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쟈코멜리(Mario Giacomelli)

1925년08월01일 이탈리아 세니갈리아 출생 - 2000년11월25일

추가정보

쟈코멜리는 1925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세니갈리아(Senigallia)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에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겪게 된 죽음과 이별의 상처는 평생토록 그의 작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쟈코멜리의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세탁 일을 하면서 세 아이의 생계를 해결했다. 어머니는 장남인 쟈코멜리만큼은 교육을 시키고 싶어 했지만, 철이 일찍 들었던 쟈코멜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13살에 인쇄소의 식자공으로 취직을 했다. 그곳에서 그는 타이포그라피와 인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당시에 그는 이미 그림 그리기와 시 쓰기를 즐기는 소년이었다. 그는 훗날 생의 고통과 무게를 가르쳐 준 가난을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 또한 군복무를 마쳐야만 했다. 여전히 가난했으나 어머니가 근무하던 요양병원의 할머니가 물려준 유산 덕분에 인쇄소를 차릴 수 있었다. 생애 최초로 영화표를 사고, 카메라를 구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인쇄소가 생긴 덕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쟈코멜리는 가족이 아닌 자신에게 유산을 남겨준 그 할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다. 다만 그 할머니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전화를 걸어왔을 때 곰곰이 이야기를 들어줬을 뿐이었다. 그의 운명을 바꾼 사건은 그렇게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그 뒤 생을 거두기 전까지 그는 오랫동안 인쇄소를 운영했으며, 더불어 사진가로서의 활동도 멈추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수술로 몸이 쇠약해진 어느 날 아들 시모네를 시켜 집에 둔 카메라를 가져오게 했다. 카메라의 노출과 셔터 속도를 손수 맞추더니 그 상태 그대로 아들에게 사진을 찍어줄 것을 당부했다. 아들 손을 빌리기는 했으나 스스로가 찍은 마지막 초상사진이었던 셈이다. 그 사진을 끝으로 그는 2000년 11월 25일 평생을 머물렀던 세니갈리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쟈코멜리는 어머니가 근무하던 요양병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가장 좋아했다. 그곳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이 있었다. 그러나 쟈코멜리에게 그곳은 죽음의 공포보다 더한 생의 두려움이 있는 곳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요양병원을 드나들던 어린 시절부터 그는 그곳에서 생의 부조리함과 외로움, 그리고 절망을 보았다. 그는 1983년까지 그 병원을 드나들면서 작업을 지속했다. 훗날 그는 이 작업에 이탈리아의 유명한 시인 체자레 파베제(Cesare Pavese, 1908∼1950)의 시에서 빌어와 <죽음이 찾아와 너의 눈을 앗아가리라>라는 제목을 붙였다.
어린 시절부터 습작을 즐길 만큼 스스로가 시를 사랑했던 마리오 쟈코멜리는 시에서 영감을 받거나 시구를 그대로 옮겨와 작품 제목으로 삼았다. 말년에 그는 ‘그것은 그것이었을 뿐이었다’는 말로 이러한 표현조차도 덧없는 것이라고 후회했지만, 그는 늘 시처럼 읽히는 사진을 찍고, 사진을 떠올리게 만드는 시를 짓고자 했다.
춤추는 사제들을 다룬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 또한 시인이자 수필가이기도 했던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David Maria Turoldo, 1916∼1992) 신부의 시집에서 따온 제목이다. 1960년대 초 쟈코멜리는 당시 그의 작품에 감명을 받은 성직자들의 도움으로 가톨릭 신학교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그 후 그는 여러 차례 신학교를 방문했고, 때로는 주교 몰래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눈 밭 위의 춤추는 사제의 이미지들은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날 그가 눈 구경을 나온 사제들을 향해 몰래 눈뭉치를 던지면서 얻게 된 작업이다.
본래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 신부가 썼던 「나는 손이 없습니다」(1948)라는 시의 내용은 성직자의 길을 걷는 젊은 사제의 두려움을 다뤘으나, 쟈코멜리는 역설적으로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라는 작업을 통해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내려놓은 사제들의 모습만을 다루고 있다. 이 작업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밝고 따듯한 작업이기도 하다. 훗날 그는 신학교를 드나들며 목격했던 두렵고 방황하는 사제의 모습은 마음 속 필름으로만 담았다고 고백했다.
그 밖에도 검은색 전통 의상을 입고 살아가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스카노의 사람들을 강렬한 흑백 대비로 보여준 1960년대 중반의 <스카노(Scanno)> 연작은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 존 사코우스키(John Szarkowski, 1925~2007)가 모든 연작을 소장했을 만큼 많은 관심을 보인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 중 일부는 사코우스키의 대표 기획전인 《사진을 바라보다(Looking at Photography)》에도 소개되었다. 또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프랑스의 성지인 루르드에 기적을 바라고 몰려드는 환자와 장애인들을 다룬 <루르드(Lourdes)> 시리즈를 비롯, 자연의 장엄함과 순리를 다룬 여러 연작들을 남겼다.

쟈코멜리는 스스로가 대상에게서 받는 느낌을 작업에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늘 새로운 형식적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대지미술 활동을 시작하기 훨씬 전에 농부들에게 흙 위에 기호를 그려달라고 부탁해 촬영을 하기도 했으며, 필름에 칠을 하거나 흑과 백을 반전시켜서 명암을 뒤바꿔 놓기도 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순수성을 고집하지 않은 채, 오히려 인위적인 조형성을 부여하고 주관적인 감성을 드러내었으나,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예민한 통찰력과 사진을 향한 진정성은 모든 형식적 기법을 뛰어넘어 묵직한 몰입을 선사한다.
노년에는 기존의 작업들을 합성함으로써 새로운 연작을 만드는 일에도 몰두했으며, 연출 기법을 통해 꿈에서 마주쳤던 환영들을 사진으로 재현해내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해까지 붙들고 있던 <이 기억을 이야기하고 싶다>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그는 마치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려는 듯 아버지를 상징하는 가면을 옆에 두고서 모자를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실제로 그가 꿈에서 만났다는 그 이미지는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이별 인사가 되었다.

쟈코멜리의 작품들이 담고 있는 슬프고 음울하고 무섭고 무거운 내용들은 그러나 그이의 감각과 감성이 이뤄낸 뛰어난 조형성, 추상성의 뒷받침으로 매우 탄탄하다. 그래서 그 슬픔과 공포도 다 아름답다.
— 사진가 강운구, 마리오 쟈코멜리 전시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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