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남훈 초대전 [춤&색-인연 그리고 흔적]

2019.11.17 ▶ 2020.01.30

남송미술관

경기 가평군 북면 백둔로 322 (백둔리, 남송미술관) 송이홀

Map
  • 전시포스터

  • 임남훈

    Calling (소명) oil on canvas, 162cmx130cm, 2019

  • 임남훈

    Pink blouse oil on canvas, 130cmx80cm, 2013

  • 임남훈

    Wish oil on canvas, 130cmx162cm, 2016

  • 임남훈

    Slowly, Slowly oil on canvas, 130cmx80cm, 2014

Press Release

외형을 넘어 인간 내면을 그리다
-작가 임남훈 근작에 대한 소론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모습이든 미술의 역사에서 ‘얼굴’을 화폭에 옮긴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는 동서양을 불문하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그 표현방법 역시 단순한 드로잉에서부터 설치미술까지 매우 다양해, 실로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예술가들이 그토록 얼굴에 집착한 이유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르다.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15세기 르네상스시기엔 ‘사실성’과 ‘유사성’을 배경으로 한 대상이 가진 ‘영혼’을 담기 위해 얼굴을 그렸다. 그들은 자신의 명성을 과시하려는 갈망과 자기 얼굴이나 모습을 후세에 전달하려는 보편적인 욕망으로써의 얼굴도 외면하진 않았지만 1) 인간의 존재적 의의를 실증하며 내면세계를 포착하기 위한 방편으로 예술의 마법성에 기댔다.
얼굴을 화폭에 심은 초상화의 목적과 회화적 기법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고, 1893년 사진술의 발명이 공식 인정되면서 대변화를 겪게 된다. 하지만 모델의 외모나 개성, 인상을 전달하는 매개라는 대전제는 19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사진으로 인해 돈 많은 상인과 부유층, 노동자로까지 저변이 넓어졌다는 것과 손대신 기계가 그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업적의 기록과 신분 및 위엄의 전달, 전신(傳神)의 관점이라는 맥락도 유지됐다.
많은 시간이 흐른 현재, 회화사에 등장하는 얼굴은 과거의 그것과 닮아 있지 않다. 보편적으로 보급된 카메라의 간편성과 사실성,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누구든 제한 없이 자신의 초상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얼굴을 담는 이유도 각양각색 해졌다. 캔버스를 떠난 초상 사진은 그야말로 인간의 신체를 값싸고 쉽게 기록하는 그릇이자, 사회의 한 조직원으로서 그들이 누구인가를 짐작케 하는 도구로 자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금의 사진 초상 속엔 과거 초상이 지닌 독특한 특질이 거의 없거나 약하다. 초상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곧 경제적 피라미드에서 가장 하층을 차지했던 사람들이 특권층과 동일시하려는 신분 상승 욕구를 대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1840년 프랑스 사회의 충격 이후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맛은 사라졌다. 이는 자세, 표정, 배경이라는 세 가지 전략은 여전한 반면, 인물의 외형뿐 아니라 내적 심리까지도 표현하려 했던 예술가들의 고민은 쉽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작가 임남훈의 ‘얼굴’은 새삼스럽다.

그의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의 첫인상은 괴팍스러움이었다. 그가 그린 인물의 형태는 비정상적으로 투박했고, 전신은 다소 키치적인 붉은색과 파란색, 노란색 등의 색채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은 대개 거친 터치로 인한 괴기스러움, 고통, 알 수 없는 고독을 전달했으며 한편으론 형태와 색이 주는 변증법적 긴장감으로 인해 그 자체로 역동성을 부여했다. 특히 나이프가 지나간 흔적들이 거칠게 소용돌이치거나 겹겹이 쌓인 물감 덩어리들은 2차원의 회화를 3차원의 환영으로 둔갑시키는 착시마저 불러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첫 인상을 지났을 때 생성된 또 하나는 일종의 궁금증이었는데, 왜 하필 얼굴인가였다. 이는 그와의 대화에서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임남훈이 얼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20대부터였다. 그는 당시 관상과 역학을 공부하며 사람의 얼굴은 자라온 환경과 철학에 의해 도출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인간사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역사임을 깨우쳤다. 그 중에서도 ‘눈’이 지닌 의미는 각별했다.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 하듯 그에게도 눈은 정신과 얼이 담긴 그릇이었다. 임남훈의 그림에 유독 눈이 도드라지는 이유다.

그런데 정작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얼굴을 그리는 과정이었다. 즉, 대상을 직접 만나 서너 시간이상 대화를 나누는 것(어쩌면 충분히 지난한 과정이기도 하다.)이나 그 결과(이미지)를 나이프로 빠르게 담아내는 것, 외형의 유사성에서 벗어나 내면의 세계에 천착하는 프로세스에 그의 예술발현에 방점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델과의 장시간의 대화는 ‘깊이 읽기’와 갈음된다.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나이프의 획은 감정이입이 덜 한 직관으로써의 표현을 구사하기 위함이다. 유독 튀는 색깔들은 대상의 색과 동일시되는 하나의 기호이며, 다시 말해 그에게 이미지는 곧 색이다.
결국 임남훈의 얼굴은 정체성에 대한 탐문이자 개방으로 읽힌다. 실체에 앞서 상징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아를 들추게 하는 촉매라고도 할 수 있다. 타인이 그린 나를 통해 진실한 나와 마주할 수 있는 통로라고 해도 무리는 없다.
특히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화면, 강렬한 색, 실존 인물이면서도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재가공된 이미지는 임남훈의 조형언어를 전신(傳神)으로 유도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대화를 통해 내면에 접근하길 꺼려하지 않으면서도 단지 재현이 아닌 저마다 가슴 깊이 숨겨진 무의식을 훑고 인생의 다양한 내면을 끄집어내려는 의도는 임남훈의 작업이 시각적 모방을 넘어 인물 내부에 존재하는 본질과 정신의 발현에 목적을 두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것만으로도 임남훈 작업이 어째서 관심을 받는지, 주목의 대상일 수 있는지는 설명이 된다.

