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텔로(Donatello)

1386년00월00일 출생 - 1466년00월00일

추가정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도나토(Donato di Niccolò di Betto Bardi)이다. F.브루넬레스키의 건축, 마사초의 회화와 더불어 조각에서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평생 청빈한 가운데 독신으로 지냈다.

초기의 수업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으나, 1403년 말에 피렌체 예배당의 청동문을 제작 중이던 기베르티의 조수로 일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후기 고딕에서부터 초기 르네상스에 걸친 과도기에서의 그의 활동은 대체로 4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1405∼1432년으로 피렌체대성당을 위한 두 예언자상(1408)을 비롯하여, 웅대한 《복음서기자(福音書記者) 요한상》(1415), 병기 제조업조합의 의뢰로 제작된 오르 산 미켈레성당의 《성 게오르기우스》(1416: 원작의 대리석상은 피렌체의 발제로미술관 소장), 길드 조합을 위한 《성 마르코상》, 피렌체의 문장(紋章)이 있는 방패를 들고 있는 《사자상》, 산타크로체성당을 위한 목각 《그리스도의 책형(磔刑)》 등을 제작하여, 고딕풍의 작품을 남기면서도 이미 르네상스의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여, 분석적인 사실을 억제하고 종합적인 장엄함으로 향하고 있는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성 조르조》는 그때까지 건축의 질서를 따르고 있던 조각을 3차원의 공간에서 독립시켜, 범할 수 없는 위용과 고전적인 격조를 보인다.

제2기는 1432년 그가 로마를 방문하여 고대유적 연구에 열중한 이후의 10년간으로, 발제로미술관의 청동상 《다비드》(1433)는 젊음이 넘치는 육체의 표현에 고전미를 풍기고 있다. 대리석조각도 이 즈음엔 사실기교의 극치에 이르러, 발제로미술관의 《세례자 요한》과 같은 박진감이 넘치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 밖에 그의 명성을 떨치게 한 결정적인 것으로 산타크로체성당의 부조(浮彫) 작품인 《수태고지(受胎告知)》, 산로렌초성당 설교단의 부조 《강가(降架)》 등이 있다.

제3기는 1443년 파도바에게 초대되어 그곳에 머물렀던 10년간으로, 《가타멜라타 장군 기마상》은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대변하는 걸작임과 동시에, 르네상스 주조기술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제4기는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만년의 피렌체시대로, 사실적 기법은 더 세련되고 전부터 조금씩 보였던 그의 괴기취향과 비극적인 표현이 강조되었다. 베키오궁전 앞에 있는 《유디트와 홀로펠네스》 청동상과 피렌체성당의 《막달라의 마리아》 등이 있다. 대리석 ·청동 ·목재 ·테라코타 등 온갖 재질을 썼던 그의 전작품에 일관되어 풍기는 것은 인간의 생명에 육박해오는 투철한 르네상스적인 리얼리즘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조각은 고딕 조각의 발전된 형태도 아니며, 그리스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작풍은 완전한 과거와의 결별이며 철저하게 자연에 대한 관찰과 고찰로 이루어낸 결과로 보여주고 있으려, 도나텔로는 살아있는 동안 상당한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작풍은 북유럽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어 베로키오나 미켈란젤로에게 영향을 끼쳐 근대조각으로 발전할 실마리를 마련해준것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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