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선 展

2020.04.01 ▶ 2020.04.12

통인화랑

서울 종로구 관훈동 16 통인빌딩 지하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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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선

    Gardener ceramic on canvas.53x53x13cm. 2019

  • 윤정선

    JBS

Press Release

윤정선은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명징하게 그러내는 특이한 자질이 돋보이는 작가다. 회화와 도조를 오가며 부단히 자신의 일상사를 태연하게 끌어안고 인체에 심리나 정신, 감정을 섬세하게 부여한다. 섬세한 인체 표현은 두리뭉실한 묘사와 그와 맞지 않는 서사를 도조의 본디 언어이자 한계로 간주하는 안주와 편협에 경종(警鐘)처럼 느껴진다.
윤정선의 창조물들이 짓는 표정과 몸짓언어에는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고 이야기를 속삭이는 힘이 있다. 매일 작업실에서 홀로 차가운 흙덩이를 주무르며 끊임없이 자기 경험과 감정을 대면하고 파헤쳐 만든 자기고백의 형상이라 그렇다. 형상을 만든 뒤 흙이 마르기를 기다리고 갈라짐과 터짐을 살피며, 불로 형태를 응고시킨 후 형상의 몸에 유약을 붓고 꽃과 황금색을 덧입혀 다시 구워내는 수많은 과정들은 또 작가에게 자기 성찰과 인내, 그리고 기다림을 요구한다.
윤정선 평론글 (홍지수_공예평론, 미술학 박사) 중 발췌
■ 통인화랑



글/ 홍지수_공예평론, 미술학 박사

윤정선은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명징하게 그러내는 특이한 자질이 돋보이는 작가다. 회화와 도조를 오가며 부단히 자신의 일상사를 태연하게 끌어안고 인체에 심리나 정신, 감정을 섬세하게 부여한다. 그의 인체표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 이후 점차 처절한 비극과 육감적 진리를 인체로 도출하려는 구상 조각의 시도들이 쇠퇴해가는 현실 속에서 역으로 흙을 매체로 신체의 작은 근육과 움직임을 묘사하고 표정과 몸짓에 삶의 희노애락을 담는 조형예술의 오랜 방법과 계보를 따라간다. 또한 섬세한 인체 표현은 두리뭉실한 묘사와 그와 맞지 않는 서사를 도조의 본디 언어이자 한계로 간주하는 안주와 편협에 경종(警鐘)처럼 느껴진다.

회화와 도조가 한데 엉킨 부조(浮彫)의 화면. 그 속에서 회화는 다소 회화다운 맛이 부족하다. 회화는 얇은 평면 위에 시간과 공간, 현실과 가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환영의 힘이 있다. 또한 시공간과 역사를 넘나드는 광활하고 복잡한 서사를 압축하여 전달하는 데 능하다. 그러나 윤정선의 화면의 대부분은 뚜렷한 형상이 부재한 추상에 가까운 효과와 다채로운 질감과 색채로만 채워져 있다. 인물의 심증, 경험, 감정들을 암시하는 모호한 형태들 그리고 인물의 정신적 상태를 표현하는 듯한 색채와 거친 붓 자국들이 뿌연 덩어리로 엉겨 있을 뿐이다. 이러한 효과들은 좁은 면적에 붙어있는 부조를 더욱 부각시킨다. 캔버스 밖의 관자(觀者)에게 그림의 형상, 색채, 질감은 여인/소녀들의 정체성과 내면을 감지하는 일종의 단초를 제공한다. 흔적을 매개로 마치 화면 속에서 결연하게 돌출해 나를 응시하고 있는 여인/ 소녀의 자아와 내면을 접근하고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은 미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아와 내면은 인간들이 저마다 자기만이 소유할 수밖에 없는 세계다. 타인은 결코 간파할 수 없다.
이 같은 신비한 혼동은 예술적 경험이라기보다 관람자가 무대 바깥에서 무대와 배우들을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보는 연극적 경험에 더 가깝다. 이 시점에 이르면, 화면은 더는 회화가 아니다. 회화는 회화가 본질적 특성으로 여겼던 지표성을 상실하고, 배우의 상황이나 감정을 설명한 부차적 장치 또는 미적 환상이 전개되는 가상공간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연극적 경험과 신비한 혼동이 가중될수록 작가의 경험과 주관적 세계에서 비롯된 현실과 상상의 표현은 본디 자리에서 이탈하여 현실로 침투된다. 그간 작가가 직면했던 문제는 회화와 도조를 하나로 묶어 몰입을 만드는 과정에서 두 매체가 가지고 있는 극명한 힘과 깊이 차이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완벽히 어우러지지 못하고 부딪히며 한계를 노출해왔다는 점이다. 혼합매체, 탈매체 작업의 경우, 작가들이 흔히 경험하는 난제이다.

