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원 위에 숨

2023.03.03 ▶ 2023.03.19

가나아트센터

서울 용산구 보광로 42 (보광동, 중소기업은행) 가나아트 보광

Map
  • 전시포스터

  • 김성철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celadon glaze, 30.5(d) x 2.5(h) cm, 12(d) x 1(h) in

  • 김성철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manganese glaze, 32(d) x 2.5(h) cm, 12.6(d) x 1(h) in

  • 김성철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manganese glaze, 20(d) x 2.5(h) cm, 7.9(d) x 1(h) in

  • 김성철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manganese glaze, 8(d)x5(h)cm, 3.1(d) x 2(h) in

  • 김성철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4.5(d) x 7(h) cm, 1.8(d) x 2.8(h) in

  • 김성철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11(d) x 11(h) cm, 4.3(d) x 4.3(h) in

  • 김성철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5.5(d) x 7(h) cm, 2.2 (d) x 2.8(h) in

Press Release

가나아트는 백자토로 만든 서정적이고 섬세한 형태의 도자에 불을 밝힌 설치 작품으로 호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김성철(b. 1980)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김성철의 작품은 바티칸 교황청,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 서울대학교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가 2022년부터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다수의 신작이 《원 위에 숨》 전시에 공개된다. 가나아트는 재료의 물질성, 작가의 내면에서 메아리치는 다양한 이미지, 삶의 에너지를 시각화한 이번 전시의 결과물을 통해 김성철의 작품에 드러나는 조형적 미학과 가능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호롱’은 기름을 채워 불을 밝히는 등잔(Oil lamp)으로,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아득한 과거부터 어두운 공간을 밝히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국내에서는 조선 후기 도자기로 만든 작은 종지형 등잔이 사대부 계층에서 유행했으며, 이는 19세기 말 석유가 국내에 수입되면서 심지뽑이 뚜껑이 있는 등잔의 형태로 변모했다. 이처럼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은 호롱은 오늘날 그 기능을 잃고 장식적인 오브제로 전락했다. 하지만 호롱은 본래의 실용적 목적이 사라진 과거의 산물이면서도, 오랫동안 빛의 환영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 사물이다. 작가가 호롱에 주력하게 된 시발점은 유년기에 집에서 발견한 오래된 사기 등잔이었다. 투박하지만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표면의 질감과 호롱의 오묘한 내부 구조는 작가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김성철은 이러한 사물에는 만든 이의 심상과 더불어 그것을 사용한 이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숨결이 잔재한다는 사고방식을 작품을 통해 내비친다. ‘원 위에 숨’이라는 전시명이 은유하듯, 김성철의 영감의 원천이 된 둥근 호롱은 사람들의 들숨과 날숨에 따라 흔들리는 다채로운 빛의 환영을 선사한다. 이에 가나아트는 관객이 좁은 창과 문을 통해 작품을 관찰하도록 유도하는 전시 구성을 통해 호롱의 불빛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이로써 관객은 마치 오래된 집이나 성전에 발을 디딘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또한 삼각형 또는 육각형으로 놓여진 구조물은 주변의 빛을 차단하여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작가가 구축한 정서적인 세계와 관객이 서있는 실제 공간을 구분 짓는 동시에 연결시키는 매개물로서 자리한다.

이처럼 김성철의 작업 세계에서 호롱은 오래된 기억과 삶의 표상으로, 작가는 호롱의 기능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대신 오랫동안 우리의 삶의 공간을 밝혀온 사물에 담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에게 처음으로 영감을 주었던 오래된 호롱을 원형으로 하여 제작된 본 전시의 출품작은 신형 등잔, 즉 액체 연료를 담는 몸체와 심지뽑이 뚜껑으로 구성된 호롱의 형태를 단순화하여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이 주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모든 단계가 수공으로 이뤄지는 김성철의 작업 과정은 달항아리의 성형 방식처럼 상하부를 동일한 형태와 크기로 물레 성형한 뒤 이를 하나로 결합한 것이다. 또한 김성철의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작고 가느다란 심지뽑이는 정교한 물레성형 기법의 극치를 보여준다. 조각의 전통적인 자연 소재인 흙을 바탕으로 작가는 유약이 번지거나 흘러내리며 만들어내는 효과와 독특한 질감 표현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선보이고 있다. 아울러 본 전시의 출품작들은 기존 작업의 정형화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몸체에 뚜껑, 손잡이, 굽 등을 ‘덧붙이기(조립)’하며 다양한 형태변형을 꾀한 결과물이다. 마치 버섯이나 균류가 성장하는 풍경을 연상시키는 해당 작품들은 작가의 유희적 감각과 판타지적 상상력이 가미된 모티브로서, 유기적인 형태가 자유롭게 결합하여 전형적인 호롱의 형상에서 거듭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 전시의 다양한 도자기를 통해 투명유, 결정유, 청자유, 망간유 등 유약의 사용과 형태에서 변화를 시도하며, 작업에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가 실용적 기능을 넘어서 하나의 조형물로서의 미학적 가치를 지닌 김성철의 작품을 재발견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 가나아트


