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부에(Cimabue)

1240년00월00일 출생 - 1302년00월00일

추가정보

치마부에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이며 본명 베치비에니 디 페포(Bencivieni di Pepo)으로 그는 치마부에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치마부에는 '황소의 머리'라는 뜻이다. 그가 치마부에라고 불리게 된 것은 거칠고 오만한 성격 때문이다. B.조토의 스승이라고 하나 확증은 없다. 화가로서 초기의 활동은 주로 피렌체와 아시시에서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아레초(Arezzo) 산 도메니코 성당의 《십자가의 처형》과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다. 이때 카발리니, 조토와 공동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1301년에 피사에서 산타키아라성당의 성모자도를 그렸고, 그해부터 그 이듬해에 피사대성당 제실(祭室)에 모자이크 장식으로 성요하네상을 만들었으며, 1302년 7월 피사에서 사망하였다.
같은 시대의 시인 단테의 《신곡(神曲)》의 〈지옥편〉 제11가(歌)에서 “그림에서는 치마부에가 패자(覇者)의 자리를 유지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조토의 명성만이 높고 그의 이름은 희미하게 되었네”라는 것만 보아도 그가 조토 이전의 화단에서 이름을 떨쳤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G.바사리도 그의 《미술가열전》(1550)을 치마부에부터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것에는 현재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있는 《성삼위일체의 성모》(1290), 산타크로체 성당의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아레초의 성도미니크성당의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루브르미술관의 《성모자 제단화》 등이 있다. 피사대성당의 《복음서 저자 성요한》, 최대 걸작이라고 하는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성당의 벽화 《그리스도 책형(磔刑)》과 《성모자와 4천사 및 성프란체스코》는 아직 비잔틴 화풍을 남기고는 있지만, 그 늠름한 조형 의욕과 자상한 감성의 추구에서 르네상스의 여명을 보여주고, 조토에 의하여 실현되는 신회화(新繪畵)의 탄생을 예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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