윤정선은 이러한 문제들을 최근 ‘정원 garden’이라는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하고 회화와 도조를 분리시키면서 실마리를 풀고 있다. ‘정원’은 당초 회화가 담당했던 시공간성이 새로운 가상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작가의 정원은 이 세상 어딘가에 현존하는 실재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평소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던 것이나 내면에 감추어 둔 이미지들의 집합소다. 흙을 깎고 더듬고 붙여서 창조한 매우 자의적이고 인위적인 심정(心情)의 공간이다. 작가는 ‘정원’을 자신이 보듬고 가꿔야할 대상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놓은 수집처로 설명한다. 현실에서 무엇인가를 온전히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환상을 갈망하듯이 작가는 오직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만을 들이고 채우고 가꾸며 특별한 세계를 조성한다.
윤정선의 ‘정원’은 자연을 모방하여 동식물을 채운 아카이브라기보다 작가가 설정한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유토피아에 더욱 가깝다. 정원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 낯선 것들은 없다. 소녀, 양, 꽃, 과일, 리본 등이 있다. 정원의 생태계는 가상성의 세계와 생물학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종(種)과 초식동물의 DNA를 혼합한 하이브리드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불편하거나 이질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작가는 전작에서 작가자신, 혹은 무명인(無名人)이었던 여성/ 소녀들에게 새롭게 가드너 혹은 양치기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여자의 일상이나 추억, 감정, 환경, 장소 등 상태를 암시하던 회화의 평면이 ‘정원’이라는 가상공간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화면 위에 결탁되어 있던 인물들은 현실세계로 들어왔다. 부조에서 흉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생한 새로운 변수들 즉, 중력과 무게중심의 영향 때문인지 인물의 동세와 크기는 전작들에 비해 변폭이 크지 않다. 그러나 형상이 머리와 목 아랫부분이 과감하게 생략되고 전체적으로 정적인 동세를 유지하면서 길고 마른 형태감을 지니고 있기에 인물들이 지닌 내면의 상처나 감정의 상황에 대한 감정이입과 호소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인체의 일부가 화면 위에 불쑥 출몰하거나 위태하게 매달려 있던 극적이고 직접적인 서술이 자제되고 여기에 유약과 흙의 물성표현이 더해지면서, 인물의 표정과 시선의 응시, 미묘한 감정표현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석기점토와 내화갑소성에서 흙을 백토로 바꾸고 소성온도를 높였다. 유약효과도 배가되었다. 덕분에 얼룩덜룩하던 인체의 피부가 푸른 설빛(雪)으로 바뀌었다. 여인/소녀들의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하다. 귀엽고 청순한 이목구비는 숭고하고 고귀해 보인다. 여인/소녀들은 자기 얼굴보다 큰 리본을 달고 구불진 머리를 틀어 올린 채 한껏 예쁨을 자랑중이다. 그러나 미간에 힘을 준채 아래를 응시하는 눈은 공허하다. 새초롬하게 삐죽 내민 입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앙상한 몸은 “나 어때, 예뻐?” 라고 말하면서도 짐짓 내면에 불안함과 경계심을 감추지 못한다. 이러한 표정과 감정은 다 무엇인가? 그림을 뚫고 나와 현실을 응시하고 슬픈 표정과 몸짓을 짓던 여인/ 소녀들-바로 그 페르소나들의 표정이다.
정원의 또 다른 생명체-양이다. 양 역시 여인/소녀처럼 커다란 금색 리본을 매고, 몸에 꽃무늬를 둘렀다. 금색 피부가 눈부시다. 작가는 황금색과 꽃무늬로 그들이 소중하고 고귀함을, 마땅히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표시한다. 황금색과 꽃무늬를 두른 자들은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며 분리 불가능한 한 몸이다. 그들은 정원이라는 자의적인 세계 안에 조심스럽고 기이하게 오버랩 되는 복수화된 작가의 자아들이다. 그것은 현실에 서 있는 작가의 모습을 반영한 이미지이면서 차마 현실에서는 남들에게 내보이지 못한 은닉된 내면을 대신 드러내주는 작가의 페르소나들이다.
작가는 정원이라는 가상세계의 울타리 안에서 타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내어주며, 자신이 현실 속에선 밖에 내놓지 못하는 것들을 그네들이 행하도록 연출한다. 작가는 자신의 정원이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타자들이 정원의 거주자들을 통해 작가의 자아와 내면을 읽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편 숭고하고 아름답고 연약한 것들이 사는 세계에 타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매우 위태롭고 불안하게도 느껴진다.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페르소나들에 이입해 나를 내보이는 작가의 수줍음과 주저함이 정원으로 들어온 타자들의 공공연한 오독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을까 우려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예술은 가장 자의식이 강한 자들이 자신의 결여와 결핍을 들여다보고 동력삼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예술가는 작가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와 타인의 견해가 충돌하는 것을 견디고 극복해야 새로운 무엇을 얻는 숙명에 놓여 있다. 다행인 것은 정원이라는 영토를 넓히며 유토피아를 꿈꾸고, 그 속에서 끝없이 다른 존재로 분절되고 접합되고 이산되며 생식하는 페르소나들의 눈빛이 단순히 여리고 나약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의 표정과 몸짓으로 더 이상 현실이 나아질 것 같지 않는 불안, 사회와 삶의 정황이 요구하는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역할에 대한 압박과 괴리를 불안해하면서도 당당한 응시와 경계로 바깥보기를 거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페르소나들의 의지이면서 작가의 의지이기도 할 것이다.