작가노트
현대 사회에서 호롱은 본래의 기능이 퇴화한 장식적 사물이다. 간편한 전기 조명이 자리를 대신한 지 1세기가 넘은 지금, 호롱에 기름을 넣고 불을 붙이고 먹먹한 불빛 아래 눈을 비벼가며 밤을 보내는 것은 잊힌 일상이다. 그럼에도 호롱불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존재감은 지금도 여전하며, 이는 오히려 현대인에게 더 절실한 정서일지도 모른다. 바슐라르(Bachelard)는 촛불의 미학 (La Flamme D’une Chandelle)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세계는 급속히 진보하고 시대의 흐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제 희미한 빛이나 타나 남은 촛불의 시대는 지났다.
쓰이지 않게 된 사물에 집착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꿈일 뿐이다.
그러나 꿈이나 몽상은 우리의 행위처럼 급속히 현대화되지 않는, 강력하게 뿌리 박혀 있는 정신적 습성이다.
현실의 활동이 그것을 교란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호롱을 만든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상을 의식하였거나 사회적 가치 구현과 같은 거창한 목적으로 호롱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기에, 왜 내가 특정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고 연구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나의 작업은 등불이 켜진 빈 방의 풍경이나 어스름한 빛이 새어 나오는 동굴과 같이 내 마음에 호소하는 이미지와 정서를 물질로 구현하는 과정이다. 호롱이라는 대상에 이르기까지의 나의 선택은 의도적이거나 필연적이지 않았다. 개인적 삶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과정이다. 나는 백자 제작과 관련된 기예를 배웠고, 주된 성형 방법으로는 물레를 사용한다. 호롱은 나의 내적 이미지가 도자의 기예와 만난 결과이다. 만약 내가 다른 재료를 다루는 법을 익혔다면 다른 종류의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금속 다루는 법을 익혔다면 램프를 만들었거나, 열심히 두드려서 내부의 빛이 물처럼 반짝이는 전등갓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렸다면 등을 들고 어두운 숲을 걸어가는 작은 사람이나 불 밝힌 창문이 있는 야경을 그렸을 것이고, 물레가 아니라 핸드빌딩 기법을 익혔다면 그러한 내부 풍경을 함축한 건축적 이미지나 동굴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무를 다루었다면 창호를, 유리를 다루었다면 스테인드글라스나 전등갓을 만들었으리라. 호롱을 향한 작업은 나의 주관적 이미지나 정서에서 시작했다. 혹은 개인의 판타지라 해도 좋다. 주로 수평선, 창문, 집과 같은 오브제가 포함된 밤의 풍경이다. 이는 어둑한 가운데 부드럽고, 다정하고, 따뜻하다. 조금 불안하거나 모호해 보이지만 결코 부정적이지 않으며, 나로 하여금 그 안에 머물고 싶게 한다.

Methodology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물질적 구현을 위한 스케치를 하는데, 매체와 기법은 흙과 물레성형으로, 또한 그것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대상은 호롱으로써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단계는 머릿속에 떠오른 구상을 최종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것이다. 스케치한 이미지가 그 자체로 어떤 분위기를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보다는 구조가 주는 인상을 미리 확인해보고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에 근접한지, 또 무언가 덧붙이거나 뺄 것은 없는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실체화를 고려한다. 앞서 나의 작업은 어떠한 이미지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다만 이미지에서 호롱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전하는지 의식하고 있지는 않다. 어둑한 방이 있고, 그 방 안에 빛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LED 등이 환하게 켜져 있는 분위기가 아니므로 아마도 등불이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양초인지, 유리 갓을 씌운 금속 램프인지, 도자로 만든 호롱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보다는 방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기능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삶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그 공간에 살고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등불은 삶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은 나에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인상을 제시한다. 유약 표면의 반사가 불러일으킬 다양한 효과와 그에 따른 분위기, 또한 사물의 크기가 주는 인상이나 형태가 만들어내는 명암이 주는 인상은 미리 예상하기 어렵다. 또한, 작품이 배치나 환경 변화에 따라서 다른 표정을 가지며 심지어는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는 것도 결과물을 마주한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감각에 접근하는 형식(form)에 관한 것들이다. 형식이 새로운 인상을 제시함에 따라, 나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거나 기존의 형식을 보완한다. 재료의 실험이, 그리고 형과 비례와 구조를 찾는 스케치가 반복된다. 이에 따라 형식은 점진적으로 변화하지만 그 시작점이 되는 이미지는 변하지 않는다. 방은 따뜻하고, 창에서는 부드러운 빛이 흘러나온다. 나는 그 이미지들을 의식적으로 견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작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작업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료와 기법이다. 공예라는 바탕 위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에게 있어서 재료와 기법은 필연적인 요소이다. 내적 이미지는 발상의 토대가 되고 작업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이것이 작업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 특정 결과물이 이전에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인상을 낳을 때에는 매개체 스스로가 이미지화 하기도 한다. 이러한 물질과의 교류를 통해 형식은 점점 다듬어지고 이미지는 체화(體化) 되어간다.

