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조몬・야요이・고분)

일본미술사 l 고대(조몬・야요이・고분)

섬나라 특유의 선사문화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 일본의 선사미술은 최초의 토착민인 조몬족에 의해 발전한 조몬시대(기원전8000~기원전3세기)와
대륙으로부터 농업기술을 유입한 야요이시대(기원전3세기~기원후3세기)로 구분된다.
조몬 족은 사람형태의 토용과 토기를, 야요이족들은 구리무기와 청동종, 가마에서 구운 도자기 등을 만들었다.

  • 화염문 토기, 조몬시대 중기, 니가다 현 출토

    조몬토기는 새끼줄 모양의 복잡한 나와메 문양(繩目文樣)으로 장식돼, 조몬시대 만의 독특한 조형감각을 보여준다.

  • 첨저형 토기, 죠몬시대 조기(早期)

    한국의 빗살무늬 토기와 형태가 유사한 죠몬시대 토기를 ‘첨저형 토기’라고 부른다.

  • 화염문 토기와 토우, (右 흙인형) 죠몬시대, 기원전 1000~400년경, 19.2cm, 홋카이도 출토

    조몬시대에는 토기 외에도 헬멧과 선글라스를 쓴 듯한 ‘차광기 토우’가 나타나 일본미술의 시작이 중국이나 한국과 차이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시적으로 표현된 토우는 주술적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 선각모양 토기, 야요이 시대

  • 선각모양 토기, 야요이 시대

  • 매장용 항아리, 야요이 시대, 프랑스 기메박물관

  • 동경(銅鏡), 야요이 시대

    일본과 한국의 금속문화의 차이는 한국에서는 청동기 시대를 거쳐 철기 시대로 옮겼으나, 일본은 청동기와 철기가 거의 동시에 사용되었는 것이다. 기원전 200년경 청동기를 가진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도래로 옹관묘, 세문경, 동경, 동모, 동천 등이 제작되었다.

  • 동탁(銅鐸), 야요이 시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의식행사 때 사용되던 청동제의 종.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실용성에서는 멀어져 심볼적인 것이 되었다.

  • 열쇠구멍형 고분[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고분시대

  • 닌토쿠 천황릉, 고분시대

  • 말모양 토용(土俑) 하니와, 고분시대 후기, 시마네 현 출토

    하니와는 일본 고대 생활 풍속을 알려주는 귀중한 가치가 있는 유물로 주로 고분 둘레에 세워졌다. 사냥꾼, 무희, 가옥, 동물 등을 적토(赤土)로 빚어 테라코타로 만든 토용을 말하며, 칼을 든 무사상과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하니와는 일본 무인 문화의 오랜 특징을 보여준다.

  • 타키와라 고분벽화

    고분시대 후기, 후쿠오카 현 출토

Description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 일본의 선사미술은 최초의 토착민인 조몬족에 의해 발전한 조몬시대(기원전8000~기원전3세기)와 대륙으로부터 농업기술을 유입한 야요이시대(기원전3세기~기원후3세기)로 구분된다. 조몬 족은 사람형태의 토용과 토기를, 야요이족들은 구리무기와 청동종, 가마에서 구운 도자기 등을 만들었다. 이후, 4~7세기경에는 거대한 고분들이 다수 출현하는 고분시대가 열린다. 

 

 

최초의 토착문화, 조몬시대[繩文時代]

신석기시대 이후, 일본에 미술적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발생 시기는 기원전 8000년에서 기원전 3세기경으로 일본 최초의 토착민인 조몬족에 의해 다양한 토기와 토우(土偶)들이 만들어졌다. 조몬 토기의 시작은 기원전 10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대를 갖고 있다. 

 

초창기에는 광주리를 닮은 듯한 밑이 둥근 환저형(丸底形)의 토기가, 조기(早期)에는 한국의 신석기 토기와 유사한 밑이 뾰족한 첨저형(尖底形)의 토기가,  전기에는 바닥이 편평한 평저형(平底形) 토기가 각각 등장해 우리나라와 유사한 발전과정을 보였다. 그러나 중기(中期)이후에 등장한 토기는 ‘화염문(火焰文) 토기’라 하여 상당히 이색적인 조형성을 갖추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조형적 성격이 약해져 오히려 순수 기형에 충실한 면모를 보이게 된다. 사람형태를 한 독특한 토우도 발견되는데, 이를 ‘차광기(遮光器) 토우’라고 한다.

 

 

회화적 표현의 시작, 야요이 시대[彌生時代]

기원전 3세기경부터 기원후 3세기경까지의 청동기에 해당하는 야요이 시대는 대륙문화의 영향을 받아 벼농사와 청동기 사용, 그리고 물레를 이용한 토기제작 등으로 앞선 시기에 비해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보인다. 이 시기의 특징은 토기와 동탁(銅鐸)이라고 하는 청동기 표면에 가한 회화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토기는 보통 전기·중기·후기로 나누어 그 변화를 설명하는데, 물레를 사용해 기형이 완전한 좌우대칭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기벽도 얇아지고 표면장식도 간략해져 보다 순수한 기형미를 추구하는 것이 한국의 무문토기(無文土器)와 유사하다. 또 이 시기에 많이 나타나는 동탁 표면에 있는 선각(線刻) 부조는 한국의 청동기 유물에서 보이는 선각 장식들과 내용이나 기법이 유사하여 상호 영향관계를 엿볼 수 있다. 동탁의 표면에 보이는 유수문(流水文)과 같은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들은 이후 일본미의 한 원류로서 작용한다.

 


고분(古墳)문화와 야마토[大和] 조정

3세기 말에서 4세기 전반까지 일본 열도에 거대한 ‘열쇠구멍 형태의 고분[前方後圓墳]’이 나타나는데, 이를 근거로 이 시대를 고분시대(古墳時代)라 부른다. 고분에서는 많은 부장품과 함께 사람, 동물, 집, 배 등을 만든 토용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러한 토용을 하니와[埴輪]라고 하며, 하니와는 불교조각이 나타나기 이전의 순수 일본조각으로서 의의가 있다. 

 

또 후쿠오카[福岡]와 구마모토[熊本]를 중심으로 한 규슈[九州] 지방에는 장식고분(裝飾古墳)이라고 하는 벽화고분들이 나타나 대륙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보여주는데, 한반도에서 출토된 것과 공통된 특징을 가진 유물이 많이 부장되어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장식고분은 벽화 내용이나 표현기법에서도 대륙적인 요소와 일본적인 독특한 표현법이 결합돼 있어 한반도의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 

 

일본에 있어 4세기부터 7세기 사이는 겨우 국토가 통일되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 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야마토는 나라[奈良]현의 옛 지명을 뜻하며, 여러 부족으로 난립해 있던 소국가들이 야마토 정권에 의해 통일된 데서 유래되었다. 4~5세기경 기나이, 산요, 규슈 북부에 병립했던 지역정치집단이 규합하여 야마토 정권을 형성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왕 히미코는 중국의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야마토 조정은 한반도와의 교류를 활발히 하여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도래를 촉진하는 등 성숙한 문화 발전 양상을 가져왔다. 그러나 초기국가 단계가 아닌, 연맹왕국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고분시대는 아스카 시대[飛鳥時代]와 시기상 다소 중복되는 면이 없지 않으나, 국가명이 명확하지 않은 시기이므로 편의상 이와 같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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