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매일매일 ( )

2022.11.10 ▶ 2022.12.10

갤러리 학고재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4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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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구름의 모서리 (조지아 오키프의 구름 위의 하늘 IV 오마주) The Edge of a Cloud (Homage to Sky Above Clouds IV by Georgia O Keeffe) 202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59.1x581.7cm 제공 학고재, 사진 양이언

  • 김은정

    읽는 사람 The Reader 202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3.9x130.3cm 제공 학고재, 사진 양이언

  • 김은정

    구름 산 파도 A Wave of Clouds and Mountains 202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16.8x91cm 제공 학고재, 사진 양이언

  • 김은정

    봄을 쫓아 In Pursuit of Spring 202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3.9x130.3cm 제공 학고재, 사진 양이언

  • 김은정

    한강, 벌새 Han River and Hummingbird 202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45.5x27.3cm 제공 학고재, 사진 양이언

  • 김은정

    흰 눈 내린 A Snow-Covered Tree 202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3.9x130.3cm 제공 학고재, 사진 양이언

  • 김은정

    여기 있어 I Am Here 2022, 나무 패널에 유채 Oil on wood panel, 25x25cm 제공 학고재, 사진 양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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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옷에서 탈출 Escape From Pajamas 2021, 도자기 Ceramic, 12x5x2.5cm 제공 학고재, 사진 양이언

  • 김은정

    도깨비 Goblin 2015, 도자기 Ceramic, 6.2x5.4x5cm 제공 학고재, 사진 양이언

Press Release

우리가 만든 날씨
홍예지(미술비평)

“내 주변은 살며시 솟아올랐고, 속박에서 벗어난, 새로 태어난 나의 정신이 그 위로 떠올랐다. 언덕은 먼지구름으로 변했으며 – 나는 구름을 뚫고 연인의 변용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서 영원이 쉬고 있었다.”

연보라 나비 한 마리 하늘 위로 떠오른다. ‘어린 날개는 물결에 절어’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그를 놀라게 한 바다의 깊이는 다음 순간 파도의 높이로 바뀐다. 하늘을 향해 산처럼 솟는 바다와 보이지 않는 바람을 타고 오르는 나비. 김은정의 그림을 보며 ‘프시케(psyche)’의 의미를 떠올린다. 오랫동안 프시케는 나비와 영혼, 정신을 함께 뜻하는 말로 쓰였다. 그렇다면 그림에서 나비는 ‘새로 태어난’ 정신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련을 통과한 정신은 날개 아래의 소란을 인식하면서도 휘둘리지 않는다. 오히려 한층 고양된 상태로, 구름을 뚫고 저 높이 올라간다.

올라가면 무엇이 펼쳐질까? 〈구름의 모서리〉(2022)를 보면 하늘인지 바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풍경이 정신을 둘러싼다. 부드러운 크림이 섞인 분홍과 청명한 파랑이 임의의 경계선을 긋는 곳. 그곳엔 빙하인 척 눈속임을 하는 구름이 사방을 뒤덮는다. 〈읽는 사람〉(2022)에서 한 여자는 구름을 방석처럼 깔고 앉아 책을 읽는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시간’이라는 책이다. 너무 고요해서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공간에,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만이 규칙적인 리듬을 자아낸다. 숨 하나에 1초가 흐르고, 두 눈 속에 영원이 담긴다.

‘읽는 사람’이 앉은 자리는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가 서로 접촉하는 지점”이다. 여기가 바로 “영혼의 자리”다. 그의 몸을 받쳐주고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구름이 아니라 물이다. 구름은 물이 주는 유동적인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물은 여자의 몸을 “어머니처럼 흔들어준다.” 잔잔히 흔들리는 물결에 태곳적 기억이 흘러들어와 섞인다. 꿈꾸는 자의 영혼은 지리적, 시간적 경계를 넘어 자유로이 떠다닌다. 원래 어느 해질녘, 바닷가였던 곳이 하늘 속 몽상의 무대로 바뀐다. 물과 하늘의 “질료적 연속성” 에 의해, 그리고 화가의 촉촉한 상상력에 의해 이런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 몽환적인 풍경에서는 내면에 몰두하는 한 여자와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여자, 즉 화가 자신의 감정이 한데 뒤섞여 어디에도 없는 날씨가 만들어진다.

