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대 회화예술

중국미술사 l 명(明)대 회화예술

오문화파와 절강화파의 파워!

4세기에 걸친 오랜 북방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난 한족은 마침에 한족 특유의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한다.
100년후 명대 중기에 이르러 경제가 활성화되고 동시에 문화의 수요도 늘어나자 지식인의 활동이 왕성해진 강소성 소주 오흥을 중심으로
문인 취향의 화풍이 형성되면서'오문화파'와 '절강화파'라는 독특한 화파가 등장하게 된다.

  • 심주, <중추상월도>권

    지본담채, 30.5x134.5cm, 보스톤미술관

  • 심주, <경강송별도>

  • 심주, <경강송별도>

  • 문징명, 추산논도도

  • 문징명, 추산도

  • 대진, 춘유만귀도

    비단에 수묵담채, 168_83

  • 오위, 어락도(부분)

Description

4세기에 걸친 오랜 북방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난 한족은 마침에 한족 특유의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한다.100년후 명대 중기에 이르러 경제가 활성화되고 동시에 문화의 수요도 늘어나자 지식인의 활동이 왕성해진 강소성 소주 오흥을 중심으로 문인 취향의 화풍이 형성되면서 '오문화파'와 '절강화파'라는 독특한 화파가 등장하게 된다.

 

 

시대적 배경

명대는 4세기 이상에 걸친 북방민족으로부터 해방되어 한민족의 지배가 부활된 시기이다.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거대한 벽돌을 사용하여 쌓은 만리장성도 명대에 완성된 것이다. 명나라 초기에는 원말 4대가가 활동하였던 강소성 지역이 주원장의 최대 정적이었던 장사성을 옹호 하였다고 하여 탄압을 받았고, 자신의 결점 때문에 일으킨 주원장의 '문자의 옥'과, 조카 건문제를 폐위 시키고 왕권을 장악한 영락제의 '정난의 변'으로 지식인들이 제거되었다. 

 

이로 인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문인화풍이 쇠미해진 반면, 황제와 귀족의 취향과 궁궐 장식에 어울리는 명대 원체화풍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100년후 명대 중기에 이르러 경제가 활성화되고 동시에 문화의 수요도 늘어나자 지식인의 활동이 왕성해진 강소성 소주 오흥을 중심으로 문인 취향의 화풍이 형성되었다.  원말 4대가인 황공망, 예찬, 왕몽, 오진과 조맹부의 회화풍을 답습한 남종화계 화가들을 일컫는다. 특히 선비문화의 중심지였던 소주 오현(옛 이름 ‘오’라고 함)에서 살고 있던 화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회화사조이기 때문에 명명된 이름이다.

 


대표적 회화사조 1- 오문 화파(吳門 畵派)

중국 명나라 때 산수화 유파의 하나로 중국 고대회화사에서 규모와 영향력이 가장 큰 회화사조 중 하나이다. 본래 사대가의 흐름을 살리고 전개시켜 회화파로서의 양식을 형성한 명나라 남종화풍의 화가들을 일컫는다. 

 

명나라 초에 심주가 등장하고 문하생 문징명을 중심으로 오파의 기초를 다졌다. 이들을 중심으로 오파가 융성해지면서 16세기 후반 소주 지역 화단의 주류를 이룬다. 명대 말에는 송강에서 동기창이 나와 문인화의 우위와 정통성을 주장하여 후대 산수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오문화파는 회화작품에서 기교보다는 정신적인 깊이와 우아하고 윤기 있는 필법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오문화파에는 시와 서예까지 능숙한 문인들이 많아 당시 회화는 건전성을 추구할 수 있었다. 중세까지 길러진 회화적 정신은 명대에 이르러 비로소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명의 전반기에는 직업화가 강세를 보였지만 오파의 등장 이후 점차 세력을 모은 문인화가들에 의해 명대 중기 이후에는 문인화 계열이 주도권을 가지고 화단을 이끌었다. 명대 말기에는 이러한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절충적이고도 개성적인 다양한 그림들이 등장하였으나 만주족의 침략 이후 새로운 변화는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대표작가

문인화는 장감의 소주 출신의 심주(沈周)와 문징명(文徵明)의 출현으로 활기를 띠게 된다. 그가 화가로서 이룩한 탁월한 업적은 제자 문징명에게 계승되었는데 그도 역시 정갈하면서 회화적 깊이가 있는 문인화를 많이 그려 오문화파식 그림을 전국적으로 확대시켰다. 진계유, 심주, 문징명 등은 동기창과 함께 명말(明末) 4대가이다. 

