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개인전

2018.11.28 ▶ 2018.12.04

갤러리이즈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 (관훈동) 제 2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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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스피노자는 ‘정신과 물체는 실체가 아니라 실체의 두 양태(樣態)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물질과 기억』을 저술한 베르그송은 정신과 물질이 서로 다른 두 실제(實際)가 아니라 막대기의 양 끝단처럼 ‘기억’을 매개로 연결된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서구 근대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극복하기 위해 ‘기억’의 문제에 주목하였다. 기억이란 어떤 사건이나 물건을 경험한 주체가 그것을 내면화시키는 것으로, 주체는 경험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感情)이나 정서(情緖) 상태에 따라 더하거나 덜하면서 변형 내지는 왜곡시킨다. 그래서 기억은 대상인 객체와 수행 주체 둘 어디에도 귀속(歸屬)되지 않은 채 둘 사이에 머무르면서 주체와 객체 모두의 존재를 입증한다. 이러한 이유로 기억은 현대철학은 물론 당대의 작가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탐구 주제가 되고 있다.​

전통회화의 물리적 중심축인 종이와 먹을 주로 사용하는 정보라의 작품은 수묵(水墨)이 지닌 힘과 가능성의 새로운 측면을 선사한다. 그녀는 ‘기억에 관해 그린다.’는 짧은 말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녀의 그림은 기억이 아니라 ‘기억의 메커니즘’을 통해 차마 현실에서는 소환할 수 없는 어떤 순간과 마주하거나 그럴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다. 기억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인해 마음에 새겨진 상흔(傷痕)이나 상처(傷處)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기억의 표상(表象)이기보다는 ‘기억의 심인(心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뭇 사람과 어우러져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느끼지만 가장 큰 상처 또한 그들에게서 받기 때문에 ‘어울림’과 ‘고립’은 종이의 앞뒷면처럼 우리의 삶 속에 들어앉아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자리매김한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에게는 상처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위안(慰安)의 시공간(視空間)이 필요하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 했던가! 너무 멀어도 또 너무 가까워도 안 되는 관계의 미학. 작가 정보라가 찾은 대전의 원도심은 바로 그런 공간일 것이다. 작가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은 낯선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곳. 그곳에서 그녀는 기억과 고독을 대면하기 시작했다. 한지를 커피로 물들이고 그 위에 짙은 커피액으로 시장을 묘사했지만 왁자지껄한 시장의 모습은 오간데 없이 온통 침묵으로 가득하다. 이 침묵은 청각의 무효화를 넘어 시간의 정지, 아니 시간이라는 프레임 자체를 소거해 버려 이 세상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정적(靜寂)의 공간(空間)을 산출하고 있다. 선(線)이 모여 형태(形態)를 이룬다는데, 그녀의 가늘고 구불구불한 선은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처럼 의지박약하고 무관심하다. 시작도 끝도 가늠할 수 없어 기약 없이 같은 장소를 맴도는 것처럼 비슷비슷한 시장의 정경들을 토해 내더니 어느 순간 시장의 현실과 괴리된 자신을 닮은 파편화된 시장의 모습들을 꼴라주 하듯 여린 담묵의 크고 작은 먹의 얼룩 위로 부호화시킨다.​

한지 위에 호분을 얇게 여러 겹 발라 견고한 막을 만들고 그 위에 너른 담묵(淡墨)의 붓으로 무심하게 얼룩을 드리운 뒤 낮은 건물과 집들을 빼곡하게 그려 넣은 <후에 남겨진 것들> 연작은 인위적으로 구축된 도시를 연상시키지만 작고 무심한 창들만 나 있을 뿐 문도 없고 드나드는 사람도 없다. 버섯이 자라나는 것처럼 담묵의 얼룩 위 어딘가에 먹으로 점을 찍고 선을 그으면 곧이어 그 옆과 위아래로 또 다른 선과 점이 생겨난다. 관찰해서 화폭 위에 옮긴 도시가 아니라 계속해서 스멀스멀 생겨난 빌딩 숲이 모여 하나의 바위 덩어리처럼 자라나 있다. 커다란 바위를 한눈에 보기 위해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서면 눈앞에 한 폭의 산수가 나타난다. 그리기와 비우기가 마주치며 자아내는 긴장 속에서, 솟아오른 것은 바위[山]요 견고하게 구축된 흰 바탕은 여백(餘白)이 되어 음과 양(陰陽)이 공존하는 공간, 즉 산수로 경험된다. 담묵의 얼룩과 여러 농담의 먹선이 얇게 겹을 이루는 양기(陽氣)의 바위산과 달리 음기(陰氣)의 여백에는 쉬폰, 석고붕대, 거즈 등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재질의 천위로 호분, 젯소, 지당 등을 덧입혀 독특한 재질감의 두터운 바탕을 구축하였다. 그 위로 물들이듯 듬성듬성 덧입혀진 푸른 얼룩은 작가와 화폭 내지는 관객과 그림 사이에 설치된 얇은 막처럼 분리와 투영을 반복하면서 서로를 반추하게 한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기억과 스스로를 분리해서 마주할 수 있는 자존감을 얻기 시작한다.​

전통적인 세 폭 병풍 형식을 빌려 세 개이면서 하나가 되는 <후에 남겨진 것들 그 후_311231>에서는 화폭 위를 덮고 있던 막을 거둬내고 힘찬 필묵과 과감한 발묵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수묵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바닥에 펼쳐 놓은 화판 위로 휘몰아치고 있는 굵은 붓의 운용[用筆]은 화가의 거침없는 몸짓을 시각화하고, 스며든 농묵(濃墨)의 자취 위로 중첩하는 또 다른 용필의 겹, 그 위로 붓끝을 타고 흘러내리고 흩뿌려진 먹점들, 여백에 바른 호분 등이 뒤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우연적 효과가 증대하면서 새로운 기억의 단초이다. 이제 그녀의 그림은 기억의 표출(表出)도, 경험의 표상(表象, Representation)도 아닌 새로운 기억을 창출하는 흔적이자 기억의 원형(原型, Archetype)이 될 것이다.​

형상에 대한 구체적 묘사 방식으로 제작한 <중앙시장 이야기>, 막(膜)과 겹, 발묵(潑墨)과 간필(簡筆)로 만들어낸 <후에 남겨진 것들>, 신체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감필묘(減筆描)의 <후에 남겨진 것들 그 후>에서 드러나는 정보라의 그리기는 재현(再現)에서 표현(表現)을 거쳐 추상(抽象)으로 나아간 미술사의 궤적과 닮아있다. 그러나 가장 최근의 작품인 <후에 남겨진 것들 그 후> 연작조차 추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그리기는 모든 대상을 소거한 상태에서 생성되는 형상이 아니라 ‘기억’으로부터 스며들고 배어 나오는 흔적의 지층들이자 기억으로 소환되는 현실의 지표(指標, index)이기 때문이다. ■ 미술비평가 변청자

전시제목정보라 개인전

전시기간2018.11.28(수) - 2018.12.04(화)

참여작가 정보라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이즈 gallery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 (관훈동) 제 2 전시장)

연락처02-736-6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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