김은정의 그림 속 인물들은 날씨의 영향을 받지만 스스로 날씨를 만들기도 한다. 그들은 공중으로 흩어지는 연기 속에서, 휘날리는 눈송이 속에서, 문득 새 정신이 깨어나는 것을 느끼고 변화를 일으킨다. 바깥 날씨가 매일매일 달라지는 것처럼, 내면의 날씨도 매 순간 달라진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알아채는 순간은 우연한 마주침이나 반복에 균열을 내는 사소한 사건과 관련될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아주 여린 세기로 시작된 변화는 어느새 내면의 풍광을 뒤엎고, 나아가 바깥 환경 전체의 리듬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날씨에 참여한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말로 하면, 지구라는 공통된 기반 위에서 객관적으로 공유되는 날씨가 있고, 그에 반응하여 시시각각 일어나는 주관적 날씨들이 있다. 이 두 종류의 날씨가 서로 교차하며 무수한 분위기가 생성된다. 우리는 바로 이런 분위기의 순환 속에서 하루하루 숨쉬며 살아간다.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우리에게 영향을 받기도 하는 날씨는 언어로 명확히 서술되기 어렵다. 그래서 그림이 필요하다. 김은정은 낱말이라는 틀에 날씨를 가두는 대신, 화폭을 펼쳐 네 모서리를 넘어서는 자연의 사이클을 불러낸다. 예를 들어 〈봄을 쫓아〉(2022)에는 늘 새로운 바람이 드나들고, 바람을 따라 영롱한 깃털을 지닌 새들이 날아든다. 새들의 노래가 맑은 공기를 울리면, 〈겨울숲과 고양이 셋〉(2022)에서처럼 길 가던 고양이의 털이 바짝 곤두선다. 또 〈겨울산책〉(2022)에서 눈 덮인 길을 걷던 두 사람은 발자국을 들여다보거나 싹이 오른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며 초봄에 가까워진 날씨를 눈치챈다. 각각의 풍경에는 말이 필요 없다. 단지 날개 달린 듯 가벼운 손짓이, 내면과 외면을 섬세하게 잇는 시선이 있을 뿐이다.

변화무쌍함을 변덕스러움으로 여길 때, 변화는 우리 손을 떠나 있는 것이 된다.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채색된 변화는 일상을 위협하는 훼방꾼처럼 여겨진다. 그에 맞서 동일한 리듬을 고수하는 것이 우리의 고집스러운 반응이다. 날씨는 이런 변덕스러움의 카테고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예처럼 보인다. 그 자체로 경계와 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이 카테고리 안의 다른 항목들을 아우르는 적절한 비유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 하여 날씨를 본다면 – 그러니까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며, 매일매일 해석하고 행동함으로써 환경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면, 날씨는 우리 손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된다. 삶에 통합된 날씨는 우리가 겪는 다양한 사건과 만남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밀한 감정과 기분, 느낌을 다른 이와 공유하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김은정의 《매일매일 ( )》은 바로 이런 시각에서 날씨를 바라보며 일상을 가꾸어 나간 기록이다. 화가의 몸을 감싸는 청량한 공기와 높이 떠 있는 구름,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산책길에 만난 이웃과 고양이들이 사계절을 함께 통과하는 여정을 담았다. 마치 한 권의 시집처럼, 화면과 화면을 연결하는 자유 연상이 미묘한 아름다움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김은정의 그림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조금은 유연해진 마음으로, 다가올 새 계절의 즐거움을 기다린다.


구름의 모서리
김은정

1.
아주 밝은 빛, 때론 깊은 어둠, 그 사이에 무수히 존재하는 공간. 공기가 희박한 곳에서 적절한 고도를 찾아 비행하는 일. 과일 속 벌레처럼 뇌우를 품은 구름, 그 위를 날아. 나비와 나방의 차이는 뭘까. 앉은 모양이 달라. 예쁨과 추함. 구분은 쉬워. 낮과 밤. 그들은 다른 시간을 살아. 꽃을 피우는 몸짓과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것. 하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있어. 왜 무엇은 어떻다. 쉽게 단정할까. 그 관점은 누구의 것이야? 지구를 관통하는 나무가 있어. 너무 거대해서 뿌리가 반대편까지 자라났어. 잔뿌리가 가득해. 자꾸만 자라려고 하는 거야. 더, 더, 많이 가득히. 그게 좋아. 원래 그렇거든. 그럼 반대편으로 솟아난 가지는 뭐라고 부르기로 할까. 끝말잇기 같은 그림들. 그림을 넘어 그림으로 이동하는 그림. 구름모양 말풍선. 하얀색의 언어.

2.
2022년 여름은 평균치보다 비가 많이 내렸다. 삶은 새로운 날씨와 함께 변모한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공통의 경험’ 보편적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을 날씨에 빗대어본다. 구름(연기)은 피할 수 없는 순간이나 상황을 은유한다. 기체인 동시에 액체, 그리고 형상을 지닌 덩어리는 시시때때로 모양을 달리하여 아주 작은 틈을 넘나든다. 국경을 넘나드는 구름은 명확하지 않은 정체성을 가져 모호하고 제어할 수 없다.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반복되는 일.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일은 단편적으로 보았던 걸 다시 짜 맞추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시선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일렁이는 나무와 엉킨 가지, 광활한 하늘과 땅의 거대한 망각. 푸른 베일이 미끄러지듯 벗겨지면 깨어나는 도시. 흙길을 밟으며 언덕에 오른다. 그 끝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 해질녘의 기분에 대해 생각했다. 해가 뜨고 지는 것. 대수롭지 않은 매일. 반복, 새 아침이라 이름 붙이는 일.

3.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바다는 하늘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바다에는 마치 헝겊에 주름이 잡힌 듯 약간 접힌 자국이 있을 뿐이었다. 파도는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계속하고 있는 잠든 사람처럼, 멈췄는가 싶으면 다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수평선은 서서히 그 모양이 선명해지고 있다. 오래된 포도주 병의 찌꺼기가 가라앉으면 유리병이 선명한 초록빛이 되듯이.

전시제목김은정: 매일매일 ( )

전시기간2022.11.10(목) - 2022.12.10(토)

참여작가 김은정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4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신관)

연락처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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