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

1864년03월13일 러시아 토르조크 출생 - 1941년03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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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황실경위대의 장교로 활동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망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지원해 가서 사실주의 화가 일리아 레핀(Ilja Repin)의 사사를 받았다.
또한 그곳의 미술학교에 등록하고 장교로서의 군생활과 그림 공부를 병행했다.

1896년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러시아를 떠나 뮌헨으로 향했다. 그의 곁에는 레핀의 화실에서 만난 마리안느 폰 베레프킨(Marianne von Werefkin)이 함께 했다. 베레프킨은 러시아 고급관리의 딸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며 후에 그의 아내가 되었다. 뮌헨 미술학교에 입학한 야블렌스키는 그곳에서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를 만나 일생동안 우정을 나눴다.

1905년 프랑스에서 마티스(Henri Matisse)와 함께 작업했으며 활기 넘치는 마티스의 색채에 큰 영향을 받았다. 독일로 돌아온 야블렌스키는 뮌헨을 중심으로 전개된 표현주의 운동에 깊게 관여했다. 특히 칸딘스키, 뮌터(Gabriele Munter), 베레프킨과 함께 한 무르나우에서의 제작 시기는 그의 예술에 있어 커다란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1909년 신미술가협회(NKVM)를 결성했고, 1912년에는 이 그룹에서 분리된 청기사파(Blue Rider Group)에 합류했다. 그러나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청기사파는 자연 해산되었다.

전쟁의 발발은 그의 작업에 중요한 전환이 되었다. 이 시기 야블렌스키는 풍경을 주제로 한 <변주곡 Variation> 연작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그의 방 창문을 통해 바라 본 경관을 여러 가지로 변용시킨 그림들로 차분하면서 명상적인 분위기를 나타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17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반추상의 얼굴 그림에서 더욱 강하게 비춰졌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는 <밤의 응시 Looking within Night> (1923)와 같은 정면상 그림에 극도의 신비감을 부여했는데 이로 인해 러시아 정교회의 성상 그림에 비견되고 있다.

1924년 야블렌스키는 칸딘스키와 클레(Paul Klee), 파이닝거(Lyonel Feininger)와 함께 청기사파의 뒤를 이은 ‘청색 4인조(Blue Four)’를 만들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는 관절염으로 인한 마비증세로 시달리다 1941년 생을 마감했다.

야블렌스키는 대담한 색채와 표현적인 형태를 사용하고 있지만 인물의 보편적이고도 신비로운 특성에 관심을 갖았다. 또한 초상화와 풍경을 통해 특유의 명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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