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í)

1852년06월25일 스페인 레우스 출생 - 1926년06월10일

스페인에서 활동

추가정보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수많은 독창적인 작품을 남긴 가우디는 구리세 공장의 집안에서 태어나 17세부터 건축 공부를 하였다. 바르셀로나의 건축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학창시절에 비라르와 폰트스레 등의 조수로서 설계활동에 종사하였으며 1878년 학교 졸업 후부터는 독자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전형적인 그의 건축은 모든 면에서 곡선이 지배적이며, 벽과 천장이 굴곡을 이루고 섬세한 장식과 색채가 넘쳐 야릇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따라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에 걸쳐 유럽을 풍미하였던 아르누보(art nouveau)의 에스파냐판(版)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1890년대를 경계로 하여 2기로 나눌 수가 있다. 전반기의 작품은 건축 그 자체의 몸체는 비교적 중후하며 극단적인 변형은 보이지 않으나 세부의 장식에는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철을 사용한 곡선적인 장식은 피레네 북쪽의 아르누보의 장식과 대응관계에 있다.

그러나 가우디의 진가는 어디까지나 후반기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이전의 그의 건축장식에서 보였던 미로(迷路)와 같은 구불구불한 공간(空間)의 이미지가 전체의 건축디자인으로 확장되어, 계획부터 구조의 형태 및 세부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을 지배하고 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에는 코로니아 구엘교회의 제실(祭室:1898∼1914), 구엘공원(1900∼1914)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그의 중요한 후원자였던 구엘백작을 위한 것이었다.

주택건축으로 독특한 형태와 내부공간을 지닌 카사 바트로(1907년 완성)와 카사 미라(1907년 완성), 1884년에 착수하여 결국 필생의 대작이 된 사그라다 파밀리아교회의 익랑(翼廊)의 정면(正面, 1908년 완성) 및 탑·조각(1903∼1926) 등은 가우디 건축의 가장 극적인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그의 건축은 아르누보의 유행을 초월하여 근대에 살았던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건축으로 표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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