 

오문화파의 대표적인 작가로 심주와 문징명은 원대 문인화의 전통을 따랐고 필묵의 표현효과에 의한 감정표출을 강조하였으며 평온하고 담박한 정서 표현으로 그윽하고 청담한 예술적 경지를 추구하였다. 

 

이중 심주는 원대 황공망, 왕몽, 오진의 화풍을 배워 거친 필치의 구사에 능하였고, 간일하면서도 원만하고 활달한 필법으로 알려졌다. 심주는 관직으로 나가지 않고 평생을 예술에 경주(傾注)하여 새로운 명대식 산수화를 창출시켰다. 심주는 문인화에 철학적 사고를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 하에 깊이 있는 산수 표현에 자신의 철학적 사고와 인생관을 부여하였다. 그의 그림에 많은 친구들의 찬문이나 본인의 글이 곁들여져 학구적인 회화가 만들어졌는데 이들을 오문화파의 특징이기도 하다. 

 

산수화의 전체적인 구도는 간결하고 그 안에 인물은 사의적(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창작가의 의도를 내포하는 경향)으로 그렸다. 다시 말 해, 산수를 그리는 데 있어 주관적 감정과 취향을 산수에 투영하는 자기표현을 중시하여 독창적인 화풍으로 발전시켰다. 

 

문징명은 심주의 문하생으로 스승인 심주는 조용히 초야에 살며 사회활동을 하지 않았으나 문하생 문징명은 제자양성에 주역하여 스승의 회화의 뜻을 널리 퍼뜨렸다. 둘 다 원대 4대가의 바탕을 두고 복고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심주는 무게 있는 오진의 화풍을, 문징명은 왕몽의 복잡함을 택했다. 꼼꼼한 필치와 강한 채색으로 그려진 문징명의 그림은 언뜻 보아서는 문인화의 분위기와 동떨어져 보이나 볼수록 의미 있는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사물들을 경사지게 처리하여 의도적으로 수평을 깨뜨리고 긴장감을 주는 등의 시도는 매우 근대적인 감각으로 평가된다. 

 

 

대표적 회화사조 2- 절강 화파(浙江 畵派)

절파의 중국 명나라 초기의 화파로 시조 대진은 절강성 출신이어서 절강 화파 라고 명명되기 시작하였다. 대진의 뒤를 이은 절파 화가 오위, 장로, 장숭, 정전선 등이 있다. 절강화파에는 직업 화가가 많았는데 이는 기교의 남발을 초래하여 부산스럽거나 다소 건조한 작품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비대칭적 구도, 심한 흑백대조를 이루는 묵면(墨面)의 시각적 강조, 공진감이 결여된 평면적 화면, 활달하고 강력한 필묵의 구사가 뚜렷한 특징이기도 하다. 명나라 후기부터는 오문화파의 문인화의 강세에 눌리고, 명나라 말기부터는 동기창의 상남폄북론에 부딪혀 절강화파의 화단이 급속히 쇠퇴를 길을 걷게 되었다. 

 


대표작가

- 대진(戴進): 궁정화풍에다가 원대의 문인화풍을 가미하여 절충식의 화풍을 창조하였다. 

 

- 오위(吳偉): 대진의 화법을 이어받았으며 대진보다 더욱 솔직하고 대담한 표현을 즐겼다. 필획이 매우 힘차며 구속됨이 없었는데 이는 명나라 화가들의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였다. 원대의 문인화가들에 비해 명나라의 문인화가들은 사회 참여의식이 강하였으며 인간적이었다.

이외 장로(張路)등이 있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박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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