윤정선의 창조물들이 짓는 표정과 몸짓언어에는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고 이야기를 속삭이는 힘이 있다. 매일 작업실에 나가 홀로 오랫동안 차가운 흙덩이를 주무르며 끊임없이 자기 경험과 감정을 대면하고 파헤쳐 만든 자기고백의 형상이라 그렇다. 형상을 만든 뒤 흙이 마르기를 기다리고 갈라짐과 터짐을 살피며, 불로 형태를 응고시킨 후 형상의 몸에 유약을 붓고 꽃과 황금색을 덧입혀 다시 구워내는 수많은 과정들은 또 얼마나 작가에게 자기 성찰과 인내, 그리고 기다림을 요구할까. 이처럼 오랜 시간 자신이 선택한 재료와 방법을 매개삼아 자신의 내부와 만나고 삶에 대해 성찰하며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완성한 후에, 그 세계로 타인들을 불러들여 소통과 교감하고 안식을 하게 하는 예술가의 일은 ‘정원사’ 의 일과 무엇이 다르랴.

전시제목윤정선 展

전시기간2020.04.01(수) - 2020.04.12(일)

참여작가 윤정선

관람시간10:30am - 06:30pm
(일) 12:00pm – 5: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조각

관람료무료

장소통인화랑 Tong-I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6 통인빌딩 지하1층)

연락처02-733-4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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