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민 사진전: 까미노 블루 Camino Blue

2020.05.12 ▶ 2020.05.24

류가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6-4 (청운동, 청운주택) 전시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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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재민

    까미노 블루 Archival Pigment Print,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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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미노 블루 Archival Pigment Print,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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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미노 블루 Archival Pigment Print, 2018

Press Release

까미노 블루
그 해 여름이었다. 몹시 더웠다. 따가운 태양 아래서 멀거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래 까미노를 걷자! 그럼 다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무작정 떠났다. 남들은 오랫동안 준비해서 떠난다고 하는데, 겁도 계획도 없이... 그로부터 한 달 후인 9월, 나는 까미노 길 위에 있었다.
와이셔츠를 입고 배낭을 멨다. 평소에 입던 여러 색상의 와이셔츠를 10장 넘게 가져가, 매일 하나씩 입고 버렸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걷고 있었지만, 와이셔츠 차림은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할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독일에서 온 여성을 만났고, 자전거 타는 브라질 남자들을 만났다. 스페인 사람들과 노래를 함께 부르고, 과일을 나눠먹고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친구가 되었다.

14일간의 일정으로 중간에 코스를 건너뛰며 250km를 걸었다. ‘프랑스 길’을 다 걸을 수 있는 40여 일 간의 휴가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생장을 출발하여 8일간 걷고, 스페인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5일을 더 걸었다. 그 다음 날, 마지막 목적지인 피니스테레에서 안개가 걷히기 전에 아침을 맞았다. ‘땅끝 마을’이라 불리는 피니스테레에 닿을 수 있어 행복했다. 신고 걸었던 등산화를 그곳에서 버렸다. 과거와 그렇게 이별했다.

매일 까미노를 출발하면 손에 든 카메라를 노을이 질 때까지 놓지 않았다. 혼자 걷는 시간이 많았다. 침묵하며 생각을 덜어냈다. 푸른 하늘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구릉과 지평선을 바라보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걷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뷰파인더에 들어온 빛도 아름다웠다. 길 위에 남작 엎드려 소총수처럼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메모리에는 또 다른 길이 저장되었다. 아이러니하다. 버리고 비우러 와서 왜 자꾸 메모리에 담고 있는 거지?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도 실증하고 있는 건가? 버리면 다시 담고, 비우면 또 채우고... 걸으면서 찾는다. 나를...

누군가가 그랬다. 어쩌면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나면 '까미노 블루'를 앓게 될지도 모른다고...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파랑인 ‘블루(Blue)’가 영어권에서는 우울한 기분을 나타내는 형용사로도 쓰인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서울에 돌아왔을 때는 가을이 깊어있었다. 연말을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그리웠다. 너무도 그립고 다시 가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직 걷고, 마시고, 사진을 찍고.. 종일 걸은 후, 기분 좋은 뻐근한 만족감에 상념없이 눕자마자 잠드는 밤. 거기만 갔다 오면 모든 게 치유될 줄 알았는데... '내가 까미노 블루를 겪고 있구나!' 라고 인정할 때까지는 2~3개월 정도가 소요되었다.

다행히 계절이 거듭 바뀌면서 내 안에 안착하려던 '까미노 블루'는 차츰 사그라졌다. 강원도 바우길과 제주 올레길을 걸은 것이 중화제가 되었다. 마음 한 구석에 잔여물이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면은 점점 견고해졌고, 그것이 솔직한 고백과도 같은 <까미노 블루>의 전시로까지 이어질 수 있게 했다. 이번 전시와 책 발간은 내 인생의 이정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전시에 용기를 주신 최연하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까미노 블루를 다시 겪을지라도 그 길을 그리워하며, 힘들거나 무엇인가에 고통스러워지면 무작정 걷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현실의 문제들이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는 까미노를 떠났지만, 지금까지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나는 아직 까미노 길 위에 있다.
■ 2020년 5월 민재민

전시제목민재민 사진전: 까미노 블루 Camino Blue

전시기간2020.05.12(화) - 2020.05.24(일)

참여작가 민재민

관람시간11:00am - 06: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사진

관람료무료

장소류가헌 Ryugaheon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6-4 (청운동, 청운주택) 전시 2관)

연락처02-7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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