Inspiration
처음 만들었던 호롱은 우연한 심상(心想)으로부터 나왔다. 그것은 새벽 호수의 정경으로, 약간 습하고 추웠다. 메마른 산에 둘러 쌓인 넓은 호숫가는 자갈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거기에서 드문드문 불이 반짝였다. 나는 그 돌을 만들었고, 그 결과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호롱을 주제로 작업하게 되었다. 당시 왜 그런 정경을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의미만은 명료하다. 그것은 ‘온기’ 였다. 나의 심상이 결과물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던 이 첫 사례는 조금 특별하다. 그 이후의 작업은 대부분 물성과 형태를 다루어 형식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도예가들과 마찬가지로 백자토, 유약, 그리고 물레성형, 이 세 가지가 내 작업의 환경적 조건이며, 따라서 나의 작업은 정형(定型)을 취한다. 나의 심상 가운데는 정형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도 많다. 드문드문 불을 밝힌 어둑한 숲, 수평선과 절벽 그리고 별이 떠있는 광경, 그 절벽 아래서 불을 쪼이며 쉬는 여행자, 천장이 아치로 된 건축물의 내부 공간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를 암시해 주는 부분이 부족하여 정형화하기 어렵지만,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이런 이미지들이 내포하는 분위기다. 고요함, 부드러움, 편안함, 따뜻함과 같은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따라서 나의 작업은 복잡하기보다는 단순하고, 치솟기보다는 야트막하며, 부드러운 곡선이 주를 이룬다. 나는 내적 이미지 자체를 조작하거나 직설적으로 구현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미지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다. 불 밝힌 창문, 바다의 수평선, 어스름한 동굴, 말없는 집과 같이 마음을 끌어당기는 풍경들은 시각적 이미지 라기보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되는 방향, 또는 내적 충동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이들을 떠올릴 때면, 그러한 장소는 실재하지 않고 거기에 도착하리라는 현실적 기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창문 안에는 지극히 평범한 삶의 장면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수평선은 언제까지나 수평선일 뿐, 그 끝에 도달할 수는 없다. 동굴이나 집도 막상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 신비함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그들은 다시 후광을 두른 채 침묵으로 존재를 나타낸다. 그 속에는 왠지 빠져들고 싶은 여운이 있다. 나는 이러한 ‘분위기’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그 이미지들을 아울러 관통하는 인간적인 요소(element)가 그 속에 녹아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갈망(longing)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쫓는 마음이며, 일상을 초월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다. 이와 같은 정서(sentiment)가 없다면 인생이란 그저 먹고 마시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내게 있어서 호롱은 ‘갈망의 사물’이다. 그것은 꿈을 꾸는, 인간적인 사물이다.

“… 이리하여 북쪽 사람들은 지중해 기슭으로, 혹은 빛과 사막 속으로 도망쳐 오지만 빛의 고장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으로 밖에. 또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는가? 짐승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감탄하다가 죽는다. 마침내 이르게 되는 항구는 어디일까?”


장 그르니에(Jean Grenier)의 섬 (Les Îles)에 대한 카뮈(Camus)의 찬미사의 일부이다.
참으로 그러하다. 등불 밝힌 작은 항구를, 나는 소망한다.

전시제목김성철: 원 위에 숨

전시기간2023.03.03(금) - 2023.03.19(일)

참여작가 김성철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없음

장르도자기

관람료무료

장소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용산구 보광로 42 (보광동, 중소기업은행) 가나아트 보광)

연락처02-395-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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