하지만 아직 그의 그림들은 그림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삶을 현재로 온전히 소환해 대상에 침투하며 낯선 이미지로 치환하거나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작가의 고집스러운 미적 행로를 대변하고, 이차적으론 여생을 휘감았던 외로움과 쓸쓸함 못지않게 고독한 여정을 걷고 있는 타인들과의 호흡을 추구하곤 있으나 그것이 반드시 원활한 것이라 판단되진 않는다.
그 이유는 임남훈 만의 아우라가 여실하지 못하다는 것이 첫 번째이고,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미학적 관점에서의 내레이션이 단편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공명으로써의 변별력에 대한 고민이 짙어야 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나이프든 붓이든 시대와 정신, 삶을 초상에 담아온 우수한 작가들은 참으로 많다. 멀리 보면 베이컨이 그렇고 글렌 브라운이 그러하다. 이 중 글렌 브라운의 도용을 통한 재생산은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를 허용한 것이며, 심지어 인간 존재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미의 세속적인 관념들, 절망적인 추악함, 젊음과 죽음의 메타포, 신화와 민속에서 비롯된 정신세계의 탐험에 작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더구나 그의 그림에서 간혹 엿보이는 부패와 생장 사이의 긴장, 불확실함이 여실하여 두렵기까지 한 얼굴들은 대단히 서사적이면서 길고 긴 여운을 남긴다.

이밖에도 조형방식은 다르지만 프로이드와 제니 샤빌, 뒤마 같은 작가들도 인간의 얼굴과 신체를 통해 나와 타인의 내면과 철학을 깊게 읊조려 왔음을 배척하긴 힘들다. 더구나 이들의 작품에선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내공과 특질이 쉽게 감지된다. 인물의 얼굴에 내재한 시대성으로까지 확장될 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반면 그만큼 인간 본질의 탐닉 역시 강렬하다.
물론 이와 같은 시선에 관한 전복은 작가 임남훈의 예술적 지향점과도 일치한다. 인식 너머에 놓인 원초성, 설명을 걷어낸 침묵과 고요 속에서라면 현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이것은 스스로의 조타이자 동시에 풀어야할 과제인 것도 부정하긴 어렵다. 때문에 이 부분을 차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가치구분의 저울은 그 기울이기를 달리할 가능성이 크다.2)
그렇다고 필자가 “박탈당한 자들의 편에 서서, 사라져가는 인간의 형상을 재현하는 데 골몰하는 결기(決起)를 붙들고, 얼-굴을 찾아 방랑하는 화가(양효실)”로써의 임남훈에 대한 믿음이 희미한 건 아니다. “부유하고 화려하고 잔인한 삶의 거죽이 벗겨지는 순간 드러나는 인간의 허약함, 위선, 거짓에 대해 증언하기도 거부한” 그의 이력이 오늘을 보증하고 있기에 그만큼 기대도 작지 않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1) 당시 왕이나 귀족, 성직자, 정치인 등은 예술가들의 손을 빌려 스스로 소중하다 여기는 삶의 한 순간을 남기려 했으며, 때론 진실 되게, 때론 보이는 것에 충실하도록 예술가들의 재능과 재화를 바꾸기도 했다. 때문에 르네상스 이후 17세기 활발하게 그려진 초상화 등은 정치적 목적으로 공식적인 접견실이나 공공장소에 그것을 전시했다.

2) 사실 이러한 측면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비평이기 때문이다. 통상 전시서문이란 거의 칭찬 위주이고, 대중이 열람한다는 이유로 단점은 가린 채 장점만 추켜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비평을 원하는 작가와 비평가가 대등한 관계로 서지 못한 채, 흡사 클라이언트와 하청업자 비슷한 위치에 존재하는 현실의 문제도 한몫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도출된 결과는 주례사일 뿐 비평이 아니다. 다행히도 임남훈 작가는 이런 비평의 직능을 익히 상기하고 있다. 때문에 가감 없이 기술할 수 있었음이 사실이다.

전시제목임남훈 초대전 [춤&색-인연 그리고 흔적]

전시기간2019.11.17(일) - 2020.01.30(목)

참여작가 임남훈

관람시간10:00am - 05: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회화, 페인팅

관람료어른 - 4,000원
대학생/청소년/군경/경기도민 - 3,000원
어른 단체(10인 이상) - 3,000원
대학생/청소년/군경/경기도민 단체(10인 이상) -2,000원
65세 이상 어르신, 5세 미만 어린이, 장애인 - 무료

장소남송미술관 Namsong Art Museum (경기 가평군 북면 백둔로 322 (백둔리, 남송미술관) 송이홀)

기획남송미술관

연락처031-581-0772

Artists in This Show

남송미술관(Namsong Art Museum) Shows on Mu:um

Current Shows

화살표
화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