은색 배경은 작가가 이미지 뿐 아니라 색으로도 말함을 알려준다.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에 멈춰진 상황에 집중하는 이흥덕의 작품은 인간사회의 가장 친근한 범주인 [가족](2019)에 적용됨으로서 기이함을 더한다.
전시제목경향교점-산.목.인.해(山.木.人.海)
전시기간2023.07.20(목) - 2023.10.06(금)
참여작가
김진열, 손장섭, 민정기, 안창홍, 이흥덕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법정공휴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해움미술관 haeum museum of art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133 (교동) )
기획해움미술관
주최해움미술관
후원경기도, 수원시
연락처